글을 쓰는 작가의 언어란 이런 것일까?
‘겨울 달빛이 내리비치는 차가운 돌베개에‘ 작가의 목을 올려놓는 심정으로 쓰는 글을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읽어야할 지 고민하게 한다.
책을 읽다가 자세를 고쳐 앉는다.

그래도 만약 행운이 따라준다면 말이지만, 때로는 약간의 말이 우리 곁에 남는다. 그것들은 밤이 이슥할 때 언덕 위로 올라가서, 몸에 꼭 들어맞게 판 작은 구덩이에 숨어들어, 기척을 죽이고, 세차게 휘몰아치는 시간의 바람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동이 트고 거센 바람이 잦아들면, 살아남은 말들은 땅 위로 남몰래 얼굴을 내민다. 그들은 대개 목소리가 작고 낯을 가리며, 다의적인 표현 수단밖에 갖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그들은 증인석에 설 준비가 되어있다. 정직하고 공정한 증인으로서, 그러나 그렇게 인내심 강한 말들을 갖춰서, 혹은 찾아내서 훗날에 남기기 위해 사람은 때로 스스로의 몸을, 스스로의 마음을 조건 없이 내놓아야 한다. 그렇다. 우리의 목을, 겨울 달빛이 내리비치는 차가운 돌베개에 올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돌베개에》서 발췌 - P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마더 크리스마스(Mother Christmas)
히가시노 게이고 글, 스기타 히로미 그림 / 소미북스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흑인 산타, 아시아인 산타, 거기에 여성 산타까지...
산타 클로스는 뚱뚱한 백인 할아버지라는 통념을 깨는 동화.
다만 아쉬운 점은 세계 산타 협회 회원의 구성이다.
캐나다, 미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벨기에, 영국, 핀란드, 이탈리아 산타가 전세계 산타 협회의 전부라니...
인구로 보나 땅 크기로 보나 인도, 러시아, 중국 산타가 없다는 게 말이나 되나!
작가의 서양 중심 사고와 일본의 탈아시아론 사고가 여실히 반영된 내용이라 별점을 대폭 깎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가 가장 싫어하는 과목은 영어다.
그런 아이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드디어 오늘 처음으로 영어 학원을 다녀왔다.
중학생 학부모일 때는 느끼지 못했던 불안과 걱정이 예비고 1이 되고 보니 한가득이다.
그리고 그런 부모의 불안을 요즘 부쩍 아이에게 잔소리로 쏟아내는 중이다.
부모가 중심을 잡고 아이를 믿어줘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가 않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저녁 준비를 했다.
닭다리살을 튀기듯이 정성껏 굽고 간장 양념에 졸여서 아이가 돌아올 시간에 맞춰 밥을 차렸다.
맛있는 냄새에 아이가 미소를 짓는다.
그 얼굴을 보니 나도 흐뭇하다.

행.복.하.다.

돌아서면 또 이런저런 걱정에 쉽게 우울해지고 낙담하는 종이 멘탈이라 금방 이 행복한 느낌이 잊히겠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이 좋다.
행복, 그거 별거 아니네.

어제, 오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소설을 읽고 있자니 나까지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삶이란 고통이다.
생노병사를 차례로 거쳐야 끝낼 수 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힘든 삶의 과정을 지나가며 서로에게 연민을 품고 좀 더 다정히 대해야겠다.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 P140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 P252

삶이란 어떻게든 의미를 지니고 계속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겨우 살아가야겠다. - P26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 P1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1주년 스페셜 에디션)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최근 1년간 읽은 책 1권
나는 지금 괜찮은가?
나의 정신 상태는 건강한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데 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어떤 의욕도, 어떤 희망도 없다.
모든 게 후회고 불만이다.
나의 현재가, 나 자신이 싫다.
나도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
죽고 싶다는 살고 싶다의 다른 말 같다.
정말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지금과는 다르게 살고 싶다는 뜻 아닐까?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자살을 실행에 옮긴 노라가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무수히 많은 삶을 경험해보면서 삶에 대한 진정한 욕구를 깨닫고 다시 살아나가는 환상 동화같은 소설이다.
그리고 다시 살아가는 삶은 이전과 동일하나 노라의 삶에 대한 태도만은 더 이상 이전과 동일하지 않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사소한 태도 하나가 실은 삶을 변화시킨다는 자기계발서 같은 이야기는 20대 초 우울과 불안장애로 자살하려던 순간, 가족의 도움으로 다시 살기 시작했다는 작가의 삶을 계속 떠올리게 한다.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
그런데 나아질 것 같은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제일 절망적인 건 나 자신이다.
노라처럼 극단적인 자살을 시도하진 않지만 천천히 공들여 나의 시간, 나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다.
살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니라 태어났으니 살아내야 한다.
노라처럼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데 자신이 없다.
그래도 위로가 되는 책이었다.
지금의 나에게 작은 위로가 되는 좋은 소설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이다 - P36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