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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한문 수업 - 고전으로 세상을 잇는 어느 한문번역가의 종횡무진 공부 편력기
임자헌 지음 / 책과이음 / 2022년 9월
평점 :
책 제목이 [나의 첫 한문 수업]이었는데, 순간 내가 한문을 배우던 때가 생각났다. 한문, 다른 현대 외국어처럼 수요가 그렇게 많거나 폭발적인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한문을 배운다거나 한문을 배웠다는 사람을 만나면 더욱 반갑다. 제목을 보자마자 한 번이라도 한문을 배웠던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그 기쁨, 뿌듯함, 우리끼리 아는 즐거움을 공유해 보고 싶기도 했고, 남의 공부 모습을 훔쳐보고 싶은 충동도 느껴졌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 전공을 꿈꾸던 저자는 생활 형편 탓에 미대 혹은 미술 관련 학과를 지원하지 못하고 심리학과에 진학한다. 심리학을 전공하면서도 미술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였는지 직장에서 미술잡지, 미술 관련 취재를 업으로 하는 일을 했다. 그러다가 미술사학 대학원을 계획하게 되었는데,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접하게 된 것이 한문과의 첫 만남이었다. 동양사학 입시 전공에서 중국어, 일본어가 아닌 한문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렇게 결심한 이후부터 저자와 한문의 동거는 시작된듯 하다. 고전번역 연수원에서 논어, 맹자 특강을 들으며 한문의 세계에 점차 빠져들게 된다. 내가 과연 잘 살고 있는 건가 싶은 아리송한 순간, 내가 무엇인가에 찌들었다고 느끼는 그 순간, 책에서 명문장을 만나게 되었을 때의 그 기쁨이란 고전의 우물을 파 본 적이 있는 자만이 알 수 있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것이다.
저자는 한문에 마음을 빼앗기며 대학원 입시를 준비했고, 결과는 결국 낙방이었다. 그게 정해진 운명이었는지 저자는 인생의 전체적인 방향을 한문으로 틀게 된다. 28세, 남들은 한문학과, 한문교육과, 중국어 학과, 일어학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한문 특강을 들으러 오던 시기, 저자의 도전은 이제 막 시작이었다.
책은 한편의 글로 되어있지만, 읽는 내내 만화책을 읽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고전과 현대를 잇는 번역가이셔서 그런지 문장에서 그 어떤 현장감과 생명력이 느껴졌다. 상임연구원이 되기까지 그리고 상임연구원이 되어서도 한문 공부가 늘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을까. 한문 그 자체도 그렇게 호락호락한 공부가 아니었을 것이고, 또 주변에서 취직을 했다느니, 경제적 독립을 했다느니, 결혼을 한다느니 이런 소식이 들려오면 나도 모르게 나는 내 인생을 잘 살고 있는지 사춘기를 벗어나지 못한 아이처럼 밤새도록 몇 날 며칠을 고민했을 것이다. 저자가 한문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괴테의 말 하나가 있다. '인간은 노력하는 동안 방황하게 마련이라'. 남들이 볼 땐 한문이라는 고인 물에서 도대체 뭐 하는지 모를 그런 인생으로 비칠 수 있었도 저자가 번역이라는 가공 기술로 영롱한 고전 문장 하나를 세상에 내 놓을때 방황하는 인간들은 이 영롱한 진주를 보며 다시 인생의 중심을 잡고 힘을 내어 살아가게 될 것이다.
고전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저자의 삶의 모습과 그러한 생명력을 안고 현대에도 부단히 얼굴을 들이미는 고전은 어딘가 닮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