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젖어 - 나는 위로해 주었던 95개의 명화
손수천 지음 / 북산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많은 명화들이 담긴 책을 본다. 책을 보지만 그 속에 담긴 모든 그림들을 다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설명을 이해하고 넘어간다. 지나친 수많은 그림 중에 '어떤 것'이 기억에 남는 것은 어떤 경우일까. 그 어떤 그림이 그냥 좋아서 일 수도 있겠지만, 그림과 관련된 나의 경험 혹은 타인의 경험이 녹아든 스토리도 그 어떤 것을 수많은 그림 중 특별한 하나로 만든다. 스토리의 힘은 그렇다.

[그림에 젖어]는 95개의 명화에 대한 저자 개인의 아주 소소하고도 사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예술서적을 읽고 있는지, 에세이를 읽는지 그 경계가 불분명한, 아주 모호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책은 부담 없는 가벼운 구성으로 되어있다. 마치 누군가의 일기장을 넘겨보는 것 마냥 그림과 관련된 저자의 이야기로 그림과 만나게 된다. 그중 책에 실린 비토리오 마테오 코르코스의 `작별`이란 그림이 기억에 남는다. 이 그림을 그냥 객관적이고도 역사적인 사실에 기초한 설명으로 보았다면, 나는 얼마 못 가서 금세 이 그림을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딱히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그림에 더해진 저자 개인의 에피소드는 이 그림을 내 머릿속에 각인시키는데 분명한 역할을 했다.

코르코스의 '작별'이란 그림을 보고 그 누가 횟집과 매운탕을 떠올릴 수 있으랴. 작품 속 여성은 아주 우아한 차림으로 접은 양산을 손에 쥔 채 바다를 보고 서있다. 하얀 드레스와 시선이 머무는 저 푸른 바다의 하늘빛이 아름다움과 뭔지 모를 신비함을 더한다. 이 그림이 횟집 2층에 걸려있었다니... 나는 이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자못 웃음이 났다. 이런 그림을 횟집에 걸지 말란 법은 없겠지만, 뭔가 매치 안 되는 오묘한 분위기가 활자를 타고 나에게 전해졌다.

저자가 만나기로 했던 호감의 여성은 그녀를 기다리며 바라보았던 그림과 달리 안경과 바지 그리고 운동화 차림으로 나타났다. 정장 차림을 했던 저자에게 어찌어찌해서 있었던 데이트, 그날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아무런 인연을 이어가지 못해서였을까. 그날의 운명을 예감이나 한 듯 마침 코르코스의 그 작품명은 '작별'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머릿속에 작가와 작품명이 뚜렷이 새겨졌다. 타인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 나도 모르게 그림을 기억하게 되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썼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