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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 몰랐던 일본 문화사 - 재미와 역사가 동시에 잡히는 세계 속 일본 읽기, 2022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도서
조재면 지음 / 블랙피쉬 / 2021년 12월
평점 :
지금도 일본을 잘 모르지만, 처음 일본에 갔을 때 느낀 감정은 '안정감'이었다. 족히 백 년 이상은 되어 보이는 오래된 가게와 깨끗한 거리, 몇 대째 내려오는 장인이 만들었다고 하는 우동, 스시... 관광으로 간 일본 여행이었지만 지금도 그 첫인상을 잊을 수가 없다.
정치체제가 다른 중국은 그렇다 치더라도 자유민주주의 사회라고 하는 점에서 한국과 일본은 그래도 비슷할 줄 알았는데, 각 나라에 여러 번의 정권이 들어오고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에서 포착된 모습은 일본 사회에서는 공통점으로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의원 세습은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일본 사회에서는 그것이 하나의 전통이란다. 물론 어느것에나 일장일단은 있겠지만, 이것 하나만으로도 일본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참으로 뭔가 쉽게 바뀌기 어려운 나라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가 좋게 말하면 '안정감'을 주고, 나쁘게 말하면 변화에 '취약하다' (혹은 변화하길 거부하는)고 볼 수 있는 데에는 세습과 오랜 전통을 고수하는 일본인들의 특성에 있는 것 같다. 맛집, 먹거리 등 어느 특정 가게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백 년 이상은 기본이고, 아들이든, 가족이든 기술과 노하우가 전파되는 데에는 식당은 물론 사회와 국가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인 영역까지 이르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겠지만,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그 아들이 다른 국회의원보다 진급이 빠른 것도 이해가 안 가고, 그걸 용인하고 뽑아주는 국민성도 이해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읽는 것인지도...
이렇게 낯선 모습을 지닌 일본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한구석이 우리와 닮아있는 부분도 있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 부분을 읽으면서는 우리의 삼포세대, N포세대를 떠올리게 했다. 1991년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면서 여러 가지 사회 복합적인 요인으로 일본에는 장기 불황이 들어서게 되었다. 부동산 버블을 시작으로 이 10년의 시기를 흔히 사람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른다. 1980년대, 199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이들을 지칭하는 사토리는 '득도, 깨닫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증권사와 은행의 도산과 파산 등 불안한 경제와 사회를 보면서 자란 이들이 막상 사회로 나오게 되었을 때 마주한 것은 비정규직의 격차사회였다.
이러한 세대들의 등장은 사회소비현상을 바꿔놓기도 하였다. 버블 이전에 만연했던 사치와 허세 풍조, 명품과 같은 비싼 소비재에 대한 소비는 줄고, 이른바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자 사회적 현상으로서 사토리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토리가 품고 있는 '깨달음, 득도'에는 정말 복합적인 뉘앙스가 담겨있는 듯했다. 그들은 뭘 깨달았을까. '이 사회, 내가 아무리 열심히 애쓰고 발버둥 쳐봐야 할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거? 그러니 작고 확실한 행복에만 몰두하는 것이 내 삶에 바람직하다는 거?' 그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손닿지 않는 사회에서 애쓰지 않기로 했다. 그들은 욕심부리지 않기로 했다. 동일본 지진 이후 그나마 있었던 물욕마저 내려놓았을지도 모른다. 일본으로부터 불어온 바람, 미니멀리즘 열풍은 그렇게 탄생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