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고전의세계 리커버
장 자크 루소 지음, 황성원.고봉만 옮김 / 책세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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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얘기를 하면서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누군가로부터 이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은 그때가 행복했겠구나 하는 어렴풋한 짐작을 한다. 누군가에게 돌아가고 싶은 '그때'는 분명 행복한 시절이었을 것이다. 우리 형제에게 일절 '공부하라'라는 말씀과 그 어떤 부모의 욕심, 강요가 없으셨던 부모님 덕분에 나는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그때 잘 놀고, 잘 웃고, 잘 뛰어놀던 즐거운 기억과 행복했던 추억의 힘으로 지금 성인의 삶을 단단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말로만 듣던 루소의 [에밀]을 읽으면서 그 어떤 슬픈 소설과 같은 장르가 아님에도 카페 한구석에서 눈물이 글썽거리는 경험을 했다. 내가 내 유년 시절을 생각하면 그건 잠시나마 행복한 추억에 빠지는 잠깐의 이벤트가 됐지만, 성인이 되어 보고 들은 여러 아이들에 대한 소식과 불행한 상황 등을 순간적으로 떠올렸을 때, 그것이 내 유년 시절의 행복과 비교되서인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울컥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에밀]은 나의 유년 시절을 거쳐 지금 현재의 '아이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나는 루소를 내 방식대로 이해한다면 '계몽주의의 이단아'내지는 '진정한 계몽주의자'라고 본다. 이 두 가지 표현은 좀 아이러니하긴 한데, 프랑스의 집단지성이라고 하는 백과전서파의 활동 등, 인간의 지식과 이성을 최고로 여기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규범, 제도에 대한 맹신이 사회적 분위기를 이루던 시절, 루소는 오히려 인간의 이성과 이성을 바탕으로 탄생한 사회적 산물들이 인간의 선한, 자연적 본성을 망친다고 보았다. 인간 이성과 계몽을 추종하던 거대한 흐름에서 루소는 인간에 가해지는 이것들의 경계를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루소는 프랑스의 계몽주의를 설명할 때 따로 분류되어 언급되곤 한다.

그러나 지금, 계몽, '진정한 계몽'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본다면 [에밀]을 비롯해 그의 여러 저작에서 피력한 그의 주장은 소름 끼치는 설득력을 갖는다. 그래서 나는 그를 우리 시대의 '진정한 계몽주의자'로 보기도 한다. 이성과 과학이 손잡고 만들어낸 산업화 그리고 그 컨베이어 벨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인간성, 20세기 세계대전의 참상 등.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이성과 그것을 통한 계몽이라는 하나의 이념 아래 맞아하게 된 인간의 슬픈 역사다. 인간이 인간을 어떤 목적에 부합하도록 혹은 수단으로 대하게끔 하는 인간 이성에 대한 맹신은 지금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이성은 그저 하나의 도구였고, 계몽은 그저 허울좋은 빛이었음을.

"어린아이가 터득하는 최초의 관념은 지배와 예속의 관념이다. 말을 배우기 전에 명령하고, 행동할 수 있기 전에 복종한다. 때때로 사람들은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갖기도 전에, 아니 잘못을 저지를 능력을 갖기도 전에 아이에게 벌을 준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아이의 어린 마음에 일찍부터 편견을 심어 넣고 나중에는 그것을 자연의 탓으로 돌린다. 아이를 애써 심술궂게 만들어놓고는 아이가 심술궃다고 한탄하는 것이다."

p. 62

"어린아이는 이런 방식으로 여자들 손안에서 그녀들의 일시적 기분의 희생물이 된 채 6~7년을 보낸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이에게 이것저것을 가르친 다음, 이를테면 아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나 아이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물로 기억을 가득 채운 다음, 또 아이에게 인위적으로 심은 편견으로 자연성을 질식시킨 다음, 이 부자연스러운 존재를 가정교사의 손에 넘긴다. 가정교사는 이렇게 인위적 육성이 완성된 아이에게 수많은 것들을 가르쳐 발달을 완성시키는데,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을 아는 법, 자기 자신을 활용하는 법, 참되고 올바르게 살아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p.62

"그리하여 이 아이는 지식은 가득하되 분별력이 없고 육체와 정신이 모두 허약한 노예이자 폭군이 된 채 세상에 내던져져 무능과 오만과 모든 악들을 드러낸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를 보고 인간의 가련함과 사악함을 한탄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그 인간은 우리가 제멋대로 만들어낸 인간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인간은 결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p.63

루소의 [에밀]보다 한참 전에,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이나 아도르노의 [미학 이론]에서 이성의 개념으로는 포섭될 수 없는, 인간이 지닌 최후의 보루인 '인간성'에 대해 접할 수 있었는데, 존 듀이를 비롯해 일련의 현대철학자들이 루소의 주장에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에밀]이 오늘날에도 명저로 손꼽히는 이유는 18세기의 시대적 상황을 기술하고 있지만, 그 통찰력이 오늘을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어른에게만 권할 책이 아니다. 한 번쯤 어린 시절을 지냈고, 우리 사회, 공동체에서 아이들을 품고 있는 어른들이라면 반드시 읽고 그 무엇인가를 느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인간들이여, 인간답게 행동하라. 그것이 그대들의 첫 번째 의무다. 신분이나 나이에 개의치 말고 인간과 관련된 모든 것을 인간적으로 대하라.(...) 아이를 사랑하라. 아이가 그들의 놀이와 즐거움과 사랑스러운 본능을 마음껏 누리도록 도와주어라.

언제나 웃음이 입가에서 떠나지 않고, 언제나 마음이 평화로웠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째서 그대들은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릴 그토록 짧은 순간의 환희를, 그들이 맘껏 누릴 줄도 모르는 그토록 소중한 행복을 빼앗으려 하는가?

어째서 그대들은 이제 그대들에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고, 아이들에게도 다시 오지 않을 쏜살같은 어린 시절을 쓰라림과 고통으로 채우려 하는가?

아버지들이여, 그대들은 죽음이 언제 그대들의 아이를 데리고 갈지 알고 있는가?

자연이 아이들에게 부여한 그 짧은 순간을 그들에게서 빼앗고 후회하는 일을 만들지 마라. 그들이 존재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되면 곧 그것을 누리도록 해주어라.

신이 언제 그들을 불러 가더라도 그들이 인생의 기쁨을 맛보지 못하고 죽는 일은 없도록 하라.

p.14-15(재인용)

세계 여러 나라에서 어린 나이에 노동하는 아이들, 착취당하는 아이들, 성에 유린당하는 아이들, 매 맞아 죽는 아이들, 어른의 이기심과 욕심에 말도 안 되는 사고로 다치거나 죽는 아이들이 두 번 다시 생기지 않도록... 내 이 바람을 성탄절에 마음을 담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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