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 이 책 덕분에 니체를 좀 더 잘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
니체와 나의 처음이자 유일한 만남은 [도덕의 계보학]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읽은 책이었다. 그때 니체에 대한 나의 인상은 거칠게 말하면 '기독교에 욕을 퍼붓는 망치 든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런 인상을 몇 년 동안 가지고 살다가 [살로메, 니체를 말하다]에서 본 니체는 내가 생각했던 인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책에서 봤던 다소 소심하고 수줍었던 그의 모습이 머리에 남아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을 읽으면서 철학사 한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니체 본연의 모습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나에게 '차라투스트라'는 곧 '니체'로 읽혔다.
부끄럽게도 원전이든, 번역이든 니체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지 않고, 이것의 해설서로 나온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로 먼저 향하게 되었다. 니체 읽기를 시도했던 [도덕의 계보학]에서 나는 이미 쓴맛을 보았기 때문에 혼자 힘으로 그의 책에서 '무엇인가'를 직접적으로 얻어내기 어려워하는 심리적 부담감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선생님이 필요했다.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은 셈으로 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해설서가 굉장히 친절했다. 이 책에는 작품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과 작품 해설이 담겨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자체가 4부로 구성된 책이기에 이 해설서도 작품 해설에서 4부의 구성 형식을 지닌다.
제1부에서는 차라투스트라가 산속에서 10년 동안의 명상을 마치고 깨달은 바를 산 밑의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러 가는 이야기를 닮고 있다. 그가 깨달은 것은 바로 '신은 죽었다'는 것.
'신이 죽었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신 자체도 관념적인 것이지만, 여기서 죽음은 물리적인 죽음이 아니다. 니체가 죽었다고 규정한 신도 물론 그리스도교의 신(종교)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넓게는 니체 자신에게 가상으로 이해되는 저편의 세계, 플라톤 이래로 이어져왔던 전통적인 형이상학, 초월적 이념, 도덕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라는 인물을 통해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왔던 전통 전체를 전복시키고자 했던 것 같다.
특히 그리스도교가 니체에게서 비판받은 이유는 그것이 허무주의를 양산해내기 때문인듯하다. 우리가 사는 여기 '이 세계'는 사멸할, 일시적인 삶이요, 죽어서야 이르게 되는, 천국이라 일컬어지는 '저기 위 하늘세계'에서의 삶이 참된 것이라고 설파하는 그리스도교는 결국 인간이 지금 땅에 발 닿아있는 '현재의 삶'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현재 삶을 의미 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리게 만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