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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다이어리북 366
김영수 지음 / 창해 / 2021년 9월
평점 :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
[사마천 다이어리북 366]
- 명구에 그의 정신이 깃들어 있어 날마다 허투루 살수 없다 -
굳이 사마천이 아닌 그 기능 때문이라도 내년을 준비하는 이 다이어리를 받아든 순간 기분이 좋았다. 진짜 가죽인지 인조인지는 몰라도 가죽 특유의 냄새와 함께 고급스러운 그립감이 이 다이어리를 좀 특별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내년에 사용할 다이어리를 미리 준비해놓았다는 사실에 뿌듯한 마음이었다. 다이어리를 넘겨보면서 무엇을 어떤 식으로 기록할지를 한참을 고민했다.
처음 만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탐색하는 과정에서 이리저리 말을 걸어보는 것처럼 다이어리긴 다이어리인데 좀 특별해 보이는 이것이 과연 어떤 다이어리인지 이리저리 넘겨보았다. 처음에 볼 때는 쓰는 부분이 많다 해서 기능적 측면인 공간만 봤는데, 두 번째 다시 보고 세 번째 다시 보면서 보면 볼수록 나는 그 사이 사마천 그리고 그의 저서[사기]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사마천과 [사기]에 대해서 잘 모른다. 읽어본 적도 없을뿐더러 학교 다닐 때 고작 교과서에서 잠깐 본 정도가 다일듯싶다. '역사서'라는 정도가 내가 [사기]에 대해 갖고 있는 지식 전부일 것 같다.
1년치를 책처럼 사용하는 다이어리는 시중에 많다. 또한 소설이나 고전에서 따온 좋은 명구를 페이지마다 실어놓은 다이어리도 있다. 그래서 사실 새로울 것이란 게 없는 다이어리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의 특별함은 아무래도 사마천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마천 다이어리북 366]의 맨 처음 페이지에서 이 다이어리를 출판하게 된 배경에서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나는 이 글에서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음력(태초력)을 사마천이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이 다이어리의 편저자 김영수 선생님은 사마천의 이러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사마천 사기 달력인 이 다이어리북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태초력을 만든다....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태초력을 만든 사마천,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하는 궁금한 마음으로 이 책에 실린 그에 관한 간단한 이야기를 읽어내려갔다. 사마천은 평생을 역사기록에 헌신한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못다 이룬 역사서 편찬 일을 이어받아 끝내는 완성하고 저세상에 간 사람이었다. 그가 '완성'이라는 이름으로 이룬 업적이 더욱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그가 겪은 고난과 고통에 있다.
한나라 무제 때 역사서를 편찬하는 일에 종사하며 태사령으로 활동하던 사마천은 47세때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게 된다. 이른바 '이릉변호사건' 혹은 '이릉의 화'사건이다. 내용인즉 이러했다. 이릉이라는 장수가 공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흉노와의 전쟁에서 지고 말았다. 한간에는 이릉이 흉노에게 항복해 포로로 잡혀가 그곳에서 흉노 병력을 훈련시키며 잘 살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릉의 패배를 두고 여러 조정 대신들이 이릉에 대해 비방과 비방을 더해 한 무제 앞에서 씹기 시작했다. 한무제가 이릉에 대해 사마천의 의견을 묻자, 사마천은 개인적 친분도 없었던 이릉이었는데도 그의 과거 공을 언급하며 이릉을 변호했다(사마천의 이러한 태도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사사로움에 치우치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중립적이고 객관적 시선을 견지하려 했던 그의 정신과 자세가 아닐까 한다). 또한 흉노족에게 패배한 것은 작전상의 실수였을 거라는 식의 의견도 덧붙였는데, 이 의견이 한무제의 처남을 '저격'한 것으로 오해를 사게 되었다. (작전은 한무제의 처남인 이광리가 짠 것?)
한무제는 자신이 사랑하는 와이프의 오빠인 처남을 건드린 것이라고 생각해서인지 화가 나 사마천에게 사형을 내렸다. 그 당시 사형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2가지였다고 하는데, 하나는 돈 50만전을 내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궁형이었다.(나는 여태 '궁형'을 궁둥이를 치는 태형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수중에 돈도 없고 도와줄 이 아무도 없었던 사마천은 스스로 궁형을 선택해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다. 추측건대, 아니 감히 추측할 수도 없을 그 극심한 고통을 감내하고, 비참하면서까지 살아남고자 했던 것은 다름 아닌 그가 '살면서 끝내 이루고자 했던 것'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역사서 편찬, [사기]의 완성. 오늘날 우리가 손에 쥔 이 책은 사마천의 피를 토하는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나는 다이어리북속의 이 이야기를 읽고 난 후 애초에 이 책에 대해 가졌던 자세와 태도, 기분이 달라졌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하나의 물질로서 고급진 다이어리가 생겨서 좋아하는 마음이 가득했었다면, 사마천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게 된 후에는 마음이 숙연해졌다. 날짜마다 실려있는 명언과 명구들이 그 어느 때보다 묵직하게 다가왔다. 이 책에 무엇을 기록하고 어떻게 사용할지는 개인의 자유지만, 적어도 장난식의 낙서와 같은 끄적거림보다는 사마천의 인생이 보여주는 그의 정신처럼 목표의식을 갖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는 데 도움이 되는 그런 기록들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몰랐던 사마천, 이제 [사기]가 읽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