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의 유산
장웨이 지음, 조성환 옮김 / 파람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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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

[도연명의 유산]

- 나보다 더 힘들었을 그가 나를 위로해줍니다 -

어떤 사람을 안다는 것, 오랜시간 그와의 사귐이 없다면 첫인상으로 그를 안다고 생각, 아니 착각할지도 모르겠다.

도연명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그의 시가 전해주었고, 그의 시중에 가장 좋아하는 작품들인 '귀원전거'와 '음주'를 통해 나는 도연명이 단순히 한적한 농촌생활을 즐겼고, 그렇게 인생을 즐길줄 아는 그런 멋스러운 부류의 사람으로 이해했고, 그게 다였다. 감상에 있어서 예술작품과 작가의 존재가 온전히 분리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한시는 대개 작가의 시선과 마음이 투영되고 읽히는 맛이있어, 작가가 어떤사람인지에 대해서도 알수있는 소소한 매력이 있다.



結廬在人境(결려재인경) 사람 사는 곳에 집을 지었으나

而無車馬喧(이무거마훤) 수레의 시끄러운 소리 들리지 않네

問君何能爾(문군하능이)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 그럴 수 있는가

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마음이속세를 멀리하니사는 곳이 절로 외지네

採菊東籬下(채국동리하)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다가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한가로이 남산을 바라보노라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해질녁에 먼 산은 아름답고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날던 새는 짝을 지어 돌아오네

此間有眞意(차간유진의) 여기 참된 뜻이 있으니

欲辨已忘言(욕변이망언) 말하려다가 이미 말을 잊었네

내가 처음만났던 도연명이 어떤 인상의 사람인지 소개하고 싶어 그의 작품 '음주'(제5수)를 올려보았다. 작품을 통해 보면 한없이 온화하고 서정적이며 자연을 좋아하는, 그렇게 태어나고 아무런 우여곡절없이 잘살다가 간 그였을것 같지만, 작품의 이면엔 도연명 그가 이렇게라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으면 살수없었던, 피비린내가 진동했던 암울한 시대가 있었다.

도연명은 동진시대사람이다. 그 먼 옛날 하-은-주-춘추전국--한-위진남북조-수-당-송-원-명-청에서 춘추전국과 더불어 혼란한시대 top2에 드는 위진남북조의 그 진에 해당한다. 위진남북조라고 묶어서 부르는 이유는 다른나라들에 비해 짤짤한 나라들이 금방세워지고 없어지고 해서 귀찮아서 누군가 묶어서 부른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한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위나라가 사마의가 세운 서진에 먹히고, 서진은 오랑캐의 공격으로 그 일부사람들이 남쪽으로 내려와 동진을 세웠다한다. 중국사연표를 보면 알겠지만 동진이후에 송제양진으로 불리는 남조가, 서진의 멸망뒤에 5호16국,북위 동위 서위 북제라고 하는... 암기도 안되고 기억하기도 싫은 짤짤한 나라들이 서로 치고 박으며 세력다툼을 한다. 이렇듯 도연명이 속한 시대는 목숨조차 부지하는것만도 굉장히 다행스러운 극도로 혼란한 시대였다.






[도연명의 유산]은 도연명이라는 사람에 대한 주석, 부연설명과 같은 일종의 해설서이다. 자료에 근거한 산문형식으로 되어있어 각각의 짤막한 글은 저마다의 제목을 갖는다.









서문에서는 아무페이지를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고 쓰고 있지만, 목차의 구성이 대개 도연명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에서부터 시작해 연대기에 따르는 진행을 보이는것 같다. 따라서 도연명에 대해서 잘 모른다면 첫페이지부터 차근차근 읽어보는것이 좋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버티기 -

도연명은 바로 온갖 고통과 가난의 궁지와 위험 지대 속에서 '버티는' 사람이었다.

그가 무엇때문에 그렇게 할수 있었는가는 우리가 풀어야 할 의문이다.

우리가 시인의 신상에서 이 의문 부호를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그 매력을 발견하는 과정이고, 우리의 아픈곳을 빈번히 건드리는 과정이다.

p.97

그의 시를 보면 한없이 한가하고 유유자적했을것만 같은 도연명이라는 사람의 근저에는 버티고자하는 의지가 있었다고 저자 장웨이는 말한다. 시대를 버티든, 자신의 삶을 버티든 그래야만 비로소 자신의 신념과 정신을 지킬수가 있기 때문이다.

- 고인과 존엄을 비교하면 -

도연명이 우리에게 남겨준 풍부한 유산은 바로 존엄, 자유, 전원에 관한 것이고,

생명의 본질에 관해 강렬히 추구해야 하는 천성이며,

이처럼 지대한 문제에 대한 사색이다.

p.171

도연명은 자연을 사랑하였다. 그가 자연을 사랑하기도했지만, 자연도 그를 위로해주었다. 살아있는 생명에게는 모두 존엄의 가치가 있다고 본 도연명은 존엄성을 지닌 존재에게서 존재를 인정받고 인정하는 관계속에 진정한 자유를 구현할수있다고 본듯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문뜩 우리와 우리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의 관계를 생각했다.

우리가 현재 우리자신을 자유롭다 여기는 것은 일종의 환상은 아닐런지.

우리가 만들어내는 환경오염은 자연을 헤치고,

자연은 자신의 환부로 인간을 반격한다.

그 수많은 오염과 전염병...

우리는 정말 우리자신을 자유롭다 말할수 있을까

- 뺄셈으로 살기 -

도연명은 물질적으로 메마른 일생을 보냈지만, 다른방면에서 보면 도리어 일종의 '부유'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가 개인적으로 지배하는 많은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시간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것이고, 사람의 일생은 결국 자기만의 많은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자신을 평가하는 최대표준이자, '재부'를 평가하는 최대 표준이다.

그는 돌아온뒤(관직을 내려놓고 시골에 정착) 필경 개인적 시간이 많아졌고, 욕망과 체제의 노역아래에서 극진히 바쁘게 뛰어다니지 않았다. 생활방면에서 욕망의 부림을 받지 않았고, 예술방면에서 미사여구로 글을 짓는 시대 기풍에 의해 노역당하지 않았다. 이는 모두 농사지은 이후 얻은 장점이다.

p.515-516

그의 작품들을 두고 흔히 소박하고, 소탈한 그리고 질박質樸하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책의 첫머리에서 저자가 그가 살았던 위진(위나라부터 동진)시대를 두고 비유한 '정글'로부터 거리를 두었기 때문일것이다. 양육강식의 법칙은 흔히 나라와 나라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그 특수한 무엇이 아니다. 그가 잠시나마 관직생활을 지냈던 관료사회도 마찬가지였다. 관직생활을 비롯해 그가 속한 시대의 모든현상에 회의와 염증을 느낀 도연명은 시골로 돌아와 자신의 시간을 지배하며, 그 시간들을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쓸 수 있었다. 앞서 그가 경험했던 시대적 혼란속에 중요한건 온갖미사여구를 제거한 마음속 저 깊은곳 어딘가에 있는 근원적이면서도 본질적인것이라고 깨달았을 터이다. 이 깨달음이 그의 작품 전체에 채색되어있는듯하다. 우리가 그의 작품으로부터 받은, 질박하다고 표현하는 그 인상은 아마도 이로부터 비롯된것은 아닐까.




현재, 참으로 혼란한 삶을 살고있다. 참으로 빠르고 어지러운 삶을 살고있다. 코인이 나타내는 숫자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사람들을 보며 살고있다. 저래도 되나...싶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뉴스로 들으며 살고있다. 쓰레기로 차가는 매립지를 보며 걱정어린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한없이 나열해도 내가 사는 이 세상이 도연명, 그가 살았던 시대만큼이나 잔인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보다 더 거친시대속에 있던 사람에게서 안식과 위로, 평온을 선물받았다. 그가 남긴 시들을 보고 있자면 파란하늘과, 초록나무와 벼가 익어가는 노란 황금들판을 배경삼아 잠시 쉬는 기분이었다.

도연명은 나에게 이러한 쉼을 제공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도연명의 유산]을 읽고, 그가 '그'다운 작품을 내고, 죽을때까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며, 그러한 삶의 모습을 스스로 지켜나갈수 있었던 도연명의 항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도연명의 유산, 다름 아닌 바로 그의 삶의 모습 그 자체였음을 책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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