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영백의 발상의 전환 - 오늘날의 미술, 아이디어가 문제다
전영백 지음 / 열림원 / 2020년 2월
평점 :
‘개인’-‘미학’-‘문화’-‘도시’-‘사회·공공’, 발상의 전환
[서평] 『발상의 전환(전영백의) (오늘날의 미술, 아이디어가 문제다)』(전영백, 열림원, 2020. 02.29.)
간혹 전시회장에 가면 액자 속에 담긴 따분하기 이를 데 없는 미술 작품들을 보곤 한다. 형형색색으로 사진을 연상케도 하고, 추상적이기도 하지만 너무 눈이 피로하고, 계속 보다보면 지루하기도 하다. 『발상의 전환』은 내가 알고 있던 기존의 미술 작품들 이외의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현대미술의 스타들 중 발상의 전환이라는 기준에서 보아 가장 중요한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숙고하여 선정했다고 한다.
책은 크게 총 5가지 주제로 나뉜다. <개인>에서는 행위예술, 일상에 담긴 불안, 사적인 조각품 등 비밀스럽고 개인적인 것들과 관련한 작품들이, <미학>은 빛, 비어 있음, 기억과 실제의 괴리, 대자연, 괴물과 같은 추상적이고 초자연적인 느낌의 작품들이, <문화>에서는 특정 국가와 도시, 시대와 관련한 작품들이, <도시>는 도시 내부의 그래피티, 밤을 밝히는 미술 등 주로 시각적인 부분과 빛을 이용한 작품이 소개된다. 마지막으로 <사회.공공>은 차별, 분리, 대중 등과 관련해 전혀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독특하고 창의적인 작품들이 나온다.
인간의 심리를 파고드는 작품들
작가 곤잘레스 토레스는 침대라는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사회 편견과 문화 관습에 대항하는 공적 전쟁을 치룬 자로 유명하다. 개인 삶의 지극히 사적인 부분을 대중에게 공개하면서 작품의 의미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작가의 사진작품인 <무제>는 에이즈로 죽어가는 연인과의 사적 공간과 그 신체적 흔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작품 설명 없이 관람했더라면 단순히 ‘침대 사진?’이라고 여겼을지 모를 일이었지만, 알고 보니 신체의 극단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정신적 도약을 포함해 정말 많은 의미가 담긴 작품이었다.
오늘날 접하는 현대미술 중에는 인간 심리를 교묘히 파고드는 작품들이 종종 있다. 친숙한 삶 속에 숨겨진 은밀한 공포는 SF영화에서 보는 요란한 공포보다 훨씬 두렵다. 친숙하면서 낯선 이중적 감정을 유발하는 작가 고버는 인체뿐 아니라 침대, 안락의자 등을 자신의 정교한 조각으로 만들어 집의 실내와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에 따라 관객은 그 생략된 드라마와 숨겨진 트라우마를 밀착하게 느낀다.
일상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조각 설치는 지극히 평범하기에 불안을 유발한다. 마치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사실은 내면의 깊은 고통과 불안이 표면적으로 살짝 덮여 있는 상태일지 모른다는 점을 보여주는 듯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러한 작품을 보게 되면 관람자들은 슬픔도, 위로도 혹은 분노로도 발산될 수 없는 무력한 충격에 빠진다.
작가 재닌 안토니는 자신의 신체를 일차적 도구로 사용하기로 유명하다. 그는 자신의 혀, 속눈썹, 머리카락 등을 사용하여 전통적 도구인 끌, 연필, 붓을 대체한다. 신체를 활용하는 안토니의 작업은 제한된 시간성을 가지며, 퍼포먼스와 조각 사이의 구분을 흐린다. 아이폰을 드로잉의 수단으로 삼은 작품도 있다. 꽤나 비싼 가격에 팔린다고 한다. 정말이지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좋은 작품이란 역시 인간의 자취를 담고 인간의 본성에 충실함을 느끼게 한다.
시각을 넘어 공감각을 느끼게 하다
작가 터렐은 자연현상을 동일하게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일명 유사자연 작업이다. 이 작업은 고도의 발전된 테크놀로지와 공학의 힘을 이용하며, 보는 이를 압도시킨다. 그런데 이렇듯 관람의 주체가 거리두기 없이 작품에 그대로 압도되고 침잠하는 것은 아무래도 관람자의 자의식을 흐리는 일일 수도 있다. 때문에 미술이론가들은 터렐의 작업 효과에 대해 의구심의 갖는다. 왜냐하면 미술을 관람하는 훌륭한 방법은 작품에 매몰되지 않고 적정한 거리를 두고 관람자의 자의식을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은 관람자의 느낌을 중요시한다. 작가들은 미적 공간이나 환경을 만들어 이를 향유하게 하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 감정을 유발시킨다. 사랑의 대상을 만들어 보이는 게 아니라 사랑 자체를 느끼게 하고, 공포물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공포를 체감하게 한다. 20세기 중반까지 모더니즘 시대에는 관람자의 눈만 감동시키면 됐다. 그러나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관람자가 공감각을 느끼도록 한다. 때문에 개념 미술을 관람할 때 작품의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작업의 메시지와 사고방식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삶과 경험에 빗대어보면 더욱 유의미하다.
또한 오늘날 현대미술에는 무형의 작업으로는 퍼포먼스도 있다. 이는 대개 작가 스스로 퍼포머가 되어 한 번의 실행으로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형 설치 미술도 요즈음 추세이다. 또한 사진, 종이 작업, 비디오 에세이, 의인화된 조각, 퍼포먼스, 빛 설치작품과 관련한 작품도 인기다. 작가들이 활용하는 재료 또한 붓과 물감뿐 아니라 블라인드, 전등과 전깃줄, 옷걸이, 인조 짚, 벨 등 생소한 것투성이다.
예술은 엉뚱한 상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분야다. 이러한 픽션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사람들은 예술가다. 마치 서도호 작가가 한국의 건축물이 하늘에서 추락하여 기존 건물에 충돌한 것처럼 보이게 한 작품 <틈새 집>을 들 수 있다. 이외에도 많은 작품들이 발상의 전환에 따라 책으로 소개되었다. 작품을 감상하기 위한 눈을 한 층 드높여주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