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같은 가짜, 세련됨으로 역습하다
[리뷰] 『라이프 트렌드 2018』(김용섭(칼럼니스트), 부키, 2017.11.17.)
트렌드는 생물 종(種)과 같다. 시간에 따라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화해왔고, 공간에 따르더라도 나라마다 다르다. 그러나 종의 진화가 지구 환경 변화에 맞춰 자연선택 되는 것이라면, 트렌드는 초기 트렌드를 형성하는 트렌드세터들에 의해 시작된다는 차이가 있다. 초기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것은 ‘얼리 어답터’들이다. 이후 이를 따라가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트렌드의 대중화가 시작된다.
그럼 2018년의 대한민국 트렌드는 어떨까. 『라이프 트렌드 2018 : 아주 멋진 가짜 Classy Fake)』의 저자는 우리가 겪어온 일상을 분석하여 다양한 트렌드로 구분하였다. 작가가 2018년에 있을 라이프 트렌드로 가장 중요하게 바라본 키워드는 세련됨과 역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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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를 넘어선 멋진 가짜들
세련됨과 역습은 모두 진짜 같은 가짜들과 관련된다. 예를 들면 이렇다. 2017년 우리는 진짜 산속에서 캠핑하는 대신 캠핑장 분위기가 나는 카페나 술집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놀았다. 놀이동산에서 진짜 롤러코스터를 타는 대신 VR 고글을 쓰고 가상현실에서 놀이기구를 체험했다. 진짜와 가짜가 자연스럽게 섞이기 시작한 것이다. 포켓몬 고는 유명한 예다. 혼합현실로서 진짜와 가짜가 섞인 공간에서 사람들은 재미를 찾아 다녔다. 이러한 가짜들은 때론 진짜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특별하고 멋진 환경들을 구현했다. 이러한 트렌드는 사람들이 의식주 전반에서 격이 다른 가짜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가짜’라는 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다. 그러나 소비와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면서 부정적인 생각은 줄어들고 있다. 가짜를 숨기기보다는 겉으로 티 나도록 ‘Fake~’ 라는 레이블을 붙이는 경우가 허다했다. 가짜를 드러내는 동시에 진짜를 혐오하는 부류도 있다. 모피를 이용한 가죽 산업에 반감을 표하는 부류가 대표적이었다. 기술과 소재가 발달한 현재 굳이 동물을 비인도적으로 사육하고 죽이면서까지 원재료를 사용해야 하는지에 문제의식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시대가 점점 더 멋진 대체재로 전환을 이루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수평적 소비문화로 변하다
한 때 우리는 세상 물정을 알면 알수록 자신이 더욱 위축된다고 여겼다. 남들과 비교를 하는 눈을 가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속담은 무지의 두려움을 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있다. 양면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있다. 나의 명품과 다른 사람의 명품 정도를 비교하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디자이너들의 경우도 오리지널 이미지보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혁신을 더 높이 평가하는 추세다. 심지어 유명 브랜드들조차 모조품을 만드는 디자이너와 작업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소비자들에게 모조품을 통해 풍자와 재미를 선사한다. 하나의 창작이자 예술로서 말이다. 이들은 진짜 명품이 부러워 가짜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결국 사람들 소비 태도의 변화로 아주 멋진 가짜가 소비 트렌드가 됨을 보이는 사례들이다.
이제 사람들은 고급 구찌 가방을 들고 가벼운 H&M 원피스를 입거나, 비싼 샤넬 옷을 입고 저렴한 에코 백을 드는 것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그만큼 가짜와 진짜의 수직적 관계가 수평적으로 변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물건의 가치보다는 사람들의 의식 변화로 인해서다. 사람마다 가치를 두는 물체는 자동차, 옷, 지식 등 다양하다. 골고루 가치를 두고 부풀리기는 힘들다. 그렇기에 그 사람이 걸친 어느 것 하나에 중점을 두고 그 사람을 평가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기성세대에 주눅 들지 않는 Y세대
어떤 때는 매력적인 가짜가 관성에 젖은 진짜보다 더 고가가 되기도 하다. 가치 있고 멋진 라이프스타일의 소비문화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에 의해서다. 멋지지 않은 진짜는 얼마든지 가짜에 뒤처질 수 있는 시대다. 책을 읽으며 지식을 늘리는 것을 가치로 둔 사람에게 신발은 그저 신는 용도일 뿐이며, 그래서 이 사람에게 비싼 신발이나 명품 신발들은 자신의 싸구려 신발과도 같은 부류였다.
명품과 고가 물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예쁜 쓰레기’, ‘소소한 탕진’과 같은 트렌드가 생겨났다. 2017년 1,000원으로 할 수 있는 인형 뽑기, 동전노래방, 이모티콘 캐릭터 구입, 다이소 쇼핑 등등 소소한 돈을 탕진하는 것에 사람들은 재미를 느꼈다. 이는 주로 Y세대에서 많이 일어났다. 미래의 주류이자 기성세대가 될 Y세대는 1985년~1999년 생으로 21세기를 어릴 적에 맞은 세대다. 한국에서는 2018년 기준으로 19~33세에 해당된다. 직장인이 된 사람들도 있을 것이며 대학생과 취업 준비생인 경우도 있다.
Y세대에서 유행하는 문구는 욜로(YOLO)다. 욜로는 흥청망청 소비하자는 개념이 아니다. 한 번뿐인 삶을 취직, 결혼, 출산, 집 장만 등 기성세대가 짜 놓은 끝도 없는 공식에 매달려 살고 싶지 않다는 저항을 품고 있다. Y세대는 자신만의 가치관, 취향에 따라 살아가겠다는 신념이 강하다.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고 관성보다는 개성을 추구한다. 기성세대와 달리 주목할 한 가지는 Y세대에서 여성과 남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남자도 제모를 하고 양산을 쓰고, 피부 관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여자가 차별 받음을 볼 경우 부당함을 즉각 외치기도 한다. 기성세대의 관점에서는 체제의 틀을 뒤흔드는 반란들이다.
2018년에 이르러 나타날 시민의식
소비자는 단순히 기업이 던져 준 상품을 수동적으로 구매하지 않는다. 정보를 공유하고 기업의 태도를 나무라고 SNS를 통해 변화를 요구한다. 불매 운동뿐 아니라 구매 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기업으로서는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는 무슨 짓을 해서든 이윤만 남기면 된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Y세대는 현재의 중요한 소비, 사회, 문화 세력이다. 기성세대는 이들이 어떤 존재들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또한 중요하다. 왜냐하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미래를 개척해 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세대의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직적인 공간, 높은 직급만이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고 성과를 주도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요즈음 기업들은 수평적인 조직으로 바뀌려 노력하고 있다. 그것이 IT 미래에서 새로운 문제들을 풀어 나갈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은 사회적 가치까지도 고려하고 있다. 그동안 정치 세력이나 기득권에게만 있다고 여겼던 적폐가 기숙사 문제, 소방서 문제, 학교 문제, 종교와 같이 갈등하는 작은 사회 어디에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라이프 트렌드 2018』에는 이와 관련해 많은 내용이 있었다. 또한 IT와 접목된 시민 의식에 대한 여러 공감할만한 내용이 많았다. 한편으로는 저자의 주관적인 생각이 많고, 반짝 일어났던 유행을 트렌드라고 주장하는 부분들이 아쉬운 점이기는 했다. 그러나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행해왔던 2017년의 모든 것들이 어떤 소비문화의 확산과 정신을 품고 있는지 그 내면을 보고 싶다면 꼭 읽어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