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 FTA의 지구정치경제학
홍기빈 지음 / 녹색평론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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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마을에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있었다. 그 우물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대대로 내려오던 마을의 공공 식수원이자 주민들의 쉼터였다.
 그런데 몇해 전부터 마을에 극심한 가뭄이 들어 우물은 바닥이 드러나게 되었고, 마을은 큰 근심에 빠져있었다. 이 소식을 어떻게 알고 왔는지 먼 마을에 사는 유명한 세도가인 이씨 영감이 찾아와 현대식 공법을 소개하며 자기가 공사비를 일부 지원해주겠다며 마을 이장에게 접근해왔다. 이 공사는 가뭄에도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지만 새로 우물길을 뚫고 펌프까지 달아야하는 큰 공사였다. 이씨 영감의 달콤한 설득과 주민들 걱정에 이장은 공사를 하기로 결정한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공사는 끝냈지만 이 우물을 관리하는게 애초 이씨 영감 얘기보다 훨씬 까다로왔고 전기값과 관리비 등 유지비용도 만만치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갑부 이씨 영감에게 우물의 소유권을 팔아 대신 운영을 맡기게 되었다. 
 우물값을 받으며 장사를 시작한 이씨 영감은 몇 달이 지나자 갖가지 이유를 대며 우물 값을 올리기 시작했다. 얼마되지 않아 우물값은 주민 하루벌이 1/3 에 해당할 정도로 값이 뛰어버렸다. 물을 아껴쓰며 힘겹게 버티던 마을사람들은 또다시 가뭄이 들자 도저히 버티기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다행히 단비가 내렸고 마을사람들은 부랴부랴 지붕에 올라가 대야에 빗물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씨 영감이 이장을 찾아와 이 빗물이 모두 자기 우물에 포함된 자원이라며 빗물을 못 받게 협박을 해왔다. 이씨의 입심과 위세가 워낙 막강했던 터라 주민들은 순순히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가뭄은 끝났지만 극심한 물부족으로 인해 급기야 마을에 사망자가 나오게 되었고 분노를 참지못한 마을주민들이 낫과 곡괭이를 쥐고 폭동을 일으켰다.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사태 수습에 나선 마을 이장은 되는데로 우물 값을 마련해 이씨에게 쥐어주고 이씨 영감을 마을서 떠나보낸다.

 순순히 도망나온 이씨 영감은 준비된 각본처럼 다음 일을 진행하기 시작한다. 이씨 영감은 이런 일이 미리 터질줄 알고 우물을 사기 전에 계약을 맺어둔 '투자자 - 국가 직접소송제'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이씨는 우물의 소유권을 가진 '투자자'이고 마을은 '국가' 에 해당 됨)

 이 계약에 따르면 이씨는 그 우물의 소유권과 합께, 앞으로 우물을 통해 수십년 동안 벌어들일 수 있는 모든 수입에 대해서 소송을 걸 수 있었다. 다시 말해 투자자의 자산(소유물 + 잠재적 교환가치)을 마을이 공권력을 남용하여 부당하게 점유 또는 영업방해를 끼쳐 외부 투자자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이 소송은 그 해당 마을(국가)의 제도나 관습, 법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 미증유의 가공할 상商법을 근거로 제3의 전문 중재자를 포함한 3자 대면 형식의 밀실협상으로 이루어진다. 협상은 오직 투자자인 이씨가 입은 금전적 손해만을 따져 배상액을 정하게 된다.  반대로 이씨의 횡포로 인한 마을사람들의 유무형의 피해는 무시된다. 문제는 이 배상액 산정법에 따르면 그 금액이 천문학적 수치에 이른다는 것이다.

 

 위의 이야기는 실제로 미국 벡텔(Bechtel)社 와 볼리비아 간에 있었던 수자원 및 상하수도 시설운영권 분쟁(2000년 2월)을 축약한 것이다. (실제로 벡텔사는 볼리비아 주민들이 빗물을 못받도록 법으로 강제하였고 그 폭동과정에서 175명의 주민이 다치고 6명이 사망하였다.)

 이 '투자자 - 국가 직접소송제'의 위력은 국내법 및 국제법(공법 + 사법)까지 초월하는 막강한 구속력을 지닌채 오직 '외국 투자자'만을 위한 일방적인 보호법이라는데 있다. 문제는 이 소송사건 대부분이 선진국 투자자들에 의한 개발도상국의 일방적인 배상책임으로 끝난 판례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이 무지막지한 조항이 바로 한미 FTA 자유무역협정에 포함되어 있다. 세계 곳곳에서 체결한 각국 FTA협상 이후(2000년) 그 소송건수가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다음은 극비리에 밀실협상된 여러 소송사건들 중, 폭로된 몇가지 사례와 그 액수이다.

 

  2001년  라우더(방송업체) 對  체코  배상액    = 2억 7,000만 달러

  2004년  옥시덴탈(석유회사) 對  에콰도르    =  7,000만 달러

             CSOB(은행)  對  슬로바키아     =  2,4000만 달러

  2005년  CMS(은행)  對  아르헨티나     = 1억 3,340만 달러

             프랑스투자자 對  레바논     =  2억 6,660만 달러

              미국투자자  對  아르헨티나     = 1억 3,330만 달러

  2006년  유코스(석유회사) 對  러시아     = 330억 달러 !!!!!! 

 
 

 저 배상액 수치는 개발도상국들의 인구수와 국내총생산(GDP) 수준을 감안하면 실제로 그 부담수준은 선진국의 50배 정도라고 한다.(체코에게 2억7천만달러는 독일로 치면 110억 달러치 부담)  단 하나의 기업에 의해 한 나라가 거덜나고 국민 전체가 졸지에 국제채무자가 되버리는 실로 어처구니 없는 결과가 연출되는 것이다.

 문제는 투자자를 끌어온(or 투자자가 침투한) 약소국가의 정부 관료들이 나중에 소송 공격을 받을거란 걸 예측하면서도 투자자들의 영업이익을 방해(수용)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나면 이미 어떤 조처도 취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외국계 기업들은 이 FTA협정 하나만 믿고 합법적으로 온갖 약탈, 전횡을 일삼으며 그 나라의 공공성과 환경, 보건, 안전을 충분히(?) 훼손시키고 난 뒤, 마지막으로 거액의 배상금을 타먹고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다.

 

  FTA 협정에 포함된 이'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에는 투자대상국의 환경, 보건 등의 사안은 애초 제외 조항이기 때문에 투자기업을 상대로 법적 책임을 물거나 배상을 요구하는 어떤 제도적 구제책도 마련되어있지 않다. 게다가 투자유치만이 살길이라며 외국자본 성선설을 부르짖던 정부가 무턱대고 협정을 맺고서 한번 소송에 휘말리게 되면 그 초법권적 위력 앞에 협상주체로서 저자세를 취하게 되고 자국의 공공부문, 노동, 법, 정치, 경제체계 총체를 방어적으로 후퇴시키는 후유증까지 겪게 된다.

 

 저자 홍기빈씨는 책 말미에서 울분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한다. "도대체 일개 기업이 저 약소한 국가들에게 '해코지'를 당하면 얼마나 당했다고 가뜩이나 가난한 이들의 고혈까지 빨아먹는가."

 이런 파국적 국면에 맞서 그는 효과적인 인과응보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감소 협의를 위한 '토교의정서'협약(1997)을  전세계 온실가스의 36% 배출국인 미국이 자국의 산업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내팽게쳤으니깐, 미국과 FTA 나 양자간 투자협정을 맺은 모든 나라들이 똘똘 뭉쳐, 이상기온으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모든 농민, 상인, 시민들이 미국을 상대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준비하자는 것이다.

이 소송제의 유별난 특징 중에 하나가, 하나의 사안을 가지고 여러 투자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소송을 걸 수 가 있어서, 그중에 하나만 승소해도 배상금을 타먹을 수 있는 극악무도한(?) 제도이기에 때문에 우리들이 이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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