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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긴 만남 - 시인 마종기, 가수 루시드폴이 2년간 주고받은 교감의 기록
마종기.루시드폴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나는 미국에서 의사로 40년을 살았습니다. 의사 중에서도 제법 돈을 많이 버는 쪽의 전공이지요. 하지만 나는 매해 연봉의 50퍼센트 이상을 연방 세금, 주 세금, 시 세금과 사회보장 세금 등 여러 가지 세금으로 냈습니다. 그리고 연봉의 반도 안 되는 실제 수령액 중 20퍼센트 정도를 각종 단체에 기부했습니다. 물론 미국에서 산 처음 10년 정도까지는 잘 몰랐지요. 그러나 커다란 의사 그룹의 회장이 되고, 동료 미국인 의사들이 나보다 두드러지게 많은 액수를 기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은 창피해서, 체면을 지키려고 시작했고 나중에는 그것이 옳은 일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졸갱이 같은 의사 나부랭이들의 이런 행위는 이 동네에서 사는 의사뿐 아니라 전국의 의사들도 거의 다 할 것입니다. 그래서 부시 같은 바보가 이 나라를 8년 간이나 구덩이 속에 집어놓고 고생을 시켰지만, 이런 점 때문에 나는 미국에 아직 희망이 있다고 믿습니다. - <아주 사적인 긴 만남> 중 Letter 28 (마종기가 조윤석에게)에서.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나누려 하지 않는 자들은 정치든 경제든 교육이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역사의 죄악입니다. 세대가 지나 아이들이 죗값을 치를 것이고 우리나라에는 허약하고 온통 '경쟁'의 망령과 '힘'만을 쫓아가는, 문화는 실종된 나라가 되어갈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때 음악은, 시는, 과학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제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모자란 재주로 이런 사회에서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밖에 없지요. 12년간 공학자로 살아왔지만, 공학이니 과학이니 하는 것들은 사람들을 감동시키지도, 위로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남은 하나, 음악으로 돌아왔습니다. 유럽의 생활에서 비판적으로 그러나 깊게 깨달은 것은 '지금'의 중요성입니다. 왜, 영어로도 현재를 'present'라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주어진 선물. 이 순간순간의 기쁨, 행복, 즐거움을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놓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 앞만 보고 인내하고 달려가라는 프로그래밍만 되어 있지, 왜 지금은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 <아주 사적인 긴 만남> 중 Letter 48 (조윤석이 마종기에게)에서.

대중음악 웹진'가슴'을 운영하는 박준흠이 1999년에 낸 책 <이 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교보문고)는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사를 아티스트 중심으로 정리한 책인데, 박준흠은 자신이 선곡한 인디밴드의 노래를 담은 CD까지 부록으로 달았다. 그 CD에 그룹 '미선이'의 <치질>이라는 노래가 실려 있었다. 내가 그 노래를 듣고 깜짝 놀란 것은 모던한 사운드도 그랬지만, 언론에 대한 혐오를 '치질'이라는 소재로 은유적으로 노래한 이 젊은 친구의 기발한 착상 때문이었다. 한 남자가 회장실에 들어가 일을 보고, 휴지가 없어 안절부절하다가 결국 가지고 들어갔던 신문지를 쓰고 말았는데 그 뒤로 그만 치질에 걸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남자는 외친다, "휴지보다 못한 너희들 종이 사진 않겠어! 아무리 급해도 쓰지 않겠어!"라고. 그 신문지는 당연히 조중동 중 하나였겠지. 이렇게 대담한 유머로 보수언론을 향해 일격을 날린 이 젊은 친구가 '루시드 폴'로 이름을 바꾸고 계속 노래를 하고 있는 조윤석이다. 

매일 아침처럼 문 밖에 놓인 신문을 들고
무슨일이 있었나 살펴보려 변기에 앉았네
볼일이 끝날 무렵다 떨어진 휴지걸이 위로
황당하게 비친 내 모습 불쌍하게 웃네

한장 찢어진 곱게 구겨 부드럽게 만들고
찝찝하긴 하지만 그런대로 대충 처리를 했네
며칠이 지나고 조금 아프긴 했지만 설마라도
낸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휴지보다 못한 너희들 종이 사지 않겠어
아무리 급해도 닦지 않겠어 쓰지 않겠어

너희들의 거짓말 듣지 않겠어 믿지 않겠어
단돈 300원도 주지 않겠어 보지 않겠어


미선이 - <치질>

대학시절, 자주 다른 학과 수업에 기웃거렸는데 아마 국문과 수업을 가장 많이 들었을 것이다. 특히 詩 관련 수업은 거의 다 들었는데, 언젠가 국문과 시 수업 중 교수가 나누어 준 한국 현대시 자료집에서 슬픈 어조로 동생의 죽음을 노래하는 한 시인의 나직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 시는 죽음을 말한 그 어떤 시에서도 듣지 못한 소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바람 소리였다. 물론 다른 시에서도 바람 소리는 있었다. 고은의 <문의 마을에 가서>에서 불었던 바람이 망자가 이승을 떠나지 못한 채 붙들고 있는 미련의 바람이라면, 기형도의 <나리 나리 개나리>에서 누이를 떠나 보내는 바람은 유령 같은 바람이었다. 하지만, 이 시에서 동생을 떠나 보내는 바람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는 바람이 아니었다. 황동규의 시집 <미시령 큰 바람>처럼 아주 거대한 그리움의 바람이지만, 옷자락에 아주 작게 묻혀올 수밖에 없는 그런 바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머나먼 이국에서 변을 당한 동생에게 바친 <동생을 위한 조시>에서 우리를 눈물 섞인 미시령 큰 바람으로 이끈 시인, 이렇게 우리를 슬픔의 심연으로 끌고 간 시인이 바로 마종기다. 

8. 혹시 미시령에

동규형 시집 미시령인가 하는 것 좀 빌려줘,
너랑 마지막 나눈 말이 이 전화였구나.
나도 모르는 곳, 너와 내 말이 끝난 곳, 
강원도 어디 바람 많은 곳인 모양이던데.

요즈음 네 무덤가에서 슴슴한 바람을 만나면
내가 몇 번을 잊어버리고 빌려주지 못한 미시령,
혹시 그곳에 네가 혼자 찾아간 것은 아닐까.
내년쯤 일시 귀국을 하면 꼭 찾아가봐야지,
네가 혹시 그 바람 속에 섞여살고 있을는지,

너를 알아보지 못하고 바람만 만나게 되면
흔들리는 그거라도 옷자락에 묻혀와야지,
그 바람 털어낼 때마다 네 말이 들리겠지,
내 시를 그렇게 좋아해준, 너는 그러겠지,
형, 나도 잘 알아듣게, 쉽고 좋은 시 많이 써,
이제 너는 죽고 나는 네 죽음을 시쓰고 있구나.
세상 사는 일이 도무지 어처구니없구나.
시를 쓴다는 일이 이렇게도 하염없구나.

9. 조화

아직 비석도 세우지 못한 네 무덤
꽂아놓은 조화는 아름답구나.
큰비 온 다음날도, 불볕의 며칠도
조화는 쓰러지지 않고 웃고 있구나.
무심한 모습이 죽지 않아서 좋구나.
향기를 남기지 않아서 좋구나.
 
나는 이제 살아 있는 꽃을 보면
가슴 아파진다.
며칠이면 시들어 떨어질 꽃의 눈매
그 눈매 깨끗하고 싱싱할수록
가슴 아파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아프다.


-마종기, <동생을 위한 조시> 중에서

이 둘이 만났다. <아주 사적인 긴 만남>(2009, 웅진지식하우스)은 이 둘이 대서양을 건너 주고받은 편지의 기록이다. 미국에서 40년을 산 의사이자 시인, 스위스 로잔의 공학자이자 가수인 이 둘의 기록에는 예술가로서의 음악, 예술, 문학, 여행이라는 공통의 담화가 주를 이루지만, 외국에서 떠도는 디아스포라로서 타자의 시선으로 한국 사회를 비판하기도 한다. 서울과 미국의 오하이오, 스위스 로잔을 넘나드는 이들의 만남은 그런 의미에서 '안'과 '밖'의 만남이자, 동 시대를 살아가는 '나'와 '타자'의 만남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책을, 아니 이 만남을 '올해의 책' 목록에 넣어 둘 준비를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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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하루
다이라 아즈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지금까지 마신 물 중에서 가장 맛있었던 물이 뭔지 아니?"
"지금 살고 있는 숲의 물?"
루이는 맞혔을 거라 생각했지만 무로타는 고개를 저었다.
"학교 수돗물. 여름에 체육시간이나 클럽 활동 끝나고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마시던 물.
"아, 정말."
땀으로 젖은 운동모자를 벗어던지고 좔좔 흐르는 물 밑에 얼굴을 옆으로 비틀어넣을 때 감은 눈 위로 쏟아지던 하얀 빛. 차례를 기다리지 못하고 온몸으로 밀고 들어오는 친구의 몸에서 피어오르던 운동장의 흙냄새. 그런 것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루이는 소리내어 웃었다. 무로타도 웃었지만 이내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렇게 물이 맛있다고 느낄 일은 이제 없을 거야. 후지산 복류수니 빙하의 빙하수니, 효능을 써놓은 설명서를 읽고 맛있다고 느끼는 건 머리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지, 몸이 느끼는 반응은 아냐. 학교 수돗물은 녹이나 석회 맛이 났었잖아. 그래도 맛있었어." 

 -다이라 아스코 《멋진 하루》 중 <맛있는 물이 숨겨진 곳> 중에서

 
   


누구에게나 살아오면서 가장 평온했던 한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세상의 시름으로부터 벗어나 혼자 훌쩍 떠난 여행에서 만난 풍경이라든지, 남자친구의 무릎을 베고 잠깐 들었던 호숫가 벤치에서의 달콤한 낮잠이라든가, 산사에서 만난 저녁의 고즈넉한 풍경 소리를 듣는 순간 같은 거 말이다. 하다못해 기억이 날진 모르겠지만, 엄마 뱃속에서 보낸 열 달이 가장 평온했던 시절이라고 떼를 써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그런 순간은 남자라면 누구나 별로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을 만한 군대에서 있었다. 다시 가라고 하면 절대 안 갈 거고, 누군가에게 이유도 없이 얻어터지고 일반적인 상식으로 전혀 설명되지 않는 군대라는 조직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하지만, 나는 내가 군 생활을 했던 영천의 따듯한 햇살만큼은 잊을 수 없다. 경북 영천은 대한민국에서 여름에 기온이 가장 높이 올라가 곳이기도 하고, 햇살이 너무 좋아 이곳에서 나는 사과는 명물이다. 가을에 나는 영천 포도 또한 그렇고.

탄약고에서 경계 근무를 서는 가을날이면 어김없이 향긋한 포도향이 담을 타고 잘익은 추억처럼 넘어왔다. 나는 그 포도 내음을 좋아했다. 일요일 오후 막사 옥상에서 햇살을 받으며 일광욕을 즐기던 시간은 내 인생에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유일한 순간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라 유난히 겨울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는데, 우리는 그 바람을 '영천 똥바람'이라고 불렀다. 내무반 창문 너머로는 멀리 보현산 정상에 있는 천문대가 보였다. 처음에는 거기 서 있는 게 뭔지 잘 몰랐는데, 영천 출신인 고참이 보현산 천문대는 영천의 자랑거리라고 알려 줬다. 겨울 새벽, 불침번을 설 때면 창가에 서서 그 천문대를 바라보곤 했다. 유난히 밝은 밤하늘을 보면, 이상하게도 세상의 모든 별들이 모두 그 천문대로 향해 가는 것 같았다. 제대하면 언젠가 그 별들을 보러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아직 못 갔다.

다이라 아스코의 소설집 《멋진 하루》에 실린 단편 <맛있는 물이 숨겨진 곳>에서 읽은 저 문장에서 나는 내 젊은 시절, 영천의 햇살을 떠올렸다. 졸병 시절에는 일요일 오전에 일광 소독을 하러 옥상에 올린 모포며 매트리스며 베개 따위를 지키는 초병(물품이 부족했던 부대 사정으로 다른 내부반의 비품을 훔치는 일은 다반사였다)으로 그 햇살을 받았고, 고참이 되어서는 그 졸병을 옆에 세워 놓고 웃통을 벗어 재끼고 책을 읽거나 기타를 튕기거나 오수를 즐기며 놀았다. 일요일 아침 모두들 교회니, 성당이니, 법당이니 종교 활동을 하러 떠나고 나같이 할 일이 별로 없는 사람들에게 햇살이 내리 쬐는 텅 빈 막사의 옥상은 그야말로 천국이었고 그 순간 나의 神은 햇살이었다.

<맛있는 물이 숨겨진 곳>에서 우연히 만난 루이의 고등학교 시절의 첫사랑 무로타는 뜬금없게도 루이에게 학교에서 마셨던 수돗물을 이야기한다. 분명 녹이나 석회, 소독약이 잔뜩 섞여 맛이 없는 물이였을 텐데도, 무로타에게는 그 물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물이다. 사람의 기억은 불완전한 것이어서, 상황을 기억하는 순간의 다른 요소들이 그 기억을 지배하기도 한다. 무로타는 그 물을 마시는 순간의 공기, 루이가 기억하는 수도꼭지 아래로 반사되어 빛나는 하얀 빛, 옆에서 물을 같이 마시는 친구의 몸에서 나는 땀 냄새, 그리고 뿌옇게 피어오르는 운동장의 흙먼지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래서 영천의 포도향, 햇살, 똥바람, 천문대로 쏟아지던 별은 무로타가 마신 물처럼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마신 물과 같은 것들이다. 나는 오늘 문득 그 물이 숨겨진 곳을 더 찾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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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행복하게 - 자연과 공동체 삶을 실천한 윤구병의 소박하지만 빛나는 지혜
윤구병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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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런 생각해본 적이 있나. 왜 컴퓨터는 석 달, 여섯 달 주기로 업그레이드되는데 바늘은 수천 년이 지나도 그 모습 그대로일까? 답은 하나다. 컴퓨터는 불완전한 기술의 산물이고, 바늘은 완전한 기술의 산물이다. 바늘이 컴퓨터보다 완성도가 높다. 쓸모는? 바늘이 앞선다. 물질에너지가 기능을 뒷받침하지 않으면 컴퓨터는 제아무리 기능이 뛰어난 울트라 슈퍼컴퓨터라도 쓸모가 없다. 그냥 그 자리에서 먹통이 된다. 그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물질에너지 자체가 안정된 에너지가 아니다. 

(중략)

컴퓨터가 그 기능을 가장 잘 발휘하고 있는 곳이 어디인가. 펜타곤이고 월가다. 바늘이 사람과자연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의 산물이라면 컴퓨터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를 완화된 전쟁, 숨을 살육의 형태로 해결하는 기술의 산물이다. 총과 칼 같은 무기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려는 기술의 산물이라면, 낫과 호미 같은 농기구가 사람과 자연 사이의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려는 기술의 산물이라는 것과 같은 원리에서 그렇다. 이제 내가 바늘철학자라면 당신들은 컴퓨터철학자라는 말이 이해가 되는가. 내가 당신들에게 아직도 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는가. 

 -윤구병,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바늘이 컴퓨터보다 위대하다' 중에서 

 
   

오래 전에 어느 산문집에서 읽은 한 문학평론가의 푸념이 생각난다. 자신은 도스용 아래아한글1.5 프로그램으로도 문서를 작성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데, 자꾸 주위에서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하라고 난리를 친다는 것이었다. 글을 기고하는 문학 잡지사에서도 왜 아직도 그런 구식 워드프로세서를 쓰느냐며, 이참에 컴퓨터를 하나 제공해 줄테니 아예 구식 컴퓨터까지 같이 폐기하라고 한단다. 자기는 지금 쓰는 컴퓨터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데, 세상은 너무나도 빨리 그것을 바꿔버리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몇 해 전에 읽은 글이었으니, 지금쯤 그 평론가는 아마도 세상에 굴복하고 한글 2002정도는 쓰고 있지는 않을까.

내가 일하는 회사는 종종 인터넷 회선이 말썽을 일으키곤 한다. 대부분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면 그러하듯 나도 아침에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고 제일 먼저 인터넷 익스플로러 창을 연다. 그런데 인터넷에 접속이 안 되고 '무엇 무엇을 찾을 수 없습니다' 어쩌구 하는 메시지가 뜨면 순간 나는 정지한다. 도무지 그 다음에 무슨 일을 해야할 지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그냥 멍하니 앉아 있거나, 익스플로러 아이콘을 연속해서 클릭하고 있거나, 아니면 조금 진정된 표정으로 애써 서류를 뒤적이고 있을 뿐이다. 마치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처럼 눈먼 사람들로 인해 도시는 마비되고 사람들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듯, 회사의 업무도 순간 마비되는 것이다.

"바늘이 컴퓨터보다 위대하다"는 한 노인네의 외침이 세상에 얼마나 파장을 줄 수 있을까. 철학교수 자리를 내던지고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사는 윤구병이 한 얘기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조금 관심을 가져줄까. 언젠가 변산에 계신 윤구병 선생님을 찾아뵈었을 때,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다.

"윤 선생님, 안정된 철학교수 자리를 버리고 이런 시골로 내려 오셨을 때는 무슨 중대한 계기 같은 것이 있었을 텐데요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윤구병 선생님이 버럭 되물으셨다.

"뭐가 '안정적'이라는 건가? 플러그 하나 뽑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물질에너지에 기댄 도시의 삶이 안정적이라는 건가?" 

그리고 위에 인용한 문장과 같은  말씀을 쫙 들려주셨다.

세상이 강요하는 대로 주기적으로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고, 아침에 출근해서 인터넷에 접속이 안 되면 불안증후군에 빠지는 나는 정말로 윤구병 선생님의 말처럼 옷이나 양말 따위를 꿰매는 바늘이 첨단 기술의 결정체인 컴퓨터보다 더 위대한지는 잘 모르겠다. 위에 든 근거처럼 물질에너지가 과학적으로 정말 불완전한 것인지도 잘 모른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컴퓨터는 말 그대로 '플러그' 하나 뽑아버리는 간단한 행위로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고, 바늘은 그 플러그 자체가 없기 때문에 완전하다는 사실이다. 컴퓨터는 '더 좋고 더 빠른'게 있어서 계속 그걸 갖기 위해 자본주의의 노예가 돼야 하지만, 바늘은 그런 게 없어서 마음이 편하다는 점이다. 나는 이런 단순한 진리로 글을 쓰고 자신의 삶에 관한 생각을 행동과 일치시키는 이 노인네에게 믿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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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처 2009-01-10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윤구병 선생님이 책을 내셨나봐요.
강연회를 통해 잠시 뵈었지만, 멋진 분 이더라고요.
선생이 몸담고 있다는 그 공동체에는 일손이 필요하다던데, 막상 가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고요. ㅡ.ㅡ;

바늘과 컴퓨터 비유가 생각이 나서 예전 강연기록이지만 먼댓글로 엮었습니다.
많이 추운데 감기 조심하세요

걸어가자 2009-01-12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료 잘 보았습니다. 정말 좋은 강의록이네요, 저는 평소에 강의를 들어도 그렇게 정리를 잘 못하는데 요약된 강의록을 보니 윤구병 선생님께서 어떤 말씀을 들려주셨는지 짐작이 갑니다^^ 감사합니다!
 
하늘에서 본 한국
얀 아르튀스-베르트랑 사진, 이어령.존 프랭클 에세이, 김외곤.조형준 사진 에세이 / 새물결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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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보았던 모든 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가 다른 나라들보다 특별한 가치를 지니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저는 조금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 있죠. 한국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제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많은 작업을 했고 한국의 자연과 사람들을 알게 된 지금 나는 한국을 프랑스만큼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비행을 하는 동안 한국인이 어떻게 사는지 잘 이해했습니다. 만일 제가 백년 후에도 살아있다면 오늘 내가 남긴 사진과 백년 후 한국의 모습을 비교해보고 싶습니다.

-얀 베르트랑, KBS 다큐멘터리 <하늘에서 본 대한민국> (2008년 2월 10일 방송) 중에서

지구는 저의 조국입니다. 저는 우리 시대의 증인으로서 지구의 여러 가지 사연을 들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 사진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작 아름다운 것은 지구입니다. 저는 다만 그것을 기록할 뿐입니다.

-얀 베르트랑, <하늘에서 본 한국> 서문 중에서 

 
   

어느 풍경 사진의 대가가 자신의 사진이 너무 위대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위대한 것은 사진이 아니라 그 사진 속의 풍경이 위대한 것이라고. 자신은 단지 그것을 찍었을 뿐이라고. 베르트랑 역시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만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항공사진을 찍어온 베르트랑이 우리들에게 한국은 특별한 아름다움을 가진 나라라거나, 다른 나라들보다 더 인상적이었다고 입에 발린 말을 했다면 나는 그를 믿지 않았을 것이다. 베르트랑은 "한국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했다. 더 나아가 베르트랑은 '지구가 나의 조국'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지구가 조국인 사람이 '어디 어디가 더 아름답다'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가. 한 마리 새가 되어 온 지구를 돌아다닌 그가 내린 결론인 것 같아 사뭇 감동적이다.

언젠가 <마이크로 코스모스>라는 영화를 봤을 때의 그 시각적 충격을 기억한다. 그 '마이크로'한 세계를 보여준 영화는 우리에게 달린 두 눈이 얼마나 불완전 한 것인가를 알게 해 주었다. 인간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 그 세계는 바로 우리 곁에서 숨 쉬고 있었던 것이다. 베르트랑이 5년간 우리나라의 하늘을 날아다니며 찍은 사진을 묶은 <하늘에서 본 한국> 역시 다시 한번 그 시각적 충격을 선사했다. 이번에는 '마이크로'한 세계가 아닌 한 마리 새, 아니 신(神)의 시선으로 본 한국이라 불러도 좋으리라. 그 시선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해준, 프랑스인이 아닌 지구인 베르트랑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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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의 옹호
이왕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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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다녀온 많은 공간들을 사진으로 담아내기 못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사진은 나의 유혹자가 아니다. 나 자신이 사진으로 이 세상에 오래 남고 싶은 생각이 없고, 내가 스쳤던 공간을 사진으로 붙잡아두고 싶은 욕심도 없다. 나는 사진에 찍히는 대신 내가 몸담았던 그 공간을 내 기억 속에서 더 긴밀하게 느끼고 싶고, 정리하거나 증명할 자료를 챙기는 대신 내가 체험했던 그 시간들을 추억 속에서 더 은밀하게 맛보고 싶다.

내가 여행하는 목적은 생생한 실물들을 나의 살과 뼈로 만나는 것이지 사진으로 찍어서 추억으로 남는 것이 아니다. 물론 내 눈은 온전치 않고 내 기억은 더 불완전하다. 하지만 이것들이 저 현란한 컬러로 찍혀 은박 사진첩에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저 사진들보다 훨씬 더 많은 진실들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 이왕주 산문집 <쾌락의 옹호>, '유혹자' 중에서

 
   


DSLR이 보급되면서 부쩍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늘었다. 앙증맞은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서 하늘을 향해 점프를 하는 순간을 찍거나,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카메라 플래시를 연신 터트리는 풍경은 쉽게 볼 수 있고, 멋진 풍경을 담아오겠다는 굳은 일념으로 프로급 카메라를 목에 걸고 여기저기 쏘다니는 사람들로 '좀 좋다' 하는 유명 출사지들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텔레비전 광고 속에서는 유명 가수가 '결정적 순간'을 잡기 위해 며칠 동안 아프리카 정글에서 밤을 새우기도 하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는 사진작가, 연예인, 블로거들 너나 할 것 없이 자신만의 예술을 뽐내려 올려놓은 사진들로 넘쳐난다. 한 영화배우는 해외로 나가 이국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어디어디 '놀이'라 칭하며 책을 내기도 한다. 한 카메라 회사는 카메라 스트랩을 사람의 손목에 마치 수갑처럼 채워 놓은 뒤 "나는 이 카메라에 포로가 되었다"라는 식의 광고카피를 넣었고, 서점에 가면 '사진가의 여행법', '잘 찍은 사진 한 장', '나는 사진이다', '좋은 사진을 만드는 노출' 등 자극적인 제목을 단 책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가히 사진의 시대, 이미지의 천국이라 할만하다.

일전에 한 친구에게 수원 화성으로 놀러나 가자고 했더니, 카메라가 고장이 나서 수리를 맡겼다며 다음에 가자고 했다. 카메라가 고장 난 것과 우리가 놀러가는 일이 무슨 연관이 있냐고 물었더니, 어디를 갈 때 카메라가 없으면 '그곳'에 가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해서 섬뜩함을 느꼈던 적이 있다. 그 친구에게 여행은 세상을 보고 느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기 위한 일종의 수단에 불과한 것 같았다. 나도 한때는 사진에 미쳐 여행을 갈 때마다 카메라를 챙겨갔다. 여행과 사진은 정말이지 바늘과 실처럼 찰떡궁합 그 자체다. 그 시절 나에게도 카메라 없는 여행은 정말이지 '무의미'한 일이었다. 멋진 풍경을 보면 '나도 안셀아담스처럼 멋지게 찍을수 있다구!' 하며 한 장소에서 셔터를 백 번쯤 눌렀고, 멀리 걸인이 쪼그려 앉아 구걸하고 있으면 몰래 숨어서 망원렌즈로 그 풍경을 마구 땡겨 찍어댔다. 속으로 '나도 유진 스미스 같은 다큐멘터리 작가 못지않지?'라는 망상에 빠진 채. 라이카 M3를 갖게 되면 브레송과 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 착각 하기도 했고, 저 멀리 동구 유럽으로 누가 날 데리고 가만 준다면 요제프 쿠델카처럼 슬픈 집시들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참 공허했다. 좋은 곳, 멋진 곳에 가면 그 풍경 속의 나를 느껴 보려하기는커녕 '저 풍경을 빨리 찍어야 해! 카메라‥‥‥ 카메라 어딨지?" 하며 셔터를 눌러대기에 바빴고, 정작 여행을 다녀 온 후 나에게 남는 것은 컴퓨터 모니터에 갇힌 그 '멋진' 풍경에 관한 단편적인 이미지들뿐이었다. 사진을 올려놓은 인터넷 카페에서 내 사진을 칭찬하는 댓글을 보면서 '나도 이제 예술가라구!' 하는 쾌감을 얻으면 얻게되면 될수록 다음에는 더 '쨍'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커져갔고, 하드디스크에 사진 파일이 늘면 늘수록 그만큼 여행지의 바람, 햇빛, 꽃향기는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더 좋은 카메라를 찾아 남대문 카메라숍을 헤매고, 진심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표면적인 기호에 사로잡혀 찍은 사진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알았을 때, 나는 내 마음 속에 남은 예술을 향한 열정으로 위장된 추악한 욕망의 찌꺼기들을 목도해야만 했다.

이왕주의 신문 칼럼을 모아 놓은 산문집 <쾌락의 옹호>에서 만난 저 문장은 이렇게 사진 강박증에 빠져 있는 우리들에게 음미해 볼만한 작은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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