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지만 행복하게 - 자연과 공동체 삶을 실천한 윤구병의 소박하지만 빛나는 지혜
윤구병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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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해본 적이 있나. 왜 컴퓨터는 석 달, 여섯 달 주기로 업그레이드되는데 바늘은 수천 년이 지나도 그 모습 그대로일까? 답은 하나다. 컴퓨터는 불완전한 기술의 산물이고, 바늘은 완전한 기술의 산물이다. 바늘이 컴퓨터보다 완성도가 높다. 쓸모는? 바늘이 앞선다. 물질에너지가 기능을 뒷받침하지 않으면 컴퓨터는 제아무리 기능이 뛰어난 울트라 슈퍼컴퓨터라도 쓸모가 없다. 그냥 그 자리에서 먹통이 된다. 그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물질에너지 자체가 안정된 에너지가 아니다. 

(중략)

컴퓨터가 그 기능을 가장 잘 발휘하고 있는 곳이 어디인가. 펜타곤이고 월가다. 바늘이 사람과자연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의 산물이라면 컴퓨터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를 완화된 전쟁, 숨을 살육의 형태로 해결하는 기술의 산물이다. 총과 칼 같은 무기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려는 기술의 산물이라면, 낫과 호미 같은 농기구가 사람과 자연 사이의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려는 기술의 산물이라는 것과 같은 원리에서 그렇다. 이제 내가 바늘철학자라면 당신들은 컴퓨터철학자라는 말이 이해가 되는가. 내가 당신들에게 아직도 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는가. 

 -윤구병,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바늘이 컴퓨터보다 위대하다' 중에서 

 
   

오래 전에 어느 산문집에서 읽은 한 문학평론가의 푸념이 생각난다. 자신은 도스용 아래아한글1.5 프로그램으로도 문서를 작성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데, 자꾸 주위에서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하라고 난리를 친다는 것이었다. 글을 기고하는 문학 잡지사에서도 왜 아직도 그런 구식 워드프로세서를 쓰느냐며, 이참에 컴퓨터를 하나 제공해 줄테니 아예 구식 컴퓨터까지 같이 폐기하라고 한단다. 자기는 지금 쓰는 컴퓨터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데, 세상은 너무나도 빨리 그것을 바꿔버리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몇 해 전에 읽은 글이었으니, 지금쯤 그 평론가는 아마도 세상에 굴복하고 한글 2002정도는 쓰고 있지는 않을까.

내가 일하는 회사는 종종 인터넷 회선이 말썽을 일으키곤 한다. 대부분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면 그러하듯 나도 아침에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고 제일 먼저 인터넷 익스플로러 창을 연다. 그런데 인터넷에 접속이 안 되고 '무엇 무엇을 찾을 수 없습니다' 어쩌구 하는 메시지가 뜨면 순간 나는 정지한다. 도무지 그 다음에 무슨 일을 해야할 지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그냥 멍하니 앉아 있거나, 익스플로러 아이콘을 연속해서 클릭하고 있거나, 아니면 조금 진정된 표정으로 애써 서류를 뒤적이고 있을 뿐이다. 마치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처럼 눈먼 사람들로 인해 도시는 마비되고 사람들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듯, 회사의 업무도 순간 마비되는 것이다.

"바늘이 컴퓨터보다 위대하다"는 한 노인네의 외침이 세상에 얼마나 파장을 줄 수 있을까. 철학교수 자리를 내던지고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사는 윤구병이 한 얘기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조금 관심을 가져줄까. 언젠가 변산에 계신 윤구병 선생님을 찾아뵈었을 때,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다.

"윤 선생님, 안정된 철학교수 자리를 버리고 이런 시골로 내려 오셨을 때는 무슨 중대한 계기 같은 것이 있었을 텐데요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윤구병 선생님이 버럭 되물으셨다.

"뭐가 '안정적'이라는 건가? 플러그 하나 뽑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물질에너지에 기댄 도시의 삶이 안정적이라는 건가?" 

그리고 위에 인용한 문장과 같은  말씀을 쫙 들려주셨다.

세상이 강요하는 대로 주기적으로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고, 아침에 출근해서 인터넷에 접속이 안 되면 불안증후군에 빠지는 나는 정말로 윤구병 선생님의 말처럼 옷이나 양말 따위를 꿰매는 바늘이 첨단 기술의 결정체인 컴퓨터보다 더 위대한지는 잘 모르겠다. 위에 든 근거처럼 물질에너지가 과학적으로 정말 불완전한 것인지도 잘 모른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컴퓨터는 말 그대로 '플러그' 하나 뽑아버리는 간단한 행위로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고, 바늘은 그 플러그 자체가 없기 때문에 완전하다는 사실이다. 컴퓨터는 '더 좋고 더 빠른'게 있어서 계속 그걸 갖기 위해 자본주의의 노예가 돼야 하지만, 바늘은 그런 게 없어서 마음이 편하다는 점이다. 나는 이런 단순한 진리로 글을 쓰고 자신의 삶에 관한 생각을 행동과 일치시키는 이 노인네에게 믿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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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처 2009-01-10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윤구병 선생님이 책을 내셨나봐요.
강연회를 통해 잠시 뵈었지만, 멋진 분 이더라고요.
선생이 몸담고 있다는 그 공동체에는 일손이 필요하다던데, 막상 가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고요. ㅡ.ㅡ;

바늘과 컴퓨터 비유가 생각이 나서 예전 강연기록이지만 먼댓글로 엮었습니다.
많이 추운데 감기 조심하세요

걸어가자 2009-01-12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료 잘 보았습니다. 정말 좋은 강의록이네요, 저는 평소에 강의를 들어도 그렇게 정리를 잘 못하는데 요약된 강의록을 보니 윤구병 선생님께서 어떤 말씀을 들려주셨는지 짐작이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