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느낌이 없었다.그런데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부엌 식탁에 앉아 있는 지금 난데없는 마음의 통증이 온몸을 휘감듯이 훑기 시작한 것이었다. 몸이 악기가 되어 섬세한 음조의 현악곡으로 탈바꿈한 감정을 연주하기 시작한 듯 말이다. 몸의 온갖 부위를 저리도 많이 잃었는데, 자기를 구성하던 부분을 저렇게나 많이 잃은 이상 고통을 안 느끼는 게 더 이상하지. 내가 뭘 해 줄 수 있을까? 줄 수 있는 게 있을까? 가진 것 하나 없는 나라도? - P52
아마도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나 스스로 그런 말을 ‘믿고‘ 나이를 먹는 내 나름의 방식을 갑자기 의심스럽게 여길 수 있다는 점이다. - P-1
어쩌면 우리는 거의 강박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억누르고 싶은 것은 아닐까? - P50
위험한 상황에 대처하는 데 필요할지도 모르는 공격성이 다른 사람, 다른 대상, 보이지 않는 어떤 것에 투사되는 경우가 꽤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 모든 것이 두려움과 마비의 베일에 가려지고, 두려움을 감수하는 용기가 갈수록 사라지며, 맞서 싸우려는 의지가 약해지면서 사람들은 체념하게 된다. - P61
이시봉과 나는 거의 매일 새벽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아파트 단지 뒤쪽에 있는 야산으로 산책을 나갔다. 목줄 없이 산책을 나가려면 꼭 그 시간이어야만 했다. 이시봉은 목줄 하는 것을 싫어했고, 나 역시 목줄 잡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 P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