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불안이 아니라 권좌를 찬탈한 종의 존재적 불안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고래로 그래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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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놀라운 장면이었다. 
그리고 웃고 싶었다. 
고함 소리도 없고, 욕도 없고, 
테이블에서 뛰쳐나가는 사람도 없고, 
긴장감만 맴도는 침묵도 없고, 
정당한 자기 몫의 감자를 차지하기 위해 
달려드는 사람도 없었다. 
숟가락이 던져지지도 않았고, 
미트나이프를 집어 드는 사람도 없었고, 
자기 목에 칼을 겨누며 
내가 지금 여기서 죽어버릴까? 
소리치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가족 중 누구도 
박사 학위의 모호한 영역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달력에 그의 시험 날짜와 
세부 내용을 적지도, 
그에게 유용할지도 모르는 도서 목록을 
술술 풀어내지도 않았고, 그런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해줄 사람도 없었다. - P39

수의사가 말했다. "이제 끝이에요."
그 속도가 너무 끔찍했다. 
삶에서 미끄러지기가 참 쉽구나.
한순간에는 있고 
그다음 순간에는 없구나. 
모니카는 주변을 뒤져보고 싶은 충동과 
싸워야 했다. 
어디지, 고양이가 어디로 간거지? 
분명 여기 어딘가 있을 텐데. 
그냥 이렇게 사라져버릴 수는 없는 거다.
이상하게도 에이바가 마음에 다시 떠올랐다. - P68

주로, 에이바는 그냥 살았다. 
작은 일상의 행동을 이어갔다.
머릿속으로 항상 
‘거기서 도망쳐 왔다‘라고 되뇌면서 
그 사실을 줄곧 확인할 뿐이었다. 
아무도 그녀를 찾지 않았다.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아무도 귀찮게 하지 않는 하루가 
또 지나갔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눈을 감았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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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버리, 런던

불볕더위, 불볕더위다. 
폭염은 새벽 동이 트자마자 
그레타의 잠을 깨운다. 
그녀를 침실에서 아래층으로 내몬 
더위는 눌러앉은 손님처럼 집 안에 산다.
복도를 따라 누워 있고, 
커튼 주변을 에워싸고, 
소파와 의자에도 
무겁게 축 늘어져 기대고 있다.
어떤 유형의 실체처럼 
부엌을 가득 메운 공기 때문에 
그레타는 테이블 옆면에 기대어 
슬그머니 주저앉는다.

이런 날씨에는 그저 빵을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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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땅, 완벽 혹은 후회의 다른 이름

새벽 1시 반, 
갑자기 삶을 정성스럽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야심한 시각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생전 처음 있는 일이라 
이상한 기분이었다 - P104

딸과 달리 말수가 적고 
생색을 내지 않는 엄마는 
계속 호떡을 굽다가 
어느 날부터 굽지 않았고, 
다시는 굽지 않는 것으로 
그 고단함을 조용히 마무리했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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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희는 이십년 가까이 
신경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약을 먹지 않으면 
견디기가 무척 힘들었는데,
정확히 무엇을 견디기 힘든 것인지는 
아직까지 밝혀내지 못했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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