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이미 도래한 시대를 그렇지 않다고 밀어붙이니 숨이 막히는 것이었나 보다. 역시 물 흐르듯, 구름 가는대로 흘러가는 게 맞는 듯 하지만 이제 내 마음이 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어 나와 남을 끊임없이 옥죄고 있는 듯...
개인의 세계는 시대의 산물로써 형성되는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생각되는데, 폭력으로 붕괴된 세계의 삶들을 에메렌츠 개인의 인생을 통해 새삼스럽게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내가 일생동안 두 팔 벌려 모든 고통을 그러안을 수 있다 해도 그 자리에 서 있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세계를 조금은 더 이해할 수도 있으리라는 감각...
그림 속 인물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내가 차라리 잊고자 하는 것이며, 이미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다. 머리 위에서 지붕이 쩍쩍 소리를 내며 불타더라도 외로움과 어찌할수 없는 피폐함을 속으로 간직하고 있던 그녀가 열지 않았을 그 문.내 삶에서 오직 한 번, 잠의 신경쇠약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내 앞에서 그 문이 열린 적이 있었다. 오직 나에게만 주어진 권한으로 그문은 열릴 수 있었다. 열쇠를 돌린 그녀는 신보다 나를 더 믿었고,나 또한 그 운명적인 순간에 스스로를 신이자 현자, 사려 깊고 훌륭하며 이성적인 사람으로 믿었다. 나를 믿은 그녀와 나 자신을 믿은나, 우리 둘 모두는 잘못을 범한 것이다. - P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