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스페셜 에디션 (작별하지 않는다 + 흰 + 검은 사슴 + 필사 노트)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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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전작 소장 중이라 고민하다 결국 물욕이 이겼는데 받아보니 실물이 더 좋고, 판형도 좋아서 들고 읽기 좋네요. 결국 잘 산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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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머니에 관한 글을 계속 써나가겠다. 어머니는 내게 진정 중요했던 유일한 여자이고, 2년 전부터는 치매 환자였다. 기억의 분석을 보다 쉽게해줄 시간적 거리를 확보하자면, 아버지의 죽음과 남편과의 헤어짐이 그랬듯 어머니의 병과 죽음이 내 삶의 지나간 흐름 속으로 녹아들 때를 기다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순간 다른 것은 할 수가 없다.

언젠가, 내가 이곳이든 혹은 다른 곳에서든 냅킨을 폈다 접었다 하면서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 그 여자들 가운데 한 명이 되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머니의 열망대로 내가 자리를 옮겨온 이곳, 말과 관념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스스로의 외로움과 부자연스러움을 덜 느끼자면,
지배당하는 계층에서 태어났고 그 계층에서 탈출하기를 원했던 나의 어머니가 역사가 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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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과 모든 사람에 맞서 스스로 자유를 지킨 사람
괴테가 ‘치타델레‘Zitadelle라고 불렀던 내적인 자아, 아무도 그 안으로들어올 수 없는 자아





가장 내밀한 자아에 충실하기 위해선 
얼마만 한 용기와 
정직성과 단호함이 필요한지를, 
그리고 이 거대한 파멸의 한가운데서 
정신적·도덕적 독립을 흠 없이 지키는 일보다 
세상에 더 어렵고도 심각한 일이 없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는 직업적인 세계개혁가, 신학자, 
신념 소비자를 영혼의 가장 깊은 
밑바닥에서부터 싫어했다.

온갖 신학 논문과 철학적 탐색들이 
우리에게 낡고도 낯설게 보이는 데 반해, 
그는 우리와 
같은 시대에 속하는 사람으로 남았다.

진짜 생산물은 삶이고, 
이런 메모들은 삶에서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며 쓰레기일 뿐이다. 
"나의 소명과 나의 예술은 삶을 사는 것이다." 

허영심과 자부심에서 벗어나기.
두려움과 희망에서 벗어나기.
확신과 당파에서 벗어나기.
야망과 온갖 형태의 욕심에서 벗어나기,
자신의 거울상과 똑같이 자유롭게 살기.
돈과 온갖 형태의 욕심과 욕망에서 벗어나기.
가족과 주변에서 벗어나기.
광신주의와 온갖 종류의 경직된 의견에서, 
절대적 가치에 대한 믿음에서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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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일기를 읽으면서 그 삶을 배워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처음에 그는, 
그저 이니셜 L에 지나지 않았다.
종종 무국적자 혹은 
난민으로 명명되었으며, 
신분증 하나 없는 미등록자나 
합법적인 절차 없이 유입된 
불법체류자로 표현될 때도 있었다. 
그는 또한 그 누구와도 
현실적인 교신을 할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이기도 했고, 
인생과 세계 앞에서 
무엇 하나 보장되는 것이 없는 
다른 땅에서 온 다른 부류의 사람, 
곧 이방인이기도 했다.

마지막 희망, 마지막 꿈, 마지막 여행지. 
로는 직원으로부터 살짝돌아선 채 
안주머니에서 방수포를 꺼내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40유로를 셌다. 
방수포에 싸인 650유로.

나는 로기완이라 불리며
1987년 5월 1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온성군 세선리 
제7작업반에서 태어났습니다.

연민이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어떻게 만들어져서 어떻게 진보하다가 
어떤 방식으로 소멸되는 것인가. 
태생적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성되는 
그 감정이 거짓 없는 진심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포기되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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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말 그대로 정말 살고 싶었다. 
살기 위한 방편으로 낯선 곳으로 떠났다. 
어린아이처럼 철자를 익히고 말을 배웠다. 
그렇게 무언가를 처음부터 다시
배울 수 있기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랐다. 
스스로를 속인다거나
잃어간다는 감각으로부터, 
그 익숙하고도 거추장스러운 
나의 일부로부터 멀어지기를 소망했다. - P10

내가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그것이 살아감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안다. 내 기억이 한꺼번에 사라지지는 않기 때문에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삶이 다만 지연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다행스러운일이다.
그렇다고 이 다행을 누군가와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내 몫으로 주어진 다행일 뿐이다. - P35

그들이 언젠가는 
고통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희망, 
고통을 견디는 동안에는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숨쉬며 
살아 있을 것이라는 희망,
차라리 체념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희망이다.

때때로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건 
체념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 
일상에 푸른 잎을 내보이는 희망이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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