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부엌 식탁에 앉아 있는 지금 난데없는 마음의 통증이 온몸을 휘감듯이 훑기 시작한 것이었다. 몸이 악기가 되어 섬세한 음조의 현악곡으로 탈바꿈한 감정을 연주하기 시작한 듯 말이다. 몸의 온갖 부위를 저리도 많이 잃었는데, 자기를 구성하던 부분을 저렇게나 많이 잃은 이상 고통을 안 느끼는 게 더 이상하지. 내가 뭘 해 줄 수 있을까? 줄 수 있는 게 있을까? 가진 것 하나 없는 나라도?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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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나 스스로 그런 말을 ‘믿고‘ 나이를 먹는 내 나름의 방식을 갑자기 의심스럽게 여길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 나이에도 무엇을 하고, 무엇을 즐기고, 무엇을 바라는지 스스로 결정하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노년기의 자유이며, 나는 이러한 자유를 소중히 생각하고 지키는 방법을 알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거의 강박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억누르고 싶은 것은 아닐까? 그렇게 하면 죽음을 피할 수 있다고 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 P50

위험한 상황에 대처하는 데 필요할지도 모르는 공격성이 다른 사람, 다른 대상, 보이지 않는 어떤 것에 투사되는 경우가 꽤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 모든 것이 두려움과 마비의 베일에 가려지고, 두려움을 감수하는 용기가 갈수록 사라지며, 맞서 싸우려는 의지가 약해지면서 사람들은 체념하게 된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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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봉과 나는 거의 매일 새벽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아파트 단지 뒤쪽에 있는 야산으로 산책을 나갔다. 목줄 없이 산책을 나가려면 꼭 그 시간이어야만 했다. 이시봉은 목줄 하는 것을 싫어했고, 나 역시 목줄 잡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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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모든 것이 우리에게 이질적이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 세상에 눈 깜짝할 순간만 머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런데 그 눈 깜짝할 순간은 다정한 윙크일 수도 있고 자발적인 무지일 수도 있는데 자신이 두 가지 다 가능한 존재임을 우리는 알아야 해. 그리고 악이 턱까지 차 있다 해도 그 너머를 볼 준비를 해야 해.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시간, 우리의 시간이 아직 남아 있는 동안 그것을 허비하지 않는 거야. - P247

엘리자베스가 얼굴을 찡그렸다. 매일 아침 그녀는 어쩐지 속아 넘어간 것 같은 기분으로 잠에서 깬다. 그러면 어느 쪽에 투표했든 속았다는 기분으로 일어나는 사람이 온 나라에 몇 명이나 될까 하는 것으로 생각이 이어진다. - P256

사실 우리는 때로 잊어야 하지. 잊는 건 중요한 일이란다. 일부러라도 그래야 해. 그래야 좀 쉴 수 있거든. 듣고 있니? 우리는 잊어야 해. 그러지 않으면 영영 잠을 잘 수 없게 될 거야.
엘리자베스는 훨씬 어린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울음이 날씨처럼 그녀에게서 나왔다. - P271

되살아나다. 엘리자베스가 말한다. 기아와 곤궁과 무. 온 도시가 격랑에 휩쓸리고 있으나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야만이 몰려온다. 사람들이 희생될 것이다. - P273

자유로운 영혼이 지상에 도착해요.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는 비극적인 일들을 공간 속으로 폭발시킬 기술과 비전을 가지고요. 우리가 그녀의 그림들이 지닌 생명력에 주의를 기울일 때마다 그것들은 그 공간 속에서 무로 증발해 버리고요.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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