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그를 봤을 때 나는 친구와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비록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지만, 땀을 흘리며 대문을 열고 들어온 그의 얼굴과 가슴은 온통 분홍빛으로 달아올라 있었고 머리는 축축했다. 그는 매너 있게 멈춰 서서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붉은색 페인트를 덧바른 콘크리트 위에 쭈그리고 앉았다가, 나무 벤치 가장자리에 앉았다가 하면서 말이다.
이야기의 끝은 항상 수도 없이 존재해왔으나 하나같이 이야기를 끝내기는커녕 그 어떤 이야기로도 엮이지 않은 무언가를 계속해서 만들어냈기 때문에, 이야기를 끝내려면 나에게는 어떤 의식의 행위가 필요했던 것이다.
- 그물모두가 즐거이 누리는 가정, 순조롭게 기능하는 가정을 짓는 일은 수완과 시간과 헌신과 공감 능력을 요한다. 다른 이들의 안녕을 건설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넉넉한 인심에서 비롯하는 행위다.파탄한 건 가정이 아니라 가부장제가 지어낸 이야기다. 그렇대도 그 이야기의 테두리 안에서 자라는 아이 대다수는, 다른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대안이 될 이야기를 써 나가느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 노란빛 나날큰애가 어디 간 거지? 그러고야 아이가 떠났다는 사실을 기억했고, 우리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향해 각기 나아가고 있음을 새삼스레 깨달았다.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자유를 쟁취하고자 분투한 사람치고 그에 수반하는 비용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라벨리 : 우리처럼 모방을 못하는 사람은 상상력이 부족한 거죠. 우리 방식 외에는, 그 바깥 것은 보질 못하잖습니까. 우리 모두 고약하고 좀스런 내셔널리스트예요. 그에 비해 외국인은, 이방인은, 자기를 위조하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자신을 받아 준 사회의 문화를 모방해야만 하죠. 우린 말로는 독창성과 오리지널리티를 높이 평가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은 서로가 서로를 닮고 싶어 하죠. 심지어 서로의 차이조차 고만고만한 차이이길 바라고요. 내 말 알아듣겠어요, 베넷?
나는 긴장해 손이 조금씩 떨리는 사람들을 믿는다.
- 폭풍삶은 허물리고 무너진다. 우리는 와해되는 삶을 지키려 뭐든 손 닿는 대로 부여잡는다. 그러다 깨닫는다. 그 삶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없음을
원어 그대로 읽어야 이 글에 가깝겠다. 이대로 번역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우리말 제목으로 느껴지는 것과는 다른 책이고 원제를 보니 이해된다. 우리가 사는 방식을 읽고, 작가의 책을 두권 더 구매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머지 두권도 소장하기로 했다. 별점 다섯개로는 부족하고, 작가의 예전 글보다도 더 좋아 아껴두고 읽고 싶은 책...
Date 3월 7일지나치게 내 생각에 몰입하면 안 될 것 같아서 한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다. 잠시 나를 잊어야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나치게 깊게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나를 사로잡은 이 불안감이 일기장을 산 날부터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갈수록 확고해진다. 일기장에 사악한 악령이 숨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