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어느 낮의 시간에 혹은 어느 밤의 시간에 혹은 낮도 밤도 아닌 시간에 박제돼 고정불변의 지리멸렬한 일상을 반복하는 그들 앞에서, 나는 아이처럼 울먹였다. 수년 전 그들을 생생히 만났을 때보다 그들의 인생이 더 깊이 들여다보여서였다. 그들의 슬픔도, 불안도, 고통도......












육, 오, 사...... 무심히 중얼거리던 그녀는 시간이 이제 거의 남지 않았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숫자 일이 영으로, 네모에 가까운 구멍으로 바뀌는 순간 그녀는 들이쉬던 숨을 흡 하고 멈췄다. 도대체 무슨 시간이 남지 않은 것인지 그녀는 생각해내려 했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그 모든 시간이 남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만 막연히 들었다.
- 그 밤의 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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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바라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의 평화다.


나는 파도의 리듬, 등과 다리의 맨살에 닿는 햇볕, 머리칼을 흩날리는 바람과 물보라의 위로를 받으며 해변을 따라 한참을 걷는다. 일렁이는 파도에 몸을 숨겼다 나타나길 반복하는 도요새처럼. 그러고는 흠뻑 젖은 채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온다. 하루를 온전히 홀로 보낸 자의 벅찬 마음으로. 밤의 어둠이 한입 베어물기 전의 둥근 보름달처럼 흡족한 마음으로. 서둘러 입술을 갖다대야 할 만큼 넘치도록 가득 찬 잔처럼 충만한 마음으로. 시편에 나오는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구절처럼 귀한 충만함이다. 그러다 느닷없이 두려워진 나는 기도한다. 아무도 가까지 오지 못하게 해주세요. 내가 넘쳐 쏟아질까 두렵습니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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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왜 안 되겠어요. 뚝심 있는 모습에 비하니 내모습이 더 부끄러워지네요. 우리 세대는 "페미니즘은 안 돼, 그건 골로 가는 길이야" 같은 말을 들을 때마다, "걱정 마세요. 아빠, 나의 사소한 문제로 다른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을게요"라고 대답했지요. 주위에서 여성들이 하나둘 좌절하는걸 보았습니다. 품위 있는 침묵 속에서 행해진 일들이 우리발을 꽁꽁 묶어놓은 겁니다.

"눈 뽑힐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겁니다"라는 말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협박이에요. 내 주변에는 복싱선수, 바이커 갱단, 용병 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이 당신을 찾아내서 작은 숟가락으로 당신 눈알을 파낼 겁니다. 당신이 가장 예상치 못한 순간에요. - P43

이런 역학관계에는 관계의 핵심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 등장합니다. 결국 추한 모습만 남게 되죠. 하지만 자신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떠날 수가 없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죠. 어떤 일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사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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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선택이냐 그른 선택이냐는 없고, 둘 다 결국에는 그른 것이 되어 버릴 옳은 선택만 둘 있는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바움가트너의 아버지의 경우 책임감이 자신을 위한 욕망을 이겼으며, 그 덕분에 그의 선택은 명예로운 것, 심지어 고귀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자기희생이 바보와 빈둥거리는 사기꾼들에게 낭비되었다고 느끼기 시작하면 그 선택은 불가피하게 원한의 원천이 되고, 세월이 흐르면서 영혼에 심각한 손상을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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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자신의 진정한 관심은 이 통증의 생물학적 또는 신경학적 측면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의 고난과 상실의 은유 역할을 할 수 있는 힘에 있다는 것 또한 이해하고 있다.

삶은 위험해요, 매리언, 언제라도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있죠. 선생님도 그걸 알고, 나도 그걸 알고, 모두가 그걸 알아요-모른다면, 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이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완전히 살아 있는 게 아니죠.

바움가트너는 지금도 느끼고 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고, 지금도 살고 싶어 하지만 그의 가장 깊은 부분은 죽었다. 그는 지난 10년간 그것을 알고 있었으며, 지난 10년간 그것을 알지 않으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그때야, 9년하고 여덟 달 동안 서로 파괴하는 두개의 모순된 정신 상태 사이에서 살아 보려고 애쓴 뒤에야, 자신이 이 모든 일을 얼마나 철저하게 엉망으로 만들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산다는 건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고통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은 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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