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여성을 향한 보편 세상의 적대감, 주류적인 사고와 좀처럼 섞이지 못하는 존재의 곤란함, 관습이라는 미명 아래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부조리에 저항하고 싶은 마음 같은 것들을 이미 먼저 겪은 여성들과
책 속에서 대화하면서 나는 치유받았고 그리하여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가진 게 없어 외롭고, 괴로웠고, 곤궁했고, 비참했으나, 읽고 쓰는 일로 나는 존엄하고 우아하게 살아남았다. 세상은 내게 티끌만큼의 상처도 낼 수 없다. 내게는 ‘자기만의 방‘과 ‘글 쓸 자유‘가 있다. - P24

확신할 수 있었다. 같은 혈액형을 공유하는 친부나 당신이 아니라, 피로 엮이지는 않았지만 나의 가능성을 알아본 (혹은 알아보지 않았더라도 관계 없다) 세상의 호의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고. - P56

11년 차 기자로 더할 나위 없이 안정적인 삶을 영유하던 2025년 2월, 나는 중국으로 향한다. 한국일보사 최초의 여성 베이징 특파원으로서,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서 또다시 자기만의 방을 짓고 ‘500파운드를 벌며 글을 쓸 것이다. 100년 전 울프는 "다른 무엇이 되기보다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나는 이 결정이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길이라 확신한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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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팔에 난 털이 시곗줄 연결부위에 끼였다. 나는 그 작은 통증을 그녀 대신 느끼듯 몸을 움찔거렸다. 공감은 메두사에게 쏘인 것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 P165

나는 주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식탁에 물 항아리를 머리에 인 여자 노예들이 그려진 고대 그리스 화병 모사품이 있었다. 나는 화병을 잡아 바닥에 던졌다. 그것이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는 순간, 메두사의 침이 독을 퍼뜨리며 내 몸을 가장 특이한 방식으로 붕 띄웠다.
고개를 들자 어머니가 모사품 파편 사이에 서 있었다. 정말로 서 있었다. 그녀는 키가 컸다.

나는 커피를 마저 마셨다. 걸인 여자가 우리 쪽에 왔을 때 10유로 지폐를 플라스틱 컵에 넣었다. 여자는 그리스어로 뭐라 중얼거리더니 절룩거리며 다가와 내 손에 입을 맞추었다. 아테네에서 누군가 어떤 식으로든 내게 애정을 보인 최초의 경험이었다. 나는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맞닥뜨린 남자가 자신의 딸에게 불리할 일도 자신에게 유리하다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 깨달음으로 나는 자유로워졌다.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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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나 자신을 정의를 욕망하는 비자발적 탐정으로 본다면, 내가 탐정이자 목격자이기도 한 사실이 어머니의 병을 미해결 범죄로 만들까? 만약 그렇다면, 누가 악당이고 누가 피해자인가?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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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의 체리)
하지만 체리가 담긴 그릇을 그린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내 친구(남자)가 말했다. 내 어휘집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삭제하면, 행복해질 거라고. 동의할 수 있을 듯하다.
어머니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지만, 그땐 너무 어려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결국 아버지를 떠났고 자신의 시간을 찾았다.

그런 시간을 찾는 게 우리가 원하는 전부다.
당신은 시간을 찾자마자 
더 많은 시간을 원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사이에 더 많은 시간을.
충분한 시간이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절대 붙들고 있을 수도 없다.

너무나 이상하다.
우리는 살아간다. 그런 다음 우리는 죽는다.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하다.

홀로코스트를 


직접 겪으면,
결코 거기서 헤어나올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남은 생애 동안 그것이 
모든 것에서 울려 퍼지는 걸 느끼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는 종종 말할 거리가 바닥난다.
그리고 늘 함께 드는 생각은
내가 말한 모든 게 후회된다는 것.

내가 자기 경멸에 빠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느낌은 지나간다.
그리고 나는 다시 말하기 시작한다. 
영문을 알 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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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책을 마구 들일 수는 없어서 냉장고를 털듯 책장을 조금이라도 비워보려 하지만 워낙 속도가 더디기도 한데다 새 책은 계속 나오니까, 또 신간을 읽는 시간이 더 많기도 해 책장은 점점 비대해지고 있고 그만큼 가슴은 답답해진다.
바로 대여가 가능한 신간은 먼저 빌려 읽어본 후 구매 여부를 검토하기로 하는데 이 책은 목차만으로도 책값은 한다. 어째서인지 이런 주제의 책이 어렵고 지루할 거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이 책은 독서의 즐거움이 충만한 책이다. 다만 후루룩 읽고 반납할 만한 능력이 되지 못하므로 구매 후 제대로 된 독서를 시작하는 편이 현명할 듯하고, 프롤로그 외 12장, 70개의 소주제만 읽어보아도 다차원의 공감이 일어난다. 어지간한 책에는 밑줄을 주욱주욱 긋고는 하지만 어쩐지 이 책은 밑줄 따위를 남기고 싶지는 않으므로 우선 가볍게 읽고 소장본은 소중히 간직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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