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여년 전 이 책을 읽었던 나를 조금이나마 찾아볼 수 있으려나 해서, 안다고 착각하는 나를 돌아볼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 당분간 2,30년 전 읽어보았던 책을 다시 읽어보기로... 시국이 트라우마인 시절을 이렇게 보내보기로 하면서 펼친 첫 옛날 책...
《걱정 없이 사는 기술》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도구인 돈을 주체적으로 피하는 기술, 그리고 단 한 명의 적도 만들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기술. 매우 어려운 이 두 가지 기술을 내게 보여준 사람이 있다. - P9
《거대한 침묵》모든 권리를 공격하고 죽이는 행태가 현재 끔찍할 정도로 너무 과하여, 얼마나 거대하고 견고한 침묵 지대가 유럽 한복판에 만들어졌는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말해보세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얘기해 보세요"사람들이 그에게 말한다. 하지만 그는 말하는 법을 잊었고, 아직 다시 배우지 못했다. - P97
《삼림 관리인의 딸》"혀에 까만 반점이 있어요. 엄마."확실히 특이한 아이였다. 마사의 막내딸은 죽은 나비의 장례를 치러주고, 장미꽃을 먹고, 소가 지나다니는 길 웅덩이에 갇힌 올챙이를 건져다가 다리가 자라도록 연못에 놔준다. - P97
팬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자 마사가 밖으로 나가서 최대한 큰 소리로 외친다.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절망이 저 아래 아하울의 계곡까지 전해지고, 계곡이 그녀의 말을 돌려보낸다.그녀가 생각한다. 마사는 신경 쓰지 않는다. 무슨일이 일어나야만 한다. - P102
《물가 가까이》그는 샤워를 하러 들어가 뜨거운 물 아래 서서 자신이 익사할 뻔했음을 깨닫는다. 한참 동안 그렇게 서 있다가 밖으로 나와서 목욕 가운으로 몸을 감싼다. 그런 다음 전화번호부에서 번호를 찾아 수화기를 든다. - P159
《퀴큰 나무 숲의 밤》하지만 적어도 죽음만큼은 확신했다. 누구나 무언가를 확신해야 했다. 그래야 하루를 이해할 수 있었다.그는 마거릿의 집 뒷문으로 다가가서 귀를 기울였다. - P205
그 괴로움이 한낮의 꿈속이라 하더라도 괴로움의 감정이 꿈결같지는 않지요, 인생에서도요. 그럼에도 그 가운데에서도 온기가 사라지지 않는 삶들이 보여서 좋았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위로를 주는 글이라는 평들이 싫었던 적도 있었다고 적으셨는데, 위로의 말들이 피로하게 느껴지곤 하는 저에게는 오히려 이 글이 정말로 위로가 되었네요. 어떤 의도로 쓰셨건 위로하고 싶다고 위로가 건네지는 건 아닌데 작가님 시선에 따스함이 묻어 있나 봅니다.
아일랜드 작가의 작품들에 공명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마도 위계와 굴종의 역사가 유난히 우리와도 유사하기 때문인 듯 합니다. 작품들을 통해 수녀회를 비롯한 야만의 역사가 인생에 스며들 수 밖에 없는 그들에게 깊이 공명할 수밖에 없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