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여다보고 기록하는 행위의 의미에 대해 이토록 잘 드러나는 글이 또 있을까? 일상적인 언어로 된 운장일 뿐인데 전율이 오는 지점들이 있고, 과소평가된 작가라는 평에도 공감이 된다. 누군가는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었다고 하였고, 다른 누군가는 지지 않으려고 쓴다고도 했지만 내게는 다만 타인의 이야기였다. 글을 쓰고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읽을 때는 과거의 나는 타인이로구나 싶기도 했고, 모든 걸 붙잡으려는 집착으로도 느껴져 어느 때부터인가 쓰는 행위를 중단했었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다시 기록을 시작해볼지 생각하게 되었다. 75년이 지난 지금 이것은 금지된 행위는 아니므로...

Date 1950년 11월 26일
애초에 일기장을 산 것 자체가 실수였다. - P9
Date 1951년 1월 1일
솔직히 말하면, 내게는 저녁에 침대에 눕는 순간 밀려오는 피로감이 평안의 원천이다.어쩌면 휴식을 거부하는 나의 굳은 의지는 피곤이라는 행복의 원천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오는 두려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 P38
Date 1951년 1월 3일
친구들의 옷차림과 쨍쨍하고 날카로운 불안한 목소리에서 자신의 행복과 부와 행운을 증명하려는, 한마디로 자신들의 삶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하지만 선물받은 장난감을 자랑하던 학창 시절처럼 실은 그들조차 그 사실을 진심으로 믿는 건 아닐 것이다. 친구들에게는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잔혹함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미켈레와 아이들과 나의 삶을 생각하면서, 어머니를 해묵은 종교화 인쇄물처럼 바라보곤 한다. 그럴 때면 세상 모두에게서, 심지어는 어머니로부터도 떨어진 채 오직 이 일기장과 나만 홀로 남은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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