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갑자기 다시 읽고 싶어, 새로 사 두었던 설국을 꺼내어 두고 눈이 오길 기다렸다. 마침 오늘 예보대로 설상대를 볼 수는 있을 만한 눈이 내리고 있어 획실한 행복을 누리게 된 하루
비인간 동물에 대해 잠시 언급되기는 하나 논조가 너무나 강렬하여 주장하는 바에 동감하고 공감하면서도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내칠 수가 없었다. 유물론적 이기일 뿐이므로 타자의 경계는 어쩔 수 없이 조금 넓은 우리까지인 걸...하고 어깨를 으쓱하고 말 수는 없게 된 마음이랄까.젠더 트러블을 보다가 어렵지도 않은 단어에도 이해불가인 오역이 있었다는 게 떠올랐는데 이 책도 그러함. 대충 걸러 읽지만...그런데 알아차리지 못한 오역은 또 의미를 어디로 끌고 갔을런지....
보름스 : 모든 살아 있는 존재, 특히 살아 있는 인간의 삶에는 죽음의 형태가 한 가지 이상 존재합니다. 살 만하지 않은 삶에도 여러 가지 형태가 있는데, 그것은 살 만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주체의 죽음을 초래합니다. 인간의 삶이 죽음에 맞서 살아 있는 삶을 돌보는 것으로 이루어지듯, 그것은 또한 모든 의미에서, 살아 있는 인간의 모든 생기적 차원에서, 살 만한 삶의 조건을 준비하면서 살 만하지 않은 삶에 맞서 살 만한 삶을 돌보는 것으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 P42
버틀러: 주체를 상호주체성으로 언급해야 하는 이유는 당신의 삶이 살 만하지 않고서는, 그리고 수많은 삶들이 살 만하지 않고서는 나의 삶도 살 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공통되게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고 공통된 삶을 위해서 사회구조에 의존하기 때문이지요. 나라는 주체는 유아기만이 아니라 평생을 돌봄에 의존하며, 여기서의 "돌봄은 모성적 특성이라기보다는 살 만한 삶을 위한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대비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의존하는 구조가 실패하면 우리 또한 실패하고 쓰러집니다. 제가 맞다면, 살 만한 삶의 상호주체 조건은 타인의 삶에 대한 나의 일종의 의무를 암시하며, 그 타인 역시 나에게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 P59
버틀러 : necropolitical logic"거기"와 "여기"는 부인과 유기가 일어나는 가운데 안정적인 것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 중 누구라도 그러한 근본적 불평등이 확정 또는 편향되어 재생산되는 이 세계의 모습에 동의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삶의 방식을 보존하려 하고, 그렇게 보존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 한편 이들이 외면하는 타인이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 P99
버틀러 : 우리가 삶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나의 것이든, 우리의 것이든, 다른 누구의 것이든 죽음과 파괴를 한쪽으로 밀어둘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심리적 부인에 입각해서 삶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살 만함의 조건을 확립하기 위해서 죽음의 힘에 반대해야 합니다. - P131
언젠가 목화는 임천자의 혼잣말을 들었다. 신을 찾는 사람은 자기 속부터 들여다봐야 해. 거기 짐승이 있는지, 연꽃이 있는지. 언젠가 목화는 장미수의 혼잣말을 들었다. 기도로 구할 수 있는 건 감사하다는 말뿐이지. 나머지는 다 인간 몫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