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배운 건 
수리의 종류에 관한 용어들이었다.
수와 중창과 재건의 차이 같은 것. 
면접을 끝내고 받아 온 [고건축용어사전]에서 
가장 먼저 찾아본 말들이었다.  - P11

마구 달려서 
자기 마음에서 눈 돌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아닐까. 
나는 아마 산아도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그런 산아에게 
바다처럼 큰마음이 생겨나고 있었다. 
고여 있는물웅덩이가 아니라 
더 많은 것들이 생생히 사는 마음이.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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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고 있었구나.
아파트 발코니에 선 채 
허공에서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는
그러다가 어둠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들어가기도 하는 눈송이를 
하염없이 건너다보며 
승준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P9

그 모든 지난 시간들이 
결국 타인의 고통 위에 세워진 
모래성 같은 자기만족에 불과할 수 있다는 
허무를 알게 해준 피사체가 
그녀에게는 살마였던 셈이다. - P56

아버지에게 자신과 동등한 
인격과 존엄을 갖춘 타인이 있긴 했을까. 
누군가의 아픔을 
절대적으로 바라본 적이 있었을까. - P151

그는 휴대전화를 도로 손에서 내려놓았고, 
대신 바그다드에서 만났던 
사내와 아기를 다시 떠올렸다.
살아줘. 그는 속삭였다.
가능한 오래. - P177

"나는, 나도.....
"사람을 죽이려고 태어나지 않았지."
말하면서, 그는 처참한 마음으로 깨달았다. 
아들에게 그토록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그것이었다는 것을. - P186

그 친구와 나의 이야기를 잊지 말아달라고.
누군가 너의 진심을 몰라준다 해도,
세상이 지금보다 황폐해져 
네가 기대어 쉴 곳이 점점 사라진대도,
네가 그것을 잊지 않는 한, 
너는 죽음이 아니라 
삶과 가까운곳에 소속돼 있을 거야.
아무도 대신 향유할 수 없는 
개별적이면서 고유한 시간 속.....
네가 어디에 있든.
언제까지라도 - P247

한 아이가 들여다보던 
스노볼 안의 점등된 세상을 지나,
그 아이를 생각하며 잠 못 들고 뒤척이던 
또다른 아이의 시름 깊은 머릿속을 지나,
거울 속 세상과 그녀를 위해,
영원에서 와서 영원으로 가는 
그 무한한 여행의 한가운데서,
멜로디와 함께..
빛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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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불안이 아니라 권좌를 찬탈한 종의 존재적 불안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고래로 그래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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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놀라운 장면이었다. 
그리고 웃고 싶었다. 
고함 소리도 없고, 욕도 없고, 
테이블에서 뛰쳐나가는 사람도 없고, 
긴장감만 맴도는 침묵도 없고, 
정당한 자기 몫의 감자를 차지하기 위해 
달려드는 사람도 없었다. 
숟가락이 던져지지도 않았고, 
미트나이프를 집어 드는 사람도 없었고, 
자기 목에 칼을 겨누며 
내가 지금 여기서 죽어버릴까? 
소리치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가족 중 누구도 
박사 학위의 모호한 영역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달력에 그의 시험 날짜와 
세부 내용을 적지도, 
그에게 유용할지도 모르는 도서 목록을 
술술 풀어내지도 않았고, 그런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해줄 사람도 없었다. - P39

수의사가 말했다. "이제 끝이에요."
그 속도가 너무 끔찍했다. 
삶에서 미끄러지기가 참 쉽구나.
한순간에는 있고 
그다음 순간에는 없구나. 
모니카는 주변을 뒤져보고 싶은 충동과 
싸워야 했다. 
어디지, 고양이가 어디로 간거지? 
분명 여기 어딘가 있을 텐데. 
그냥 이렇게 사라져버릴 수는 없는 거다.
이상하게도 에이바가 마음에 다시 떠올랐다. - P68

주로, 에이바는 그냥 살았다. 
작은 일상의 행동을 이어갔다.
머릿속으로 항상 
‘거기서 도망쳐 왔다‘라고 되뇌면서 
그 사실을 줄곧 확인할 뿐이었다. 
아무도 그녀를 찾지 않았다.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아무도 귀찮게 하지 않는 하루가 
또 지나갔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눈을 감았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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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버리, 런던

불볕더위, 불볕더위다. 
폭염은 새벽 동이 트자마자 
그레타의 잠을 깨운다. 
그녀를 침실에서 아래층으로 내몬 
더위는 눌러앉은 손님처럼 집 안에 산다.
복도를 따라 누워 있고, 
커튼 주변을 에워싸고, 
소파와 의자에도 
무겁게 축 늘어져 기대고 있다.
어떤 유형의 실체처럼 
부엌을 가득 메운 공기 때문에 
그레타는 테이블 옆면에 기대어 
슬그머니 주저앉는다.

이런 날씨에는 그저 빵을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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