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에서 찾아낸 조선의 민낯 - 인물과 사료로 풀어낸 조선 역사의 진짜 주인공들
이성주 지음 / 애플북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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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서문에는 미시사로 쓰인 역사책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데, 책의 부제('실록에서 찾아낸, 인물과 사료로 풀어낸 조선 역사의 진짜 주인공들')대로 저자가 실록에서 찾아낸 24개의 에피소드에 집중 조명하여 교과서에서 배웠던 한국사의 큰 줄기 속에서 활약한 주인공의 조력자, 사건 발단에 중요한 단서가 되었던 물건, 그동안 몰랐던 사건의 전후 상황을 알려준다. 워낙 야사나 미시사를 다룬 역사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 닥치는 대로 읽어서 책 목차만 읽었을 때는 별로 새로울 내용이 없겠다 싶었는데, 몰랐던 사실들이 제법 많이 있어서 지루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재밌게 읽었다. 아, 역시 내 역사 지식에는 부족함이 많다. 특히, <역신이 된 조선을 사랑한 스파이, 강홍립>과 <북벌의 꿈에 숨겨진 명분은 무엇인가, 효종> 편을 읽으며 인조하면 시대의 흐름을 모르던 무지한 왕, 효종하면 북벌론만 떠올리던 나의 편협한 한국사 지식을 반성하게 되었다. 시간을 내어 호란과 청나라 관련 된 책을 찾아서 읽고, 인조와 소현세자, 효종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장수한 왕, 영조의 장수비결을 알아보는 <위대한 군주, 그러나 슬픈 아버지> 편도 재미있었다. 사실 나는 이미 예전에 TVN에서 방영했던 렛츠고 시간탐험대에서 왕과 내시편을 보고 조선 왕들의 스케줄과 업무 스트레스가 이토록 살인적인데, 어째서 영조는 그렇게 장수할 수 있었을까 궁금증을 가졌던 적이 있다. 영조 관련된 글을 읽다보면 검소라는 키워드가 유독 많이 도드라지던데, 아마 식습관마저도 검소해서(?) 그랬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영조 본인은 아버지인 숙종과 형 경종을 간호하는 과정에서 의학적 지식을 많이 쌓아 음식과 약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더라. 다만 이 책을 통해 영조가 자주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을 처음 접하고, 굉장히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나한테는 영조하면 아들을 죽인 비정한 아버지라는 이미지가 강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차마 상상할 수 없어선가보다.


역사 책에 붙는 민낯이라는 단어는 연예인 쌩얼 공개라는 제목이 붙은 인터넷 기사를 클릭하는 기분을 떠올리게 만든다. 백퍼센트 민낯일리 없어라고 생각하면서도 호기심이 샘솟는달까. 책 표지에 불타버린 구멍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만원권의 세종대왕 얼굴로 보인다. 그러나 만원권 화폐의 세종대왕 모습은 창작된 것이다. 책 제목은 [조선의 민낯]이라고 적혀 있는데, 책 표지의 그림은 누구를 보고 그린지도 잘 모르겠는 현행 화폐의 상상화라는 사실은 다소 안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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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화성 축성 공역 기간을 10년으로 예상했으나, 정약용은 이를 34개월 만에 끝낸다. 중간에 흉년 때문에 6개월간 공사가 중단한 걸 뺀다면 실제 기간은 28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때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거중기란 기계가 등장한다. 테렌즈가 쓴 <기기도설>에 등장하는 거중기를 개량한 것인데, 당시 조선의 기술로는 구리로 만든 기어장치를 만들 수 없어서 정약용은 대신 도르래의 성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이 거중기는 40근의 힘으로 625배나 되는 2만 5천 근의 돌을 들어 올릴 수 있었는데 이는 중국의 기중기보다 네 배 더 성능이 좋았다. (p.27)


일단 공신으로 책봉되면 왕과 공신들은 피의 결속을 다지며 서로 배신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다. '삽혈'이라고 해서 제물로 바쳐진 동물의 피를 입 옆에 바르며 다짐하는데 이는 회맹제의 핵심이다. 왕조국가에서 왕은 신성불가침의 존재인데 이런 왕이 입가에 피를 묻혀가며 맹세를 할 정도로 챙긴다면 이 신하들이 세운 공이 만만치 않음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p.31)


임진왜란 7년의 기간 동안 기록으로 채집된 단위 전투 105회 가운데 조선 관군 단독 또는 의병이 참여한 전투가 87회, 의병 단독 또는 관군이 참여한 전투가 18회였고, 명군의 전투는 고작 8회뿐이었는데 그나마도 모두 조선 관군과의 연합작전이었다. 그것도 평양성 탈환작전과 정유재란 최후의 공격전을 제외하고는 매우 소극적인 전투였다. 105회의 전황을 분석해보면 조선군의 공격으로 시작된 전투가 68회였다. 이것만 봐도 조선군이 매우 공격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승패 또한 조선군 측 승리가 65회, 패배 40회로 전쟁 기간 동안 개전 초 1년을 제외하고는 조선군이 일본군을 압박하던 상황이었다. (p.35)


원균을 2등에 녹공해놓았다마는, 적변이 발생했떤 초기에 원균이 이순신에게 구해주기를 청했던 것이지 이순신이 자진해서 간 것이 아니었다. 왜적을 토벌할 적에 원균이 죽기로 결심하고서 매양 선봉이 되어 먼저 올라가 용맹을 떨쳤다. 승전하고 노회한 공이 이순신과 같았는데, 그 노획한 적괴와 누선을 도리어 이순신에게 빼앗긴 것이다. (중략) 나는 원균이 지혜와 용기를 구비한 사람이라고 여겨왔는데, 애석하게도 그의 운명이 시기와 어긋나서 공도 이루지 못하고 일도 실패하여 그의 역량이 밝혀지지 못하고 말았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36년, 1603년 6월 26일 기록 중 발췌 (p.48)


인조~현종)20여 년 동안 다섯 차례나 영의정 자리에 올랐고, 이 기간 동안 무려 37번이나 사직 상소를 올렸던 정태화. 능력도 능력이지만 관리로서의 처세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점이다. 사직 상소로 자신의 결백과 무욕을 증명하려 한 점은 이해가 가지만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그 진퇴를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닐까? 세상 사람들이 처신을 잘한다 말하고, 사관이 "세상이 돌아가는 대로 행동하고 국사를 제대로 담당하려고 한 적이 없었다"라고 기록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p.58)


"무슨 죄인가? (중략) 벼슬을 꼭 해야겠는데 스스로 이룰 능력이 없어 권신을 가까이하다가 (중략) 여러 사람들이 성을 내어 하루아침에 형세가 가버려서 결국 이렇게 죄를 얻게 된 것인가?" 정도전이 자기 죄는 아니라 말하자, "자기 몸만 온전히 하고 처자나 보호하면서 세월을 보내다가 (중략) 그만 간사한 것이 드러나고 죄가 발각되어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인가?" 이후에도 문답은 이어지는데 이 문답의 주인공 등에는 진흙이 묻어있고 손에는 호미를 들고 김을 매고 있는 농부였던 것이다. (p.69)


처음에 유배됐을 때만 하더라도 정도전은 백성들을 불쌍하게 여겼지만 곧 자기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확인한다. 백성들은 지배자들이 생각하듯이 그렇게 멍청하지 않고 세상 돌아가는 물정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우둔함을 넘어서 유학자들 이상의 탁견을 보이는 경우도 많았다. 충격적인 건 백성들의 삶이었는데, 많이 배우고 또 그 능력을 인정받아 중앙 정계에서 활동했던 정도전은 자신이 배운 성리학으로 세상을 바라봤고 관료적인 생각으로만 백성들을 대했다. (p.69)


유배지에서 정도전은 고민을 한다. (…) 왜 정의로운 자는 곤궁하고 불의한 자는 부귀한가. (…) 정도전은 이 '정의'에 대해 고민하다 <심문천답>이라는 철학책을 쓴다. 핵심은 선악의 인과응보는 하늘의 뜻이 아니라 인간 각자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정의로운 자가 곤궁하고 선한 자가 화를 입는 건 시대나 사회의 탓이 아니라 사람들의 지혜와 성심이 부족해서라는 주장이다. 이렇게 마음을 정리한 정도전은 본격적인 유랑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역사적인 함주 막사 회동을 실행한다. (p.70)


실리주의 노선을 택한 광해군의 생각은 달랐다. "명나라와 연합작전을 해야 한다. 말 안 통하는 용맹한 장수보다는 중국어를 잘하는 똑똑한 문신이 낫다"란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때 광해군 눈에 들어온 인물이 강홍립이었다. 강홍립은 예전에 어전통사로 맹활약했는데 어전통사는 지금으로 치자면 대통령 통역관이라고 보면 된다. 광해군은 왕 직속 통역관으로 원어민 수준의 중국어를 구사하던 강홍립의 실력을 높이 샀다. 결국 도원수 한준겸 밑에서 종사관을 했고 순검사로 있었던 게 군대 경력의 전부였던 강홍립에게 1만 3천 파병군의 총사령관 자리인 오도 원수 자리를 제수한다. (p.75)


역사 교과서에는 인조반정 이후 겪는 두 번의 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은 국제정세를 파악 못해 인조 행정부가 자초한 외교적 실패라고 나와있는데 실상은 다르다. 인조반정 후 명나라와 후금은 너나 할 거 없이 인조를 비난했다. 후금은 그렇다 치고 명나라조차 인조를 비난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명나라로서는 광해군은 꽤 괜찮은 왕이었다. 핑계를 많이 대긴 했지만 군대도 파병해준 말이 통하는 군주였다. 불만이 없었단 소리다. 그런데 난데없이 인조가 등장한 것이다. 명나라 조정에서는 한때 심각하게 조선을 쳐 다시 광해군을 왕으로 앉힐까 고민할 정도였다. 덕분에 인조는 2년 넘게 명나라로부터 책봉을 받지 못했다. 후금의 경우 한 수 더 떴는데 정묘호란을 광해군에 대한 복수로 내세울 정도였다. (p.82) 


인조가 비록 범상한 군주이긴 하지만 광해군에게 넘겨받은 강홍립을 끝까지 지켜준 것은 군주가 어떤 자리인지를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당대에는 역적의 오명을 뒤집어쓴 배신자였지만, 긴 역사로 본다면 강홍립은 조선을 사랑하고 군주에게 충성을 다한 충신이었다. (p.96)


효종이 세자 시절 감기에 걸렸는데 인조가 자신이 총애하던 이형익에게 침을 맞으라고 (…) 당황한 효종은 침을 맞지 않겠다며 끝까지 버텼고, 결국 효종은 자신의 병이 감기임을 증명해낸다. (…) 이형익은 소현세자 독살설의 핵심인물로 지목된 사람이다. (p.94)


효종은 산림의 거두인 양송 송시열과 송준길의 마음을 잡고 지지를 얻어내야지만 왕권을 지킬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조정 내에서 자신의 정통성과 왕위 승계를 거의 유일하게 지지했던 김자점을 버려야 했다. 김자점은 친청파였다. 명분과 의리, 예의를 중시하던 산림세력들은 곧 죽어도 반청이었다. (…) "복수설치." 청나라에 당한 수치를 복수하고 설욕하겠다는 선언! 바로 북벌을 정권의 기치로 내걸었다. (p.97)


효종은 다방면으로 엄청나게 노력했다. 북벌을 제외한 일반적인 군주로서 평가한다면 효종은 평균 이상의 성적을 냈다. (…) 경연에도 열심히 임했고, 옷차림 하나에도 검소함이 묻어났으며, 세자 때 끊은 술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입에 대지 않았다. 여색을 밝힌 것도 아니었고, 유흥을 즐기지도 않았다. 무인의 기질이 강해서 욱하는 성격이 있었지만 신하들과 종친들에게는 관용으로 대했다. 자신의 정통성에 치명적인 약점이 되는 소현세자의 셋째 아들 석견에게도 관용적인 모습을 보여줬으며, 김자점이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던 이징조차도 죽이지 않았다. (…) 정치적으로도 평균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대동법을 확대시켜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려 노력했고, 부임하는 지방관들은 꼭 접견해 지방에서 해야 할 임무를 주지시켰고, 이도 못 미더웠는지 수시로 암행어사를 파견해 지방관들의 횡포를 제어하려 애썼다. (p.98)


송시열은 북벌을 에둘러 표현하는 효종 앞에서 수기치인을 말했다. 유교의 핵심 사상이 바로 수기치인이다. 자기 자신의 수양에 힘쓰고 이를 바탕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유교다. 옳은 말이지만 관념적이다. 효종의 입장에서는 답답했을 것이다. 실제로 북벌을 준비했든지 간에 기껏 고개를 숙이고 데려온 이가 한가롭게 수신하라는 말만 하고 있으니 앞이 막막했다. 송시열이 출사하기 직전 효종에게 보낸 상소와 십여 권의 별첨 시무책을 보면 현실정치와는 동떨어진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 그러나 그는 송시열이었다. 그가 효종 옆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효종의 행보에 힘이 실릴 수 밖에 없었다. (p.100)


(예송논쟁-체이부언) 효종이 그렇게나 송시열을 아꼈는데 결국 효종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파렴치한으로 매도되자 송시열은 기해독대의 내용을 공개한 것이다. 효종에게 충성을 다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p.102)


1894년 일본 시마네 현의 지방지인 <산인 신문>의 울릉도 탐방기 제목이 <조선 죽도 탐방기>였다. 1894년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에서는 울릉도를 죽도라고 불렀다. 그럼 독도는 뭐라고 불렀을까? 바로 송도다. 그런데 1905년 2월 22일 생뚱맞은 짓을 한다. (…) 울릉도를 죽도라 부르더니 이제 와선 독도를 죽도라 고 하는 것이다. 더 웃긴 건 이때부터 울릉도를 송도라 했다는 점이다. (p.107)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안용복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안용복은 영웅호걸이라고 생각한다. 미천한 군졸로서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를 위해 강적과 겨뤄 간사한 마음을 꺾어버리고 여러 대를 끌어온 분쟁을 그치게 했으며 한 고을의 토지를 해복했으니, 영특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포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앞서는 형벅을 내리고 나중에는 귀양을 보냈으니 참으로 애통한 일이다. 울릉도는 척박하다. 그러나 대마도는 한 조각의 농토도 없고 왜인의 소굴이 되어 역대로 우환이 되어왔는데, 울릉도를 한번 빼앗기면 이것은 대마도가 하나 더 생겨나는 것이니 앞으로의 앙화를 이루 말하겠는가. (p.112)


한반도의 성, 그중에서도 산성을 보면 충차를 움직이고 활용할 만한 지형이 없다. (…) 한반도는 기본적으로 화강암 토질이어서 땅을 파다 보면 돌이 나온다. 결국 한반도에서 성을 공격하기 위해선 대부분 성벽을 넘는 공격법을 택해야 했다. 이러다 보니 활만 잘 쏘면 외부의 침입을 쉽게 격퇴할 수 있었다. 이는 한민족의 기본 방어 전략인 청야입보와 맞물리는데 평시엔 성을 중심으로 생활하다가 전시가 되면 적들이 사용할 물자를 싹 없애고 모든 인원과 전략 물자들을 성으로 집결시켜 방어하는 것이다. (p.127)


영화 <최종병기 활>을 보면 주인공 박해일이 애깃살, 즉 편전을 날리는 모습이 보인다. 국궁보다 훨씬 빠르고 파괴력도 대단한 편전은 조선군에게는 비밀병기 같은 존재였다. 설사 맞지 않았다 하더라도 보통 화살의 절반 크기인 편전은 통아가 없이는 다시 쏠 수 없기에 적들이 재활용할 수가 없었다. 이러다 보니 조선은 이 편전 기술 연마와 기밀보호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p.129)


정권을 잡은 이의방은 같은 혁명동지였던 이고와 채원 등을 제거한 뒤 완벽한 일인 독제체제를 갖춘다. 그러나 독단적이고 오만방자하게 정권을 운영하던 이의방은 정중부의 아들 정균에게 살해되고 (…) 문제는 이때부터인데 정중부는 이의방의 형제였던 이준의와 이린을 포함한 백여 명의 가솔을 저자에서 참수한다. 남은 이린의 일족은 정중부의 칼날을 피해 낙향하는데 이 이린의 손자 중에 이안사가 있다. 이안사는 목조, 즉 이성계의 고조부다. 이성계는 이의방의 혈족인 것이다. (p.151)


이성계의 가별초는 최소 1천 명 이상의 병력을 자랑했고, 수많은 전장을 함께 누빈 실전 경험이 있었다. 아울러 평시에는 같은 촌락에서 농사를 짓고, 누대에 걸쳐 이성계 일족의 휘하에서 생활했기에 그 충성도 역시 여타 장군의 사병과는 차원이 달랐다. 물론 개별적 충성도는 높았겠지만 다른 장군의 사병은 소수였다. 소수일 수 밖에 없었던 건 경제력과 토지 때문이었다. (…)이성계는 고려 말의 활약으로 여러 차례 공신에 책봉이 됐고, 그에 따른 포상금도 어마어마했다. 아울러 누대에 걸쳐 관리했던 함경도 지역에 꽤 많은 재산이 있었다. 조선이 개국할 당시 함경도 지역 토지의 1/3이 이성계의 소유였다. (p.155)


사극이나 각종 역사 사료에 등장하는 아전들이 백성들의 고혈을 뽑아먹는 부패관료의 전형처럼 그려지는데 이는 단순히 개인의 성품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였다. 조선은 가난한 나라였다. 재정상태가 극도록 허약했기에 중국에서 사신이 방문할 경우 접대비를 염출하기 위해 일반 관료의 녹봉을 깎아야 할 정도였다(1년 중 제대로 봉급을 받지 못하는 날이 더 많을 정도였다). (…) 결국 이들은 권력을 활용해 알아서 수익을 보전해야 했다. (p.162)


고려의 사헌대와 어사대는 중서문하성 낭사로 구성돼 있었는데 오늘날로 치자면 행정부 관료 중 젊고 패기 있는 인물들만을 모아 감사원으로 파견하는 형태였다. 쉽게 말해서 독립적인 기관이 아니라 행정부에 예속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형식상으로는 재상이나 고급관료들의 부하 직원인 셈이다. (…) 아무리 사명감이 투철하다 해도 자신의 상관을 탄핵할 정도로 배짱이 두둑한 사람이 나오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조선 시대 사간원은 의정부나 6조에 속해 있지 않은 독리 기간이었다. 정승이나 판서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p.184)


<효경>에 "천자는 쟁신 7인만 있으면 비록 무도하더라도 그 천하를 잃지 않고, 제후가 쟁신 5인만 있으면 비록 무도하더라도 그 나라를 잃지 않으며, 대부가 쟁신 3인만 있으면 비록 무도하더라도 그 집을 잃지 않는다"라는 말이 나온다. 조선은 이 말뜻을 잘 알고 몸소 실천한 나라다. (p.186)


성종이 세종이나 정조에 비해 그렇게 뛰어난 업적을 이룬 것도 아닌데 꽤 괜찮은 왕으로 기억되는 이유 중 상당수는 바로 신하들의 평가 덕분이다. 성종은 신하들의 입맛에 맞는 왕이었다. 열세 살 어린 나이에 얼떨결에, 그러니까 한명회가 장인이란 이유만으로 왕위에 오른 성종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수렴청정을 받는다. 즉 실권은 대비였던 정희왕후와 훈구대신들에게 있었다. 그사이 성종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유교적 덕목에 충실한 왕으로 키워진다. (…) 신하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유교적 소양을 기본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최상의 가치라고 배운다. 물론 성종도 친정체제에 들어가서는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왕다운 카리스마를 보여주려 하지만 번번이 신하들의 의견에 굴복하고 혼자 화를 삭이기를 반복해야 했다. 어린 시절 받았던 교육이 늘 발목을 잡은 것이다. (pp.190-191)


임금은 기본적으로 하루 다섯 끼를 먹었지만, 영조는 세 끼면 족해했다. 그마저도 육류가 아니라 채소 위주였다. 단백질은 주로 어류를 통해 섭취하였다. 영조가 현미나 잡곡을 섞은 밥을 먹었다는 것도 주목해서 봐야 한다. (…) 제일 중요한 건 무슨 일이 있어도 끼니를 챙겼다는 점이다. 신하들과 회의나 토론을 하던 중이라도 식사시간만 되면 잠시 중단할 정도로 영조는 규칙적으로 식사를 했다. 이 부분은 주목해서 살펴봐야 한다. 이렇게 회의나 토론 중간에 밥을 먹는 경우 영조는 혼자 식사를 했고, 신하들은 영조가 수저를 내려놓을 때까지 그냥 기다렸다 다시 회의를 시작했다. 당연히 신하들은 배가 고픈 상화잉어서 영조의 페이스에 말려들 수 밖에 없었고, 영조는 이를 십분 활용해 자기 뜻대로 회의를 진행했다. (p.251)


영조는 눈물을 많이 흘렸는데 (…) 무서운 건 눈물을 타인에게까지 강요했다는 점이다. 타인의 진심은 믿지 않아도 타인의 눈물은 믿었떤 듯싶다. 사도세자에게 눈물을 흘리도록 강요했고, (…) 아이러니하게도 이 눈물이 영조의 장수를 도와줬던 것 같다. (…) 눈물을 흘리면 망간이 배출되면서 스트레스가 완화된다. (pp.254-255)


1666년 9월, 13년간의 억류 생활에서 탈출한 하멜은 네덜란드로 돌아가 조선에서의 생활을 한 권의 책으로 풀어낸다. 바로 <하멜표류기>다. 여기에 나와 있는 조선은 말 그대로 골초 국가였다. "현재 조선인들 사이에는 담배가 매우 성행하여 어린이들까지도 4, 5세 때에 이미 이를 배우기 시작하며, 그래서 남녀 간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p.258)


정조는 조선 시대 역대 왕 중 최고의 골초였다. 심지어는 흡연을 장려해야겠다며 신하들에게 담배 정책안 제출을 지시한 책문을 낼 정도였다. 겉으로는 쌀농사를 지어야 할 땅에 담배농사를 짓는다며 막을 방법을 찾았지만, 이를 정책으로 밀고 나가야 할 시점이 되면 흐지부지 일을 마무리하지 않았다. (…) 정약용도 소문난 골초였다. 오죽하면 <담배>라는 시를 지어서 귀양살이하는 사람에게는 차와 술보다 더 좋은 것이 담배라며 극찬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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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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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배크만은 요나스 요나손에 이어 내가 알게 된 두번째 스웨덴 작가다. 책표지가 <창문 넘어 도망친 백세 노인>을 떠올리게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글에서도 유사성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말은 곧, 이 책이 시간 가는 걸 모르고 푹 빠져 읽을 만큼 재밌고, 메인 캐릭터가 매우 강렬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한 문체의 소설이었다는 뜻이다. 블로그에서 처음 연재되었던 소설이라는데, 강렬한 부제를 단 40개의 챕터, 에피소드가 모여 하나의 소설로 묶이는 형식, 간결한(문장도 짧고, 수식어도 많지 않은) 문장이 가독성을 높여서 400페이지 넘는 책이 결코 두껍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만든다.


여기, 오베라는 남자가 있다. 자명종 없이도 매일 아침 6시 15분 전에 눈을 떠 커피 여과기를 사용해 늘 정확히 똑같은 양의 커피를 내리고, 동네를 돌면서 발길질을 하면서 교통표지판 같은 물건들의 상태를 점검한 뒤, 방문객 주차 구역으로 가서 모든 차 번호를 수첩에 적으며 약속된 24시간 이상 주차한 차가 있는지를 확인해야만 하는 남자. 갑작스레 사고로 죽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철도 회사에서 일하는 것에 크나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아버지가 가르쳐준 신념(남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된다)을 지키기 위해 누명을 쓰고 야간 청소부가 되어야 했고, 자국에서 생산되지 않은 차(BMW)를 샀다고 하나뿐인 친구와 의절해버린 흑백논리의 사나이.


그렇기 때문에 이 남자, 오베는 그의 삶에 유일한 색깔이었던 아내 소냐가 떠난 이후 더이상 살아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자살을 결심한다. 처음에는 목을 매달아 죽으려고 했고, 소냐의 신경제 약을 한움큼 삼기려고도 했었고, 소냐의 아버지가 물려준 총으로 머리를 쏘려고도 했으며, 기찻길 위로 떨어진 남자를 구해낸 김에 기차에 치여 죽으려고도 해 봤지만, 이 까칠하기만 한 남자는 그를 필요로 하는 동네사람들에 대한 오지랖 때문에 소냐가 생전에 사랑하던 고양이에 대한 책임감으로, 공포에 질린 '애송이' 기관차의 삶이 파멸될까 봐 거듭해서 자살을 실패하게 된다.


앞집에서 온 외국인 임산부와 그의 가족들을 시작으로, 꼬리가 절반이 잘리고 귀가 하나뿐인 고양이와 몸무게가 심하게 많이 나가는 이웃집 젊은이 지미, 아내가 가르쳤던 학생 중 하나였던 아드리안, 동성애자 미르사드, 그리고 아내와 오베의 오랜 이웃이었던 치매 걸린 노인 루네와 그의 부인 아니타가 오베의 한결 같던 일상에 균열을 일으킨다. 그들은 무슨 말만 하면 화를 내고, 거절하고, 규칙을 따지기만 하는 이 괴팍한 남자가 남을 도울 수 있는 훌륭한 기술들(가구를 수리하고, 집을 짓고, 차를 고치는 법)을 알고 있고 도움을 청하면 거절하질 못하는 누구보다 인간적인 사람이란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계속해서 찾고, 마침내 사랑하게 된다. 그의 아버지와 그의 아내가 가르쳤던 지침들을 잊지 못했던 오베는, 그 가르침을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그의 이웃들로부터 배우게 된 것이다.


오베가 아내 소냐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고, 그들이 어떻게 사랑에 빠졌으며, 오베가 소냐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그러니까 오베와 소냐의 이야기는 하나부터 열까지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마침내, 바라던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한 오베의 끝도. 아, 그러고보니 이 소설, 스웨덴 소설판 <국제시장>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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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은퇴를 바라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자기들이 잉여가 될 날을 고대하면서 평생을 보낼 수 있지? 하릴없이 배회하면서 사회의 짐이나 되는, 대체 어떤 인간이 그런 걸 소망하지? 집에 앉아 죽을 때나 기다리는 삶. 더 최악인 것은 누군가 자길 양로원에 집어넣어주길 기다리는 일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해서 화장실에 가는 삶. 오베는 그보다 더 나쁜 게 뭔지 상상이 안 갔다. (p.41)


오베가 좁은 샛길을 통해 쇼핑센터에 도착했을 때, 그는 주차공간이 두 곳밖에 안 남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평일 낮에 전부 쇼핑센터에 있다는 게 오베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진정 사람들이 일할 곳이 더 이상 없는 것이었다. (p.48)


오베는 아버지의 동료들이 톰에 대해 좋게 말하는 걸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는 부정직하고 심술궂었다. 그게 아버지의 동료들이 파티에서 맥주 두어 병을 마시고 나서 하는 얘기였다. 하지만 오베는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들은 적은 없었다. 동료들의 얼굴을 한 번씩 보며 "애가 넷에다 마누라는 아파"라고 말하는 게 전부였다. "톰보다 사정이 나은 사람들도 더 나쁜 상황에 처할 수 있어." 그러면 동료들은 대게 화제를 바꿨다. (pp.65-66)


사람들은 오베가 세상을 흑백으로만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오베가 볼 수 있는 색깔의 전부였다. (p.69)


오베가 뚱뚱한 사람들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절대 아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마음에 드는 모습으로 살 수 있다. 그는 그저 뚱뚱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을 뿐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살아가는지 헤아릴 수 없을 뿐이었따. 어떻게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을까? 대체 어떻게 살았기에 2인분의 인간이 된 것일까? 아마 그렇게 된 데에도 모종의 결단이 필요했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p.71)


누군가를 잃게 되면 정말 별난 것들이 그리워진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 미소, 잘 때 돌아눕는 방식, 심지어는 방을 새로 칠하는 것까지도. (p.83)


열여섯에 고아가 되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원래 가족을 대 체할 자기 가정을 꾸릴 시간을 가져보기도 훨씬 전에 가족을 잃는다는 것. 그건 무척 독특한 종류의 고독이었다. (p.103)


그녀는 종종 "모든 길은 원래 당신이 하기로 예정된 일로 통하게 돼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녀에게 그 '원래 당신이 하기로 예정된 것'은 아마도 '무엇'이었으리라. 하지만 오베에게 그건 '누군가'였다. (p.114)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물건을 너무 자주 바꾸는 나머지 물건이 오랫동안 유지되도록 하는 전문 기술이 불필요한 것으로 취급됐다. 누구도 품질에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았다. 루네도, 다른 이웃도, 오베가 일했던 직장의 관리자들도. 이제는 모든 것이 전산화되어야 했다. 꽉 끼는 셔츠를 입은 컨설턴트들이 노트북의 뚜껑 여는 방법을 알아내기 전까지 아무도 집 한 채 지은 적 없었던 것처럼. 마치 그게 그 옛날 콜로세움과 기자의 피라미드를 세운 방법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p.118)


이 세상은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기도 전에 그 사람이 구식이 되어버리는 곳이었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무언가를 제대로 해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나라 전체가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범속함을 거리낌 없이 찬양해댔다. 아무도 타이어를 갈아 끼우지 못했다. 전등 스위치 하나 설치 못했다. 바닥에 타일도 못 깔았다. 벽에 회반죽도 못 발랐다. 자기 세금 장부 하나 못 챙겼다. 왜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타당성을 잃어버린 형태의 지식들만 넘쳐났다. 한때 이런 이야기들을 루네와 했다. 그랬는데 루네는 가서 BMW를 샀다. (p.119)


소냐의 어머니는 소냐를 낳자마자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재혼하지 않았다. "난 여자가 있어. 지금 집에 없다 뿐이지." 가끔 누군가 감히 그 질문을 던지면 그는 그렇게 툭 내뱉었다. (p.209)


그는 자기와 루네가 평화를 유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그녀가 실망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와 루네 사이의 적개심이 소냐와 아니타가 최고의 친구가 될 수도 있었던 가능성을 어느 정도 망쳤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하지만 갈등이 그토록 오래 지속되다 보면 수습을 하는 게 불가능해지기 마련이었다. 그 갈등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누구도 기억 못한다는 단순한 이유로. 오베는 그게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몰랐다. 어떻게 끝났는지만 알았다. (pp.324-325)


"다른 집 아내들은 자기가 머리를 새로 한 걸 남편들이 못 알아본다는 이유로 짜증을 내잖아요. 제가 머리를 하니까 우리 남편은 내가 달라졌다고 며칠 동안 짜증을 내더라고요." (p.353)


예전에 소냐는 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시대를 잘못 만난 사람이라는 것을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인생에서 몇 가지 단순한 것들을 바랄 뿐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머리 위 지붕, 조용한 동네, 똑바로 만든 자동차, 헌신할 수 있는 여성, 제대로 된 할 일이 있는 직장, 정기적으로 뭔가 망가져서 언제나 고칠 게 있는 집. (p.370)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어렵다. 특히나 무척 오랫동안 틀린 채로 살아왔을 때는. (p.410)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소냐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처음에는 새 물건들 전부와 사랑에 빠져요. 매일 아침마다 이 모든 게 자기 거라는 사실에 경탄하지요. 마치 누가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서 끔찍한 실수가 벌어졌다고, 사실 당신은 이런 훌륭한 곳에 살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 거죠. 바깥이 추울 때 열쇠가 자물쇠에 꽉 끼어버리는 상황을 피하는 법을 알아요. 발을 디딜 때 어느 바닥 널이 살짝 휘는지 알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옷장 문을 여는 법도 정확히 알죠. 집을 자기 집처럼 만드는 건 이런 작은 비밀들이에요." (pp.41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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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없는 예수 - 아직도 성경 속 ‘스토리’에 의존하는가?
우덕현 지음 / 상상나무(선미디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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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성경 스토리에 당대 시대상의 주석을 입힌 <Killing Jesus>를 재밌게 읽었는데, 이 책은<Killing Jesus>의 내용과 정반대의 메세지를 던진다: 성경의 자구적 해석을 벗어나라! 

 

이 책은 크게 (프롤로그&메인 메세지)-(성경에서 얻는 지혜)-(작가와의 인터뷰)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던지는 메세지가 흥미로워 파트1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파트2: 성경에서 얻는 지혜>부터는 이 역시도 저자의 해석이 과하게 들어간 것은 아닌지 싶었다. 파트2에서 소개하는 성경문구를 반으로 줄이더라도 성경 원문과 같이 실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성경의 자구적 해석에서 벗어나라는 메세지를 던지던 저자가 자신의 성경 해석문구만 달랑 책 속에 싣다니, 아이러니하잖는가.

 

사실 성경은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두껍고, 어렵고, 난해한 에피소드로 가득 차 있어서 접근이 어렵다. 또 반대로 성경을 깊이 공부하던 이들 중 일부는 성경의 수많은 에러들(4대복음서에서 예수의 에피소드들이 시간이나 순서 등이 맞지 않는 경우 등)을 발견하고 혼란에 빠진다거나 신앙심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신자와 비신자, 모두가 성경을 문맥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성경에 많은 은유가 들어있는 이유는 "예수 당신께서 권력 압제라는 시대의 한계 속에 민중의 지적 수준을 고려해 말씀을 그리 담았기 때문"이며, 또 한편으로는 쉽고 직접적으로 던져지는 메세지는 그 말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는 달리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쉽게 잊혀져버리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기 예수가 전하고자 했던 메세지를 정확히 읽어내기 위해 그가 그 위에 씌워둔 가림막을 걷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말한다. 종교는 성경에서 은유를 벗겨내지 않은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교리화했고, 신자들에게 예수의 말과 행적을 의심없이 믿으라고만 말해왔다. 그렇지만 의심 없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고대의 성경은 현대에 반드시 문제를 일으킨다. 종교가 적대시해야 할 대상은 다른 종교가 아니라, 내부의 적들, 무지, 맹신, 흑백오류, 그리고 다름에 대한 혐오감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가 아무리 흠 없는 인간으로 태어나 사람들에게 사랑의 종교를 세우고 퍼트렸다고 할지라도, 그의 가르침을 전한 제자들은 하나가 아니라 다수였고, 효율적인 종교 관리를 위해 약간의 각색과 협의를 볼 줄 아는 인간들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종교지도자들은 전부 예수처럼 이교도인도 사랑으로 품을 줄 아는 '신'이 아니라 자기 민족 또는 자기 가문을 사랑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아무리 종교의 시작이 흠 없었더라도 끊임없이 방향을 살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나는 성경을 다시 읽는다면 어떻게 읽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다만 이 책은 담고 있는 메세지 대비 두껍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 붙인 포스트잇은 전부 프롤로그와 파트 1에만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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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말씀의 대부분은 은유에 담겨 있다. (…) 예수 말씀이 은유에 담긴 것은 예수 당신께서 권력 압제라는 시대의 한계 속에 민중의 지적 수준을 고려해 말씀을 그리 담았기 때문이다. (…) 그러면서 자구적 해석이 교리화 되었고, 오류 없음과 같은 등급으로 포장되면서 누구도 두드려서는 안 되는 천국의 문이 된 것이다. 진실이 아닌 것을 머릿속에 받아들이면 세뇌되어 살게 된다. '은유를 벗겨내지 않은 말'은 받아들인 사람을 센서화 시킨다. (p.5)

 

비그리스도 청소년이든 크리스천 청소년이든, 그들이 예수의 가르침에 객관적으로 다가갈 방법은 사실 전혀 없다. 성경이 인류 최고의 고전임은 알더라도 예화 몇십 개, 영화로도 종종 만들어지는 스토리와 자구적 명구만 기억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 성경은 '영성'을 담은 것인데, 영성을 배제한 성경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카톨릭이든 개신교 어느 교파이든 그들의 교리 기준으로 펴낸 책은 그들 교회의 신자들이 읽어내기엔 적합하겠지만, 그 외 사람들의 입장에선 호교론과 다르지 않다. 인류의 68%가 비그리스도인인데 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 전혀 없는 셈이다. 더구나 은유를 벗겨내지 못하고 자구적 해석에 머물러 있기에 크리스천조차 예수가 아닌 제자들의 말에서 조언을 찾는 실정이다. 성경이 세계 최고의 고전이지만, 인문 서가에 꽂히지 못하는 이유는 이와 다르지 않다. (p.9)

 

그리스도교의 고전적인 선교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지금 아마존 가장 깊은 정글에 사는 원주민에게 어떤 종파나 교파의 성경이 전해진들 그들이 예수의 가슴을 들여다볼 수 있을까? 그들이 십자가를 목에 걸고 얻은 신이 더 행복을 줄까? 그들 삶의 질이 얼마나 더 향상될 수 있을까? 지금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보면 정답을 예측할 수 있다. 지금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말과 행동을 따르며 비그리스도인의 모범으로 살고 있는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그 나라가 이뤄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만, 공상과학 영화처럼 사후 천국만을 기다리는 게 현실이지 않은가. (p.21)

 

식물이 햇빛으로 머리를 두듯, 인류 누구나 태어난 순간부터 축복받은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진리의 방향이 필요하다. 잡풀도 겨울을 이기고 나와 갓 얼굴을 드러냈을 땐 난 못지않지만 한두 뼘만 자라 오르면 그 기운이 사라지듯, 아무리 종교의 시작이 흠 없었더라도 끊임없이 방향을 살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p.24)

 

서기 312년에 이르러 기독교는 큰 전환점을 맞는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콘스탄티누스 1세가 꿈속에서 하늘의 십자가를 보았고 '이것으로 이겨라'라는 예수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 뒤 군인들의 방패에 십자가를 그려 넣게 했고 전쟁에서 승리해 로마를 통일시킬 수 있었다. 로마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 1세'는 서기 313년에 '밀라노 칙령'을 거쳐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중단시킨다. 몰수했던 교회의 재산을 돌려주게 하고, 종교로 공인하면서 기독교는 부흥기를 맞는다. (p.31)

 

312년에 사제 서품을 받은 아리우스는 '예수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피조된 중보자로서 하느님과 유사 본질을 갖는 존재'로 주장한다. '예수가 창조물 가운데 가장 위대하지만, 신은 아니다.'라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아리우스의 주장은 논쟁을 불러왔고, 로마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세가 개입했다. 황제는 325년에 주교들을 소집해 '제1차 니케아 공의회'를 열었다. 공의회에 참석한 주교들은 예수의 신인양성 주장을 정통으로 인정하고 그와 대립하던 주장을 이단으로 선포한다. (p.33)

 

서기 376년, 교회 지도자들이 함께 회의를 열어 아타나시우스가 추천한 27권의 목록에 합의했고, 신약성경으로 확정한다. (p.34)

 

기록물을 번역하거나 필경사가 다시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에서 내용을 온전히 옮기기에는 인간이라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했다. 당시의 성경은 띄어쓰기, 마침표, 쉼표 등도 없이 붙여 썼고, 장과 절의 구분이 없었다. (독서의 편의를 위해 장은 1226년, 절은 1551년에 확립되었다.) 잘못 읽거나 잘못 받아 적은 것들이 생겨났고, 필경사가 속한 공동체의 신앙을 대변하려고 의도적으로 어떤 문장을 삭제하거나 글자를 빼 아예 본문을 수정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p.36)

 

4세기경, 로마 카톨릭 교황 다마소 1세는 제롬을 비서로 임명한다. 제롬은 성경 주석과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옮기는 일에 능숙한 신학자였다. 교황은 제롬에게 수많은 라틴어 필사본을 참고해 라틴어 사용권 지역의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할 성경을 만들라고 지시한다. 제롬은 그때까지 라틴어로 번역된 것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판단되는 사본들과 라틴어 사용권 밖(로마 제국의 동쪽 지역)을 대표하는 그리스어 사본의 본문을 하나하나 비교했다. 그 결과물은 서기 405년에 탄생한다. 이 성경(Vulgata bible)이 1546년에 카톨릭의 공식 성경으로 채택된다. (p.37)

 

이러한 신약성경을 그 어떤 방법으로 연구하더라도 예수가 아람어로 한 말을 '코이네'로 번역한 기록물과 마주하게 된다. 설령 '사본학'으로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성경을 찾아내고, 단어나 문장을 열심히 파고들지라도 학술적 종착점은 복음서 저자의 작가 세계와 마주할 수 밖에 없는 한계에 부딪히는 것이다. 복음서 저자들은 서로 다르니 곧, 서로 다른 성경 저자들의 '들은 말', '재인용한 말'과 만나는 셈이다. 성경을 읽을 때는 성경 저자와 만나는 게 아닌 예수의 가슴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p.40)

 

신약의 복음서는 구약과 닿아 있다. 예수도 구약과 연결을 이루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야훼 하느님과 예수의 말씀을 분리할 수 없음이 그것이다. 구약성경 또한 하느님이 불러주고 누가 받아쓴 게 아니다. <창세기>를 예로 들면, 창세기를 집필한 '성서 기자'들의 세계관 가운데 신의 권능과 그에 대한 인간의 경의를 압축해 표현한 그 당시의 시적 서술과 다르지 않다. 창세기의 저자가 그때까지 그 공동체에서 품고 있었던, 신과 우주에 관한 모든 지식을 통합한 것으로 보면 된다. (p.44)

 

구약의 자구적 해석 전승은 우리 시대까지 강요되고 있다. 기록 가운데 그대로 받아들여 가치로 삼을 수 있는 내용도 많지만, 반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들도 부지기수이다. 구약 강독시 자구적 해석에 빠져들면 안 될 곳들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하느님이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그 하루를 24시간 단위로 생각하거나 그 하루하루가 과학적 창조 순서일 것이라고 해석해 받아들이면 정신적인 혼란의 원인이 된다. 우주엔 태양계만 있는 게 아니고, 다른 우주와의 관계성 없이 독자적으로 태양계만 생성될 수 없으니 창조의 시간이 지구 기준일 리가 없다. 지구의 하루와 우주의 하루가 다르기에, 창세기에 등장하는 하루를 지구의 하루로 대입하면 모순이 발생한다. 물론, 창세기가 과학서가 아니기에 우주 어느 시점의 하루로 정하더라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p.45)

 

이런 이야기들을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문자 그대로 역사적인 사건처럼 받아들이게끔 스토리로만 주입하게 시킨다든지, 더 쉽게 전하겠다고 자구적 해석으로 애니메이션처럼 술술 풀어낸다면 성경을 읽는 목적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릇된 정보를 베이스로 삼으면 세상 사물과의 관계나 이치 판단을 뇌가 정확히 해낼 수 없으니 문제가 발생한다.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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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문학 여행 - 이탈리아를 거닐며 르네상스 천재들의 사유를 배우다 아트인문학 여행
김태진.백승휴 지음 / 오아시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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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아트인문학 여행>에서 소개된 그림, 건물, 조각의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작년 나의 이탈리아 여행이 떠오른다. 나 역시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도시를 전부 거쳤고, 소개된 그림들과 성당 건물들을 직접 관람하며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이 책 속의 사진처럼 예쁘게 나온 사진은 몇 장 없는 것 같지만.
 
책 표지 사진은 시에나다. 피렌체와 자웅을 다퉜던 도시. 피렌체에서 버스 혹은 기차를 타고 한 시간 반이면 도착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큰 성당을 꿈꿨던 시에나 대성당은 현재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로마를 제외한 대부분의 이탈리아 도시 성당들은 입장료를 받으니 성당에 얽혀 있는 이야기들과 그 곳에서 볼 수 있는 보물들(그 것은 그림일 수도 있고, 성물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무덤일 수도 있다.)을 잘 알지 못 한다면 돈이 아깝다거나 그 성당이 그 성당이라는 생각만이 머릿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다른 곳은 몰라도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려고 계획했다면 이탈리아 관련 역사 다큐라던가 미술, 건축 등 예술서를 최소 몇 권 읽고 공부해서 떠나기를 권한다. 이 책은 이탈리아의 여러 보석 같은 도시 중 한국인이 자주 찾는 피렌체, 로마, 베네치아, 밀라노만을 르네상스 시대 대표 미술가라는 테마로 묶어 다루고 있어 주요 도시를 약 1~2주로 짧게 여행할 계획의 여행자들에게 적합하다. 이 책에서는 피렌체에서는 브루넬레스키의 도전과 보티첼리의 과감한 투자를, 밀라노에서는 다 빈치의 몰입을, 로마에서는 미켈란젤로의 헌신을, 베네치아에서는 티치아노의 개방과 재창조를 만날 수 있는 루트를 공개한다. (실제로 챕터 끝장마다 방문해야 할 곳, 봐야하는 그림 등을 요약 정리한 페이지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로마와 피렌체만 각각 일주일씩 머물렀던 나에게는 책이 너무 짧고 얇게(?) 느껴졌지만 말이다. 만약 이 책이 인기가 많아 2부 격이 나오게 된다면 그 속에는 베로나, 시에나, 아씨시, 피사, 폼페이 등의 소도시 위주의 강의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음은 내가 이탈리아에서 방문했던 곳이다.
 
로마
1)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예배당, 예수가 태어날 당시 쓰였던 말구유, 교황 리베리우스 1세의 꿈 속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예언 하기를, "8월 5일에 눈이 내릴 것이니 그곳에 나를 위한 성당을 세우라.")
2) 포로 로마노
3) 콜로세움
4) 산타 마리아 안젤라 성당(미켈란젤로 인테리어, 자오선)
5)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베로니니의 [성 테레지아의 법열], 천사와 악마 속 불의 교회)
6) 포폴로 광장 및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키지 카펠라, 천사와 악마 속 흙의 교회, 카라바조 [바울의 개종], [성 베드로의 순교], 네로의 무덤 위에 백성의 헌금으로 세워진 성당)
7) 스페인 광장
8) 판테온(라파엘로 무덤)
9) 성 빈콜리 성당(베드로 쇠사슬, 미켈란젤로의 [뿔 달린 모세])
10)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
11)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카라바조의 3부작 [성 마태오의 간택], [성 마태오의 천사], [성 마태오의 순교])
 
바티칸
1) 피노테코 관(라파엘로 [그리스도의 변용], 카라바조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내림] 등)
2) 솔방울 정원
3) 교황 복도(촛대방-지도방)
4) 시스티나 채플(최후의 심판, 천장화, 보치텔리, 기를란다요, 페루지노의 모세 연작과 예수 연작)
5) 라파엘로방(아테네 학당, 베드로의 탈출 등)
6) 성 롱기누스의 창, 성 베로니카 수건, 성 안드레아 유해, 성 헬레나가 찾은 십자가와 모루
 
베네치아
1) 리알토 다리
2) 산 마르코 광장: 성 마르코 성당, 두칼레 궁전(틴토레토의 [천국], 거인 다리, 탄식의 다리), 코레르 박물관
3) 아카데미아 미술관(베로네제의 [레위 가의 향연], 벨리니의 [세례자 요한] &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티치아노의 [피에타], 틴토레토의 [성 마르코의 유해 행렬] 등)
4) 성 마조레 성당 및 종탑(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
5) 산타 마리아 글로리오사데이 프라리 성당 (티치아노의 [성모 승천], 벨리니의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도나텔로의 [세례자 요한], 티치아노의 무덤)
6) 산타 마리아 델 로사리오 성당(티치아노의 [성 라우렌티우스의 순교])
 
밀라노
1) 두오모
2) 브레라 미술관
 
피렌체
1) 두오모+종탑+산 조반니 세례당(천국의 문)
2) 우피치 미술관(보티첼리 [봄]&[비너스의 탄생]&[팔라스와 켄타우로스]&[유디트 연작]&[아펠레스의 비방], 미켈란젤로의 [수태고지]&[도니 성가족], 젠틸레스키의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다빈치와 베로키오 공동작 [그리스도의 세례] 등)
3) 산 로렌초 성당(도나텔로와 코시모 무덤)
4) 메디치 리카르디 궁(베노초 고촐리의 [동방박사의 행렬])
5) 피티 궁의 팔라티나 갤러리(라파엘로의 [의자의 성모], [대공의 성모])
 
 
로마에서는 또 다른 미켈란젤로, 카라바조의 그림을 만날 수 있는 성당이 몇 군데 있는데,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과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 캄피돌리노 박물관, 바티칸 미술관 등이다. 또 댄 브라운의 [천사와 악마]에 나온 성당을 쫓다보면 베르니니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댄 브라운 책 역시 가이드북이 아닐까 싶을 만큼 로마 곳곳의 묘사와 설명이 상세하게 담겨 있는 책이다. 피렌체 성당 설명이 좀 더 필요한 분들은 아트북스의 [피렌체 예술 산책]을 권한다. 아마 이 책에 실린 관광지를 전부 보려고 한다면 일주일로는 피렌체 관광이 모자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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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심연 - 뇌과학자, 자신의 머릿속 사이코패스를 발견하다
제임스 팰런 지음, 김미선 옮김 / 더퀘스트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매거진 Chaeg에서 광고로 접하고 위시리스트에 올려두었던 [괴물의 심연]이다. "괴물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사이코패스에 관한 심리학 도서이다. 인터넷에 사이코패스 또는 소시오패스 테스트를 치면 다양한 심리테스트가 뜨는데, 나는 이런 테스트를 즐겨 하면서도 심리테스트는 어디까지나 심리테스트일 뿐, 그 결과를 맹신했던 적은 없다. (나도 몇 번은 테스트에서 사이코패스로 판정이 났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각 심리테스트가 제시하는 사이코패스들이 고르는 답들이란 하나같이 생뚱맞거나 음산하여 이런 답만을 귀신같이 골라내는 애들은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을거야, 라고 은연중에 편견을 가졌던 것 같다. 지금, 미디어 시대에서 넘쳐나는 거짓과 진실을 구별하기 위해선 어떠한 참고문헌 없이 쓰여진 '쉽게 접할 수 있는' 넷상 글들만 읽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이코패스의 정의와 사이코패스의 탄생에는 환경과 유전, 어느 쪽의 영향이 더 큰지 궁금한 나는 "뇌과학자"가 쓴 몇 안 되는 사이코패스에 관한 이 책을 매우 읽고 싶어졌다.

 

이 책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뇌과학자 제임스 팰런은 가족들의 뇌 스캔 사진을 분석하던 중에 사이코패스 살인자의 뇌 스캔 사진과 패턴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사진을 발견했는데, 놀랍게도 그 사진의 주인공은 제임스 팰런 본인의 것이었다! 물론 그는 본인 스스로가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자신에게는 사랑하는 부인과 세 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남을 해치는 데서 기쁨을 얻지 않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임스는 자신의 어머니를 통해 부계 혈족에 살인을 저질렀거나 살인 혐의를 받은 사람이 즐비하다는 놀랍고도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팰런은 TED에서 <살인자의 정신 탐색>이라는 6분짜리 강연을 발표했으며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의 연구 결과는 《월스트리트저널》에 대서특필되었으며, 텔레비전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의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이 책에는 사이코패스의 정의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하여 대중이 궁금해할 만한 사이코패스 관련 여러 가지 질문들을 던지고 각 질문에 대한 자신이 찾은 답을 들려준다.

 

Q. 사이코패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결국 사이코패스를 만드는 세가지 요인은 안와전두피질과 편도체를 포함한 전측두엽의 유별난 저기능, 전사유전자로 대표되는 고위험 변이 유전자 여러 개, 어린 시절 초기의 감정적 · 신체적 학대나 성적 학대였다.

 

Q. 사이코패스는 왜 여자보다 남자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는가?

전사유전자는 X염색체를 통해 대물림되기 때문에 어머니와 아버지 양측으로부터 X염색체를 물려받는 딸들보다 오로지 어머니로부터 X염색체를 물려받는 아들들이, 만약 저기능의 변종을 받으면, 확실하게 영향을 받는 것이다.

 

Q. 왜 가자 지구와 미국의 슬럼가에는 유독 사이코패스가 많은가?

또, 폭력이 만성적인 사회에서는 여자들이 기왕이면 자신을 가장 잘 보호해줄, 공격성과 관련이 높은 유전자를 가진 남자들을 찾는데, 이런 결합은 세대를 거듭할 수록 공격성과 관련 유전자가 집중되는 효과를 낳는다.

 

Q. 사이코패스도 사랑할 수 있는가?

그렇다. 다만 그들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애착을 쉽게 다른 대상에 대한 분노로 바꾼다.

 

Q. 사이코패시를 다룬 검사는 무엇이 있는가?

헤어 진단표가 있지만, 지금도 사이코패스의 공식 정의가 없는 만큼 어떤 공식 검사도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정확히 밝혀낼 수 없을 것이다.

 

Q. 사이코패스를 치료할 수 있는가?

사이코패스 성향은 유달리 난적이라 치료를 해봐야 별다른 차도가 없을 것이다. 모노아민 신경전달물질계에 영향을 주는 약물로 충동성과 공격성을 얼마간 낮출 수 있고, 식이요법과 약물요법을 포함한 조기 개입으로 행동 문제를 줄일 수도 있겠지만, 공감과 가책을 없애는 핵심인 신경생리 결함은 그대로 남는다. 즉, 특효약은 없다.

 

Q. 우리는 사이코패스를 어떻게 상대해야만 하는가?

어떻게든 취약해 보이면 안 된다. 잠시 마주칠 뿐이라면, 엮이지 말라. 미소만 짓고 걸어가 버려라. 교제 중이라면, 상대방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그 사람의 기묘한 행동을 놓치지 말라. 이 사람이 당신에게 사기를 치려고 한다고 사람들에게 말하라. 하지만 조심하라. 소동을 벌이지는 말라. 그가 보복할 수도 있다. 그는 당신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보복을 잘 한다.

 

다만 아쉽게도 이 책은 내가 읽기에 너무 어렵다. 전문적인 용어가 난무하고 각 챕터마다 핵심 문장을 뽑아내지 못해서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읽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잠시 덮고 유튜브에서 그의 강연을 찾아 보았는데, 그의 강연은 좀 더 대중적인 단어로 그의 실험 결과를 요약, 설명해줘서 강연을 본 뒤에는 책을 이전보다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책 표지에 있는 남자가 책의 저자 제임스 팰런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유튜브에서 그의 TED 영상을 찾아보고 책표지와는 달리 푸근한 인생의 강연자 때문에 적잖이 당황했다. 왠지 표지 속 인물은 사이코패스 같은 느낌이 드는데, TED 영상 속 아저씨는 산타클로스에 가까운 인상이었다. 아마도 이 책 한 권으로는 사이코패스에 대한, 형체 없는 나의 편견들은 쉽사리 깨어지지 않은 듯 싶다.

 

p.64 그럼3A → 그림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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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발달 과정에서 환경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싶지는 않다. 아이들은 가르치지 않아도 자기 힘으로 많은 것을 배운다. 웃기, 걷기, 말하기도 그러하고, 성격처럼 더 복잡한 것도 알아서 발달한다. 지독한 학대나 치명적인 유전자 결함만 없으면, 아이들은 무사히 성장할 것이다. (…) 아이들을 애지중지 키우며 스트레스를 아예 없애주려는 것은 무의미하다. 아이를 키웠던 부모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어떤 아이도 부모가 바라는 대로는 되지 않으며, 아이들이 자라서 어떤 유형의 성인이 될지를 우리는 거의 좌우할 수 없다. 나와 함께 일하는 소아신경학자들도 '아이는 정해진 대로 만들어진다'고 말하곤 했다. 당신이 아이를 완전히 망쳐놓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p.127)

 

나는 사이코패시와 그 유전자를 사회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버리면 인류는 결국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생애 초기에 확인하고 그들이 어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어야만 한다. 공감에 서툴고 공격성이 강한 사람들도 잘만 다루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그들은 나처럼 가족과 친구들에게 스트레스를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시적 수준에서는 사회에 보탬이 된다. 나는 사이코패시 스펙트럼상에도 골프공처럼 스위트 스폿이 있다고 믿는다. 헤어 척도로 25~30점인 사람들은 위험하지만, 20점 언저리의 사람들은 사회에 필수적이다. 대담하고 활기차고 인류의 생동감과 적응력을 지켜주는, 나와 같은 사람들 말이다.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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