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심연 - 뇌과학자, 자신의 머릿속 사이코패스를 발견하다
제임스 팰런 지음, 김미선 옮김 / 더퀘스트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매거진 Chaeg에서 광고로 접하고 위시리스트에 올려두었던 [괴물의 심연]이다. "괴물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사이코패스에 관한 심리학 도서이다. 인터넷에 사이코패스 또는 소시오패스 테스트를 치면 다양한 심리테스트가 뜨는데, 나는 이런 테스트를 즐겨 하면서도 심리테스트는 어디까지나 심리테스트일 뿐, 그 결과를 맹신했던 적은 없다. (나도 몇 번은 테스트에서 사이코패스로 판정이 났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각 심리테스트가 제시하는 사이코패스들이 고르는 답들이란 하나같이 생뚱맞거나 음산하여 이런 답만을 귀신같이 골라내는 애들은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을거야, 라고 은연중에 편견을 가졌던 것 같다. 지금, 미디어 시대에서 넘쳐나는 거짓과 진실을 구별하기 위해선 어떠한 참고문헌 없이 쓰여진 '쉽게 접할 수 있는' 넷상 글들만 읽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이코패스의 정의와 사이코패스의 탄생에는 환경과 유전, 어느 쪽의 영향이 더 큰지 궁금한 나는 "뇌과학자"가 쓴 몇 안 되는 사이코패스에 관한 이 책을 매우 읽고 싶어졌다.

 

이 책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뇌과학자 제임스 팰런은 가족들의 뇌 스캔 사진을 분석하던 중에 사이코패스 살인자의 뇌 스캔 사진과 패턴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사진을 발견했는데, 놀랍게도 그 사진의 주인공은 제임스 팰런 본인의 것이었다! 물론 그는 본인 스스로가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자신에게는 사랑하는 부인과 세 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남을 해치는 데서 기쁨을 얻지 않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임스는 자신의 어머니를 통해 부계 혈족에 살인을 저질렀거나 살인 혐의를 받은 사람이 즐비하다는 놀랍고도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팰런은 TED에서 <살인자의 정신 탐색>이라는 6분짜리 강연을 발표했으며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의 연구 결과는 《월스트리트저널》에 대서특필되었으며, 텔레비전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의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이 책에는 사이코패스의 정의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하여 대중이 궁금해할 만한 사이코패스 관련 여러 가지 질문들을 던지고 각 질문에 대한 자신이 찾은 답을 들려준다.

 

Q. 사이코패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결국 사이코패스를 만드는 세가지 요인은 안와전두피질과 편도체를 포함한 전측두엽의 유별난 저기능, 전사유전자로 대표되는 고위험 변이 유전자 여러 개, 어린 시절 초기의 감정적 · 신체적 학대나 성적 학대였다.

 

Q. 사이코패스는 왜 여자보다 남자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는가?

전사유전자는 X염색체를 통해 대물림되기 때문에 어머니와 아버지 양측으로부터 X염색체를 물려받는 딸들보다 오로지 어머니로부터 X염색체를 물려받는 아들들이, 만약 저기능의 변종을 받으면, 확실하게 영향을 받는 것이다.

 

Q. 왜 가자 지구와 미국의 슬럼가에는 유독 사이코패스가 많은가?

또, 폭력이 만성적인 사회에서는 여자들이 기왕이면 자신을 가장 잘 보호해줄, 공격성과 관련이 높은 유전자를 가진 남자들을 찾는데, 이런 결합은 세대를 거듭할 수록 공격성과 관련 유전자가 집중되는 효과를 낳는다.

 

Q. 사이코패스도 사랑할 수 있는가?

그렇다. 다만 그들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애착을 쉽게 다른 대상에 대한 분노로 바꾼다.

 

Q. 사이코패시를 다룬 검사는 무엇이 있는가?

헤어 진단표가 있지만, 지금도 사이코패스의 공식 정의가 없는 만큼 어떤 공식 검사도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정확히 밝혀낼 수 없을 것이다.

 

Q. 사이코패스를 치료할 수 있는가?

사이코패스 성향은 유달리 난적이라 치료를 해봐야 별다른 차도가 없을 것이다. 모노아민 신경전달물질계에 영향을 주는 약물로 충동성과 공격성을 얼마간 낮출 수 있고, 식이요법과 약물요법을 포함한 조기 개입으로 행동 문제를 줄일 수도 있겠지만, 공감과 가책을 없애는 핵심인 신경생리 결함은 그대로 남는다. 즉, 특효약은 없다.

 

Q. 우리는 사이코패스를 어떻게 상대해야만 하는가?

어떻게든 취약해 보이면 안 된다. 잠시 마주칠 뿐이라면, 엮이지 말라. 미소만 짓고 걸어가 버려라. 교제 중이라면, 상대방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그 사람의 기묘한 행동을 놓치지 말라. 이 사람이 당신에게 사기를 치려고 한다고 사람들에게 말하라. 하지만 조심하라. 소동을 벌이지는 말라. 그가 보복할 수도 있다. 그는 당신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보복을 잘 한다.

 

다만 아쉽게도 이 책은 내가 읽기에 너무 어렵다. 전문적인 용어가 난무하고 각 챕터마다 핵심 문장을 뽑아내지 못해서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읽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잠시 덮고 유튜브에서 그의 강연을 찾아 보았는데, 그의 강연은 좀 더 대중적인 단어로 그의 실험 결과를 요약, 설명해줘서 강연을 본 뒤에는 책을 이전보다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책 표지에 있는 남자가 책의 저자 제임스 팰런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유튜브에서 그의 TED 영상을 찾아보고 책표지와는 달리 푸근한 인생의 강연자 때문에 적잖이 당황했다. 왠지 표지 속 인물은 사이코패스 같은 느낌이 드는데, TED 영상 속 아저씨는 산타클로스에 가까운 인상이었다. 아마도 이 책 한 권으로는 사이코패스에 대한, 형체 없는 나의 편견들은 쉽사리 깨어지지 않은 듯 싶다.

 

p.64 그럼3A → 그림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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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발달 과정에서 환경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싶지는 않다. 아이들은 가르치지 않아도 자기 힘으로 많은 것을 배운다. 웃기, 걷기, 말하기도 그러하고, 성격처럼 더 복잡한 것도 알아서 발달한다. 지독한 학대나 치명적인 유전자 결함만 없으면, 아이들은 무사히 성장할 것이다. (…) 아이들을 애지중지 키우며 스트레스를 아예 없애주려는 것은 무의미하다. 아이를 키웠던 부모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어떤 아이도 부모가 바라는 대로는 되지 않으며, 아이들이 자라서 어떤 유형의 성인이 될지를 우리는 거의 좌우할 수 없다. 나와 함께 일하는 소아신경학자들도 '아이는 정해진 대로 만들어진다'고 말하곤 했다. 당신이 아이를 완전히 망쳐놓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p.127)

 

나는 사이코패시와 그 유전자를 사회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버리면 인류는 결국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생애 초기에 확인하고 그들이 어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어야만 한다. 공감에 서툴고 공격성이 강한 사람들도 잘만 다루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그들은 나처럼 가족과 친구들에게 스트레스를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시적 수준에서는 사회에 보탬이 된다. 나는 사이코패시 스펙트럼상에도 골프공처럼 스위트 스폿이 있다고 믿는다. 헤어 척도로 25~30점인 사람들은 위험하지만, 20점 언저리의 사람들은 사회에 필수적이다. 대담하고 활기차고 인류의 생동감과 적응력을 지켜주는, 나와 같은 사람들 말이다.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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