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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50가지 전쟁 기술 - 고대 전차부터 무인기까지, 신무기와 전술로 들여다본 승패의 역사
로빈 크로스 지음, 이승훈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4년 4월
평점 :
1. 최상위 포식자의 숙명
전쟁은 흔히 비인간적이며,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 끔찍한 일로 여겨진다. 하지만 뭇 개인의 감상과 절규를 아득히 초월하는 역사의 목소리는 오히려 전쟁이야말로 지극히 인간적이며, 일일이 세기조차 어렵도록 자주 발생했던 일임을 담담하게 증언하고 있다.
물론 전쟁이 반드시 일어나야만 하는 유쾌한 행위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철저한 계획과 통제 하에 전개되는 동족 간의 대규모 살육은 오로지 우리 인간들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이한 행동 양상이다. 또한 선사 시대의 유물(원시적 형태의 냉병기)들이 방증하는 오래된 기록부터 온갖 첨단 기술이 동원되는 현대전에 이르기까지, 그 빈도가 매우 잦았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호메로스가 전하는 트로이 전쟁, 로마와 카르타고의 전쟁, 전국칠웅의 혈투, 그리스 세계와 페르시아의 전쟁, 알렉산더의 원정, 위촉오의 삼국시대, 고구려와 당의 전쟁, 십자군 전쟁, 몽골의 세계 정복, 백년 전쟁, 삼십년 전쟁, 나폴레옹 전쟁, 보불전쟁, 세계대전, 한국 전쟁, 월남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 별다른 노력 없이 곧장 떠오르는 것들만을 나열해도 숨이 가쁠 지경이다.
2. 오로지 '자칭'에 불과한 만물의 영장
우리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일컬음은 세계를 마음껏 이용하고 착취해도 된다는 허락이 아니다.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생물 종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주의 운행에서 도덕적 질서를 감지하고, 그에 대해 경외심을 품을 지성과 감성을 가진 존재에 지워지는 무거운 책임의 표현에 가깝다.
그런 인간이 자신의 육체를 파괴하고도 넉넉히 남을 무서운 힘을 손에 쥔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육식하는 맹수들이 서로 맞붙을 경우 패한 측은 그대로 죽음에 이를 만큼 큰 상처를 입지만, 그 피해의 범위는 단일 개체, 혹은 많아야 수십 마리로 구성된 집단의 성분 교체 정도에 그친다. 그러나 인간이 벌이는 전쟁의 규모와 성질은 그야말로 신의 진노를 불러올 만큼 광범위하고 잔학하다. 당장 이 글을 쓰는 나의 육체도 소이탄 파편 조금 묻으면 금세 녹아내릴 것이며, 대퇴부나 흉부에 M16 한 방만 맞아도 몇십 분 버티지 못하고 소멸할 것이다.
각설, 이 책은 이토록 무시무시한 전쟁 행위를 놓고 벌일 수 있는 여러 가지 사유 중 순수히 '공학적'인 측면에 집중하여 쓰였다. 전쟁의 당위성 등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던 전쟁들과 그에 사용되었던 무기, 전술, 교리 등을 중심으로 감정 없이 서술되었다는 점이 독특하다.
인명의 소중함, 전쟁이 몰고 오는 비참함 등에 대해 지탄하지 않는 바 아니나, 그런 생각은 잠시만 내려놓고 본문을 살펴보자.
3. 구성 상의 특징
책은 총 8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은 고대, 중세, 화약 혁명, 근대전, 산업혁명기, 1차대전, 2차대전, 냉전 이후 시기를 차례로 다룬다. 절대적 시간의 길이는 고대와 중세가 나머지 여섯보다 훨씬 길 것임이 자명하나, 근대 이후의 200여 년 동안 이루어진 기술 상의 진보가 그 이전 모든 시기의 진보를 합한 것보다 우위에 있기에 자연스레 이러한 구성을 따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고대 전차와 팔랑크스, 공성전 기법, 중세 기병과 사슬갑옷, 근대의 해상전, 총포의 등장 이후의 화력전 및 경보병의 비중 강화, 산업혁명을 뒤이은 세계대전, 21세기의 사이버 전쟁(해킹 등)에 이르기까지 적을 괴롭히고 분멸하여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숱한 천재들이 만들고 또 다듬어온 온갖 교묘한 기술들이 망라되어 있다.
각각에 대해 평균 7~10 페이지 정도를 할애하여 총 50가지의 전쟁 기술이 소개되는데, 그 중 대부분이 따로 떼어 읽기에 손색없는 분량과 서술인 까닭에 시종 가벼운 흐름으로 잘게 끊어가며 독파할 수 있다.
프로페셔널한 밀리터리 덕후들은 어떤 평가를 내릴지 모르나, 전쟁 분야에 대해서는 손자병법과 클라우제비츠 조금 기웃거려 본 것이 전부인 나만한 수준의 독자, 이를테면 문외한에 가까운 이들로서는 무기의 발전사, 전쟁사에 대한 잡학을 쌓는 데에 상당한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다만 주로 단편적 사실들이 나열되었을 뿐 전쟁사 전반에 대한 저자 일관된 통찰이나 흐름은 드러나지 않는 까닭(일부러 그런 의도로 쓴 책이 아닐까 싶긴 하지만)에, 서재에 꽂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백과사전처럼 활용하는 것이 최선일 듯싶다.
4. 아쉬운 점 몇 가지
① 저자가 영국인인 탓일까, 다루는 주제나 그것들에 대한 시각의 편향이 일부 존재한다. 동양의 큰 전쟁이나 화기 운용 기술 등은 아예 언급하지조차 않았으며, 양차 세계대전을 다루는 후반부에 진입하면 독일에 대한 적개심도 은은하게나마 엿보인다. 요컨대 중립적이지 못한 구석이 있다는 것.
② 본문에 수없이 삽입된 각종 수치, 년도 등의 출처 및 근거가 불분명하다. 물론 일일이 설명하기에는 너무 많은 분량이었겠지만, 원저자가 권미에 참고 문헌 목록 정도는 넣어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③ 삽화나 사진이 전무하다는 점도 퍽 아쉽다. 사선 대형, 트레뷰셋, 머스킷 소총, 전익기 등의 용어나 그것들이 지칭하는 무기/전술의 생김새를 국어사전만으로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 책에 국한하여 가장 좋은 독서 전략은, 국어사전, 이미지 검색, 지도 앱 정도를 동시에 켜놓고 낯선 용어가 나올 때마다 빠르게 검색하여 뇌리에 새로운 이미지를 채워넣으며 읽어나가는 방법이라 생각된다.
* 이 서평은 글담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귀한 책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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