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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한국사 : 고려편 - 격동의 500년이 단숨에 이해되는 스토리텔링 고려사 ㅣ 벌거벗은 한국사
tvN〈벌거벗은 한국사〉제작팀 지음 / 프런트페이지 / 2024년 5월
평점 :
1.
고3 때, 타인과 스스로를 괴롭히는 버릇이 하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터무니없어 헛웃음이 나지만, 당시엔 진지하게 임했던 일이기에 용기내어 적어본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이룩한 모든 분야에서의 모든 지식을 알고 싶어하는 버릇'이었다.
교복 앞주머니에 들어가는 작은 수첩에 그때그때 떠오르는 궁금증을 난필로 갈겨두었다가, 쉬는 시간이나 식사 때마다 교무실에 찾아가 다짜고짜 물음을 던졌다. 주로 생물학, 철학, 종교에 대한 질문이 많아서 생물II와 윤리와사상 과목 선생님을 성가시게 했다. 처음에는 이상한 놈이라며 흥미롭게 대해주던 분들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점차 곤란해했고, 나도 불만족이 커져서 수능이 임박할수록 교무실에 찾아가는 빈도는 급감했다.
내 사고의 수준이 높았다기보다는, 경험과 지식은 없이 어설픈 열정만 가득한 탓에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성경의 권위는 궁극적으로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진 천성와 문명의 발달로부터 인도된 과정 중, 종교를 형성하는 것은 보통 어느 쪽의 영향이 더 큽니까?' '세상에는 셋 이상의 종교가 각자의 옳음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적어도 둘 이상의 종교는 반드시 틀린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틀린 종교에 평생 몸담은 사람들은 어떻게 처분된다는 것이 주류의 학설입니까?' 이런 식이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그 어느 분야에서도 지식의 계통이 제대로 서지 않은 애송이의 두서없고 단편적인 질문에 불과했으리라.
2.
20대를 거치며 당시와는 생각이 자연스레 달라졌다. 고대 아테네나 중세 유럽 수도원 쯤에 태어났다면 모를까, 나의 지식이 늘어나는 속도로는 극도로 세분화 및 전문화된 현대문명의 지식의 총량을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어느 순간 뼈아프게 깨달았다.
그래서 슬프거나 아쉽냐고?
철학, 음악, 물리학, 반도체 등의 분야에서 너무나 압도적인 전문가들을 몇 번 마주한 뒤로는 오히려 유쾌한 체념이다. 30대의 모토는 '어차피 모두 알 수는 없는 세상, 그냥 인정하자. 미련에 붙들려 심신을 소모하지는 말자. 다만 하루하루 전력을 다해 임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간은 예전 온몸을 잠식했던 그 버릇이 독서활동이라는 보다 작은 숙주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형태의 고민이 되었다. 로마사에 관심이 생기면 '그 방대한 <로마제국 쇠망사>를 빨리 완독해야 하는데 어쩌지?', 카잔차키스에 관심이 생기면 '열린책들에서 나온 30권도 넘는 카잔차키스 전집을 빨리 다 떼어야 하는데 어쩌지?'하며 전전긍긍하는 식이다. 어차피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임을 무의식으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좋게 말하면 자유로운 독서, 나쁘게 말하면 즉흥적인 난독의 고질적인 약점이 아닐까. 아마 평생 싸우며 조율해가야 할 문제이리라.
이런 상태에서, 본작 <벌거벗은 한국사 - 고려편>을 읽게 되었다. 전문가 집단(최태성 강사와 5명의 역사학 교수진)에 의해 집필 및 감수되었음에도 과감한 생략 및 경쾌한 집중의 미학을 보여준다는 점이 눈에 띈다. 즐겁고도 고된 평생의 독서 편력, 그 중 인연이 되어 닿은 독특한 경유지로 기억에 남을 듯싶다.
3.
최태성 강사가 주도하고 몇몇 연예인이 밸런스를 맞추는 동명의 토크쇼가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여, 방송의 내용 중 일부를 책으로 펴낸 것이다. 그런 까닭에 예상 독자층도 일반 대중으로 설정되어 있음이 역력하다.
우선 소재 면에서, 역사학에 깊은 소양이 없는 사람도 무난히 받아들일 법한 것들을 잘 골라냈다. 왕건의 정치적 계산에 입각한 혼맥(婚脈) 형성, 천추태후의 야망과 몰락, 강감찬과 귀주대첩, 서경 천도를 둘러싸고 일어난 잡음과 묘청의 난, 기황후의 파란만장한 일생, 왕조 최후의 개혁군주 공민왕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은 승려 신돈의 개혁에의 도전과 실패,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애틋한 로맨스, 최영 장군과 이성계의 전우애와 악연 등. 보다시피 한국인이라면 중고교시절을 거치며 대부분 학습하게 되는 500년 고려사 중, 여러 의미에서 특기할 만한 장면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둘째로는, 이것들을 이야기로 풀어가는 방식 역시 부담스럽지 않게 친절하다. 도처에 삽입된 그림과 사진이 본문의 흐름을 잘 보조하고 있으며, 장대한 민족사의 일부를 학문적이고 근엄한 필치로 다루어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해방된 전문가의 글쓰기란 얼마나 재미있고 화려한 것인지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4.
오래 전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 이문열 작가와의 인터뷰가 올라와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는데, 서평을 쓰는 동안 무슨 연상작용을 거쳤는지 불현듯 떠올라 옮겨둔다.
"...이와 같이 이 책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경험들을 많이 읽는데. 그리고 경험이 나중에 정보나 혹은 어떤 지식의 원천으로 활용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전에는 지금 시절 이전에는 그 나름대로 오히려 뭐랄까? 속독 혹은 난독을 기초로 하는 기억 저장법 같은 것 그 나름의 어떤 머릿속의 사서 원리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책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중에서 처음부터 정독을 해서 아주 거의 참 암기하다시피 알아야 될 것이 있고 어떤 것들은 양도 많을 뿐 아니라 개념도 광범위해가지고. 어차피 그걸 정보화해서 짧게 해서 머리에 넣을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럴 때는 이제 몇 단락의 큰 개념화를 하고 그 개념화에 대해서 대강의 기억을 해둡니다. 했다가 이걸 정밀하게 내가 확실히 인용하거나 활용해야 될 때가 오면 그때 가서 그 부분을 떼어내서 정독을 하고 내 것을 만드는. 그전에는 그냥 '아, 그런 종류의 지식은 어디에 있다.'라는 것만 기억해 두었다가 대강 이제 전체를 큰 책을 막 난독을 하고 그래서 큰 개념 혹은 큰 지식의 소재만 기억을 했다가 필요할 때 다시 정독을 해서 활용해 쓰는 방법이 있었는데. 지금 이제 인터넷 시대는 그런 게 별로 필요 없어진 시대라서…"
지난 세기에 전성기를 구가한 분이긴 하지만, 지식을 관리하는 기본적인 솜씨로서 지금도 참고할 가치는 충분하다. 앞서 말한 요즘의 고민, 본작을 읽는 내내 더욱 깊어진 그 번뇌를 돌파해나가는 데 힌트가 되리라 싶다.
5.
대학 시절, 철학과의 모 교수님에게 차림새가 특이하고 여기저기서 강연 및 방송활동에 열심이던 모 괴짜 교수에 대해 물었다가 '그런 건 인간도 아니다'라는 요지의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글쎄, 주류 학파에 속한 아늑한 강단철학자보다는 여기저기서 다소간 욕을 들어먹더라도 자기 힘으로 어떻게든 세상에 유의미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주려 시도하는 사람이 낫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드는 요즘이다.
물론 특정 분야를 깊이 있게 공부한 사람에게는 한방에 나가떨어져버릴 위험한 발언인 것은 안다. 다만 세상을 바꾸는 것은 언제나 이론가들이 아니라 과감한 행동파, 실천가, 혁명가들이 아니었던가?
마르크스의 유명한 낙서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의 마지막 두 문장이 떠오른다. 이 또한 옮겨두며 졸문을 마친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여러가지로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혁'시키는 일이다."
* 이 서평은 프런트페이지(@frontpage_books)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귀한 책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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