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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탄생 -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이 전하는 ‘안다는 것’의 세계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신동숙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8월
평점 :
사이먼 윈체스터의 <지식의 탄생>을 읽고.
1. 좋은 책을 고르는 작업의 지난함
많은 책을 읽어나갈수록, 진정한 앎의 기쁨과 정신적 고양을 선사하는 책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임을 절절히 느낀다. 어떤 책을 읽고 실망하게 된다면 그 원인은 저자의 역량 미달인 경우가 절대 다수이다. 책을 만들기 위해 베어낸 나무와 가공된 종이에게 미안할 정도로 수준이 처참한 책들, 혹은 요란한 앞뒷표지와 띠지의 광고로 독자를 현혹해 놓고 정작 본문의 내용은 누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원론적인 소리를 장황하게 늘어놓다가 흐지부지 끝나는 책들이 부지기수다.
게다가 삶은 짧고, 생전에 읽을 수 있는 텍스트의 양은 물리적으로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독자의 입장에서 실제 독서의 과정 못지않게 신중히 임해야 할 것은 읽을 가치가 있는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을 잘 가려내는 작업이다. 그런 이유에서 대부분의 독서가들이 결국은 세월의 엄격한 검증을 이미 마친 인문고전의 세계로 수렴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이상, 주변의 환경으로부터 철저히 분리된 채 언제나 플라톤, 괴테, 당시삼백수 따위만을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나 각종 기술의 발전과 그에 수반되는 지식의 축적이 그 이전의 모든 시대를 초월할 정도로 폭발적인 속도를 내기 시작한 지난 세기 중후반 이후로는 더더욱 그러하다.
이 지점에서, 조금 전 말했던 문제에 다시 봉착한다. 최근의 세계를 다루는 책들은 당연히 최근에 나온 것들 뿐인데, 그것들은 세월의 검증을 거치지 않아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아쉽지만 명확한 답은 없다. 해당하는 책을 이미 읽은 사람들의 리뷰를 참고하거나, 서점에서 짧은 시간 내에 책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술을 연마하는 것 이외에도, 약간은 행운이 따라주어야 한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 저널리스트로서의 오랜 생활로 다져진 저자 사이먼 윈체스터의 지식, 그리고 본작의 집필을 위해 그가 기울인 노고의 너비와 깊이는 나의 상시적인 불만을 단박에 잠재우고도 남았다. 그리고 그 세목의 요약을 서평의 주된 부분으로서 대체하기로 한다.
2. 보기 드문 현대판 고전
국역된 제목과 달리, 이 책은 지식다운 지식의 탄생과 꾸준한 성장, 그리고 그것이 겪어온 몇 차례의 혁명적 성장과 가까운 미래까지도 내다보고 있다.
본문이 국판 사이즈(140*210mm)로도 무려 56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기에, 내용의 흐름을 되짚고 제대로 소화하려면 반드시 챕터 별로 요약해볼 필요가 있다.
3. 챕터 별 내용 요약
1장 : 지식에 대한 지적 존재 본연의 갈망, 활자의 발명과 그로부터 탄생한 최초의 고대 학교들. 종교의 방해와 그것을 극복한 JTB(Justified True Beliefes)의 승리. 중국과 일본이 서구문명을 받아들여 스스로를 근대화시킨 과정(조선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음에, 우리의 잘난 국수자들은 깊은 수치심을 느껴야만 한다)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롭고도 어려운 교육, 각종 시험의 필요성과 소개.
2장 : 도서관이라는 기관 자체의 역사,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지식 저장 매체의 역사 - 죽간/책/인쇄술/백과사전의 개념 및 유명한 디드로의 백과전서와 영국의 브리태니커, 그리고 하이퍼텍스트, 인터넷, 위키피디아의 탄생까지.
3장 : 종이와 파피루스의 역사 - 오래된 파피루스에 남은 유클리드의 기록, 후한대 채륜의 종이의 발명, 실크로드를 타고 전파된 제지술, 근세 서양의 필경사 시대를 거쳐, 구텐베르크식 활판인쇄술의 등장과 본격적인 지식의 민주화, 구텐베르크 성경의 탄생과 그 의의 - 인쇄소의 엄청난 확산과 그로부터 드러난 뜻밖의 효과 : 대중문학의 부흥, 그리고 종교개혁! 뉴스와 신문의 탄생. 다양한 수준의 신문들과, 그 정점에 있는 <타임스>, 전신, 전보 기술 등 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지구촌' 개념의 등장. 사진의 막강한 위력과, 같은 해 베트남 전쟁의 현장을 담은 사진이 전 세계에 불러일으킨 여파(베트남에서의 미군 철수). 라디오와 비디오 기술의 대두로 인한 소위 공영방송국의 탄생.
4장 : 전설적인 19세기의 기자 러셀, 역사에 숱하게 남은 언론을 이용한 여론조작 시도의 사례. 중국의 천안문사태, 영국의 피의 일요일 등 비극적 사건들에 대한 정확한 언급. 프로파간다의 시대 : 나치의 선동가 윌리엄 조이스, 포클랜드 전쟁, 나아가 버네이스와 북미의 아침식단 형성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조카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선전선동 방식 및 그것이 여성 흡연부터 이라크전에 이르기까지의 누린 전성시대.
5장 : '생각이 필요없는 시대'라는 주제에 도달하기 위한 기나긴 빌드업 : 항해술, 하버사인 공식 등의 복잡한 계산과 그것을 단숨에 무의미하게 만들 완전히 새로운 과학, gps의 등장. 그 사이에 소개되는 최초의 컴퓨터의 발전사. 도르래, 펌프 등 노동력 절감 장치의 등장 소개. 그로부터 자연스레 이어지는 '정신 노동 절감 장치'의 개발사. 전자계산기. 워드프로세서. GPS. 마침내는 구글! 이 검색 엔진의 가공할 기능.
'지식의 습득이 일반적으로 아주 쉬워져서, 결국에는 지식을 알거나 보유할 필요가 전혀 없게 된다면, 사회에는 어떤 영향이 작용할까?'라는 저자의 본질적인 의문 제시. 인터넷 의존도가 커지다보니 불과 몇십년전까지만해도 당연하던 능력을 상실해가는 인류. 과연 이는 어떠한 국면으로 인류를 이끌어갈지에 대한 물음. 챗gpt로 대표되는 AI의 양면성 및 그것의 잠재력에 대한 인류의 두려움.
6장 : 앞장으로부터 이어지는 '우리 두뇌의 사고력은 더 이상 할 일을 잃어버리게 되지는 않을까?'하는 의문. 더이상 올라운더는 없어지고, 협소한 분야의 전문가만이 인정받게 된 요즈음에 대한 고찰. / 그리고 이와는 상이한 유형의 지성으로써 활동했던 19/20세기의 유형의 천재들, 즉 인류 보편에 관심을 갖고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주된 활동을 펼친 몇몇에 대한 소개 : 중국의 심괄, 영국의 제임스 빌, 프랭크 램지와 버트런드 러셀, 인도의 하리나스 데, 미국의 파인만 등 세계의 천재 및 박식가들에 대한 소개.
그리고 이어지는 궁극적인 질문 : 지혜란 대관절 정확히 무엇인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길목들마다 지혜가 발현된 사례 및 그렇지 못한 사례들. 원자폭탄의 역사, 미 건국의 아버지들 및 그들이 행한 고찰 그 자체에 대한 깊은 고찰. 근대 이후 무시되어왔던 고대의 지혜들에 대한 언급. 그 예시로 들어지는 폴리네시아의 뱃사람 마우 피아일루그. 이어지는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적 가르침.
* 개인적으로 6장 최후반부의 논의는 직전까지 저자가 보여온 지적 역량과 달리, 너무나 이상주의적인 관점에 치우쳤다는 생각이 들어 썩 탐탁지 않았다.
* 이 서평은 인플루엔셜북스 출판사(@influential_book)에서 제공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귀한 책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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