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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세계사 2 - 전쟁과 혁명의 시대 선명한 세계사 2
댄 존스.마리나 아마랄 지음, 김지혜 옮김 / 윌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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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세기의 절반


이번에는 1910년부터 1959년까지를 다뤘다. 양차대전과 대공황, 파시즘, 한국전쟁, 핵무기 경쟁 등 인류사상 유례없는 전쟁과 비참의 색채가 짙었던 시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권 신장, 남극 탐험, 에베레스트 등반, 대서양 횡단비행, 재즈의 전성기 등 인류의 도전정신과 문명의 정수가 도처에서 결실을 거둔 때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토록 혼란스럽고 이중적인 시대에 대해 제대로 된 역사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한낱 이학사/문학사에 불과한 나의 빈약한 요약이란 실로 무용하다. 그보다는 이미 세상에 여럿 나와 있는 압도적인 전문가들의 책을 보시는 편이 당연히 훨씬 나으리라. 그러니 나로서는 이런 식의 어쭙잖은 설명은 멈추고, 대신 '책을 평하는 행위'라는 서평의 본분에만 충실하기로 하자.


2. 어떤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 좋을까


이 책을 놓고 두 가지 상이한 방식의 독서가 가능하다. 첫째는 일정 수준 이상의 인문학적 소양을 이미 갖춘 독자를 위한 것이다. 둘째는 그러지 못했거나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 가벼운 흥미 위주의 독서를 원하는 독자를 위한 것이다.


(1) 문사철에 숙련된 독자라면 


이 책으로 역사 지식의 제대로 된 기본기를 쌓기는 어렵다. 그러려면 두껍고 빽빽한 정통의 역사서를 읽어야 한다. 시종 사진 한 장에 원고지 너댓장 분량의 얕은 스토리텔링이 따라붙는 구조로 일관하는 만큼 이 책에서 어떤 종합적인 역사관이나 통찰을 얻기는 어렵다. 요컨대 파편화되고 얕은 서술은 이 책의 분명한 약점이다.


그러나, 통상 받아들여지는 서구 중심의 역사(스토리텔링을 담당한 댄 존스가 영국인인 까닭이다)에 대한 내공을 이미 갖춘 독자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주요한 사건들의 실제 광경을 사진으로 재확인해가며 기존의 지식을 보충하고 교정해나가는 방식으로 이 책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2) 가벼운 흥미 위주의 독서를 원한다면 


처음부터 깊은 통찰보다는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도록을 감상하는 기분으로 접근하는, 이를테면 단편적이고 수준 낮은 독서도 가능하다. 여기서 '수준이 낮다'는 표현은 결코 그 어떤 비하의 뜻도 품은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둔다. 모든 사람이 역사학자가 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독서 행위에서 안식, 위안,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얻기 원하는 비전문가의 영역에 속하는 절대 다수의 독서 인구에게도 이 책은 가치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3. 역사는 인류의 오답노트다


나는 수학과외를 진행할 때, 3등급 전후의 벽에 도달하여 고전하는 학생들을 위해 오답노트의 작성을 주문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들에게 요구하는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문제를 잘라 붙여넣는다.

(2) 관련 개념 혹은 키워드를 정리한다. 

(3) 학생 본인의 불완전하고 틀린 풀이를 그대로 옮긴다. 

(4) (이 경우에는 강사인 내가 제공하는) 모범적인 풀이를 재구성하여 이 또한 옮긴다. 

(5)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단계는, (3)과 (4)의 두 풀이 각각을 비교분석하는 일이다. 학생들로 하여금 '아 나는 여기서 막혔는데, 이 아저씨는 이렇게 해서 돌파했구나. 앞으로는 나도 이렇게 해야겠네'라는 생각을 하도록 이끌고, 같은 유형이 나왔을 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는 것이 목표다. 


그렇다. 오답노트의 목적은 명백하다.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


역사도 굳이 표현하자면 - 유튜버 침착맨이 그의 유명한 '침착맨 삼국지' 영상을 시작하며 말한 바대로 -  인류의 오답노트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역사에는 당연히 '강사의 모범적인 풀이' 따위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사건을 분석하고 반추해두었다가, 그를 기반으로 미래에 닥쳐올 위기상황에 대응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지 않은가.


그러니 전문 연구자가 아닌 우리 모두에게도 역사 지식의 꾸준한 습득과 정리가 필요하다. 이 책에 드러난 인류의 비극적 기록, 그 중에서도 여러 이데올로기와 광기어린 선동에 속절없이 희생되어 숨져 널브러진 전쟁터의 시체들을 총천연색으로 복원한 슬픈 사진들을 보며 특히 자주 든 생각이다.


* 이 책은 @woojoos_story 모집, @willbooks_pub 출판사 도서 지원으로 우주클럽_세계사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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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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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빈지노, 댓글창, 그리고 앙드레아


유튜브 댓글창을 들여다보면 얼굴도, 나이도, 지나온 삶도 모르는 이들의 감정과 생각을 무수히 접하게 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음악의 경우다. 그저 '잘 부른 노래'에는 칭찬이 달리지만, 진정한 명곡의 반열에 든 작품에는 자기도 모르게 토해낸 사람들 각자의 사연이 주렁주렁 매달린다. 예술이란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네 삶에 점점 더 풍부한 의미의 그물망, 다정한 위안의 그림자를 드리우나보다.


그중 빈지노의 「멀어」라는 곡의 댓글창에서 인상 깊었던, 이름모를 시인들이 남긴 구절을 두 가지 소개한다.

"가사에 그립단 말 한 마디 없는데 그리움이 절절 넘치네."

"'니가 보고싶다'라는 말을 양쪽으로 잡고 4분 7초만큼 늘이면 이 가사가 나올 듯."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비올라를 사랑했단 말 한 번 없는데 그리움이 줄줄 흐르네."

"'주인공 미모의 영욕과 못이룬 사랑'이라는 말 양끝을 잡고 623쪽 분량만큼 늘이면 이 책이 나올 듯."


사흘간 작가의 솜씨에 취해 일상의 행불행마저 무시로 잊고 지냈다. 이제 뒤로 한발 물러나, 이 장편에 담긴 우주를 요모조모 살펴볼 때다.


2. 줄거리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열둘의 나이로 홀어머니와도 떨어져 타향살이를 하게 된 주인공 미모 비탈리아니. 처음, 세상은 비천한 신분에 왜소증까지 타고난 그를 두고 더러운 난쟁이라며 철저히 멸시한다. 그러나 미모에게는 조각가로서의 천재가 있었다. 압도적인 재능에 힘입은 그는 갖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20대가 채 지나기 전에 부와 명예를 거머쥔 예술가로 우뚝 선다.


그 과정에서 미모는 피에트라달바를 근거지로 하는 유력한 귀족 오르시니 가(家)와 깊은 연을 맺게 된다. 오르시니 후작 부처는 세 아들을 두었다. 사고로 요절한 장남을 제외하면, 잔학하고 과격한 차남 스테파노와, 성직자로서의 경력을 착실히 쌓아올려 교황 비오12세의 비서 자리에까지 오른 차분하고 교활한 삼남 프란체스코가 가문을 이끌어가는 두 축이다. 


그러나 미모의 삶에 둘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영향을 준 것은 후작 부처의 막내딸, 총명함과 이상주의의 화신인 비올라다. 묘지에서 처음 만난 이후로 늘 비범한 사건과 영감으로 가득했던 그들 동갑내기의 우정은 마흔을 즈음하여 마을을 덮친 대지진으로 비올라가 숨을 거두기까지 평생에 걸쳐 이어진다. 


이후 미모는 창작을 멈추고 인적 드문 수도원에 40년 가량 칩거하다가 1986년, 8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작품은 죽음이 임박한 미모가 자신의 온 생애를 회고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3. 몰입의 요소


(1) 성장형 영웅의 모델


작품의 초중반은 무지하고 비천하던 미모가 비올라가 준 온갖 책을 통해 교화되고, 스스로의 재능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미모처럼 난쟁이도 천재도 아닌 나지만, 내세울 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모든 것을 스스로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헤쳐왔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낀 순간이 잦았다. 마음 밑바닥에 단단한 자부심의 뿌리를 박고 그를 정체성의 핵심으로 간직하며 분투하는 모든 이에게, 미모가 보여주는 입지전적 신화는 언제나 피를 끓게 하는 매력적인 서사다.


(2) 사랑, 그 헤어날 길 없는 무한의 춤사위


작중 미모와 비올라의 관계는 비유컨대 쌍성 혹은 행성-혜성 관계의 중간 쯤 어딘가에 위치하지 않을까 싶다. 쌍성이라 말한 것은 서로의 중력에 사로잡혀 서로의 주위를 맹렬히 맴돌면서도 끝내 완전히 합일할 수는 없던 그들의 운명 때문이고, 행성-혜성이라 표현한 것은 서로 멀어지거나 가까워지는 시기가 각각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서로를 완전히 끊어버릴 수는 없던 그들 인연의 속성 때문이다. 


너무 조금 산 것도, 너무 오래 산 것도 아닌 지금, 돌이켜보면 나 자신도 적잖은 사랑의 희락과 이별의 비참을 맛보았다. 누구와 얼마나 가까웠고 어떻게 멀어졌는가를 일일이 언급할 바는 아니다. 다만 미모와 비올라가 연출하는 여러 사랑의 국면마다 실제의 연애에서 겪고 망각의 서랍 속 갈무리해둔 여러 감정이 의식 위로 예고없이 떠올라 숨이 턱턱 막혀오는 순간이 여러 차례 있었다.


생각컨대 언제 누구와 겪은 어떤 사랑에서도 형언키 어려운 기쁨과 영영 낫지 않을 흉터를 충분히 얻으며 살아왔다. 다시 돌아간대도 결과는 늘 같을 것이다. 그러니 지나갔음에 슬퍼하지 말고, 일어났음에 감사하며 다만 묵묵히 다음의 인연을 기다릴 뿐.


(3) 여러 장르가 혼합된 작품의 성격


이 작품의 성격을 한두 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주인공이 설움과 시련을 딛고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 초반에는 전형적인 성장소설 내지는 영웅신화의 성격을 띤다. 비올라와의 첫 만남 이후부터 중반까지는 연애소설의 면모가 다분하다. 무솔리니의 집권과 몰락, 로마 가톨릭의 대응 등이 대두되는 중반부 이후부터는 역사극 내지 팩션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힌 인간군상이 서로에게 온갖 술수와 협잡을 벌이며 긴장감이 고조되는 후반부는 영화 『대부』에서와 같은 정치극, 범죄물의 성격도 짙어진다.


하나의 작품에 이토록 많은 성격을 부여하려는 시도가 자칫 지리멸렬하고 난삽한 결과물을 빚기 쉬운 위험을 내포함은 자명하다. 그러나 주인공 미모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잘 짜여진 내러티브에, 적절한 에피소드를 도처에 삽입하여 읽는 즐거움과 긴장감을 끌어올린 것은 과연 공쿠르상에 부합하는 필력이라고 할 밖에.


4. 단편의 바다를 항해하다 장편이라는 섬을 만나서


온 신경과 관심사가 단편소설의 독해, 이론, 창작에 쏠려 있는 올해인 만큼, 오랜만에 읽은 장편을 만나 산뜻한 환기가 되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장편 역시 도전할 영역. 때문에 아무래도 단편과 장편의 전형적인 특징을 놓고 서사전략 면에서 거칠게나마 몇 가지 비교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1) 서사와 세계관의 규모


분량의 제약으로 인해 한두 개의 플롯만 가지고 단일한 효과를 거두는 데 집중해야 하는 단편에 비해, 장편의 호흡은 훨씬 길고 장중하다. 모든 이야기를 한 번의 질주로 단숨에 풀어낼 필요가 없는 까닭에,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보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집필 및 독해가 허용되는 장르임을 새삼 깨닫는다.


(2) 독자의 의문을 해소해가는 속도의 완급 조절


문학은 어디까지나 줄글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는 만큼, 단편과 장편 모두에서 독자가 작품을 덮어버리지 않도록 흡인력을 유지하는 것은 작가의 중대과제다. 다만 단편에서는 궁금중을 유발하는 소재의 제시와 개연성의 완성 모두 빠르게 이루어져야 하는 반면, 장편에서는 훨씬 다채로운 시도가 가능하다. 작품의 핵심이 되는 의문을 도입부에 배치한 후 계속 증폭만 시키다가 최후에 몰아서 해소할 수도 있고, 작품을 전개하는 틈틈이 해소하여 최종장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독자 스스로 점차 온전한 상을 완성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3) 삽화의 다양성과 그 기능


극단적으로 말하면, 단편에 쓰인 문장은 단 하나도 낭비없이 오직 주제의식의 표현을 위해서만 기능해야 한다. 위에도 말했듯 분량의 제약으로 인해 빠르게 승부를 봐야 하는 까닭이다. 때문에 끼워넣을 수 있는 삽화의 성격이나 분량 역시 극도로 제한된다. 그러나 장편에서는 한결 느슨한 일관성 아래 다양한 삽화를 시도함으로써 그것들끼리 시너지를 발휘하게 만드는 것이 보다 적절한 기술로 생각된다. 읽으면 읽을수록 풍부해지는 의미의 창발이 핵심. 따라서 독자 입장에서도 장편을 읽을 때는 모든 문장이 그저 차례로 나열되어 있다는 직선적인 이해는 금물이다. 중요한 에피소드는 잘 표시해 두었다가, 시간이 허락하는 한 앞뒤를 충분히 오가며 반복하여 읽어 작가가 의도한 총체를 가능한 구석구석 깊이 파악하는 것이 바람직한 독법이 아닐는지.


 - 이 서평은 인친 @luv_minyun_ 님을 통해 열린책들(@openbooks21) 출판사로부터 지원 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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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세계사 1 - 경이와 혼돈의 시대 선명한 세계사 1
댄 존스.마리나 아마랄 지음, 김지혜 옮김 / 윌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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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존스, 마리아 아마랄, <선명한 세계사 1> (윌북, 2025)

1. 상궤를 벗어난 역사서를 읽는 즐거움

역사서의 역사는 인류 문명의 역사 못잖게 길다. 그중에서도 역사학자들이 저술한 소위 정통파의 역사서는 사료의 풍부함과 취재의 충실함, 그리고 텍스트를 짜임새 있게 조직해내는 사가 본인의 필력으로 승부를 보아온 것이 오랜 관행이다. 동양에서는 공자나 사마천, 서양에서는 헤로도토스나 투키디데스가 그 시조다. 

그러나 예외의 경우가 종종 있다.

첫째로 언급할 것은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문필가들이 특정 시대, 특정 국가, 혹은 세계사 전반을 겨누어 저술한 역사서의 경우이다. 최초의 SF 작가로 유명한 허버트 조지 웰즈의 <Outline of History>, 미술사학자로 유명한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History of the World>, 삼총사 이야기로 유명한 알렉상드르 뒤마의 <Gaule et France> 등이 좋은 예다. 이 경우 저자의 인지도와 전문 작가로서의 필력, 혹은 비전공자 특유의 넓고 얕은 입담이 역사 이해의 독특하고 신선한 가이드가 되어준다.

둘째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본작과 마찬가지로 풍부한 시각자료가 동반되는 역사서의 경우이다.

이 책의 집필을 위하여 브라질 출신의 역사 채색 전문가이자 디지털 컬러리스트인 마리나 아마랄과, 영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겸 넷플릭스 역사 관련 컨텐츠 크리에이터인 댄 존스가 협업했다. 역사적으로 유의미하거나 유명한 사진들을 아마랄이 총천연색으로 복원하고, 각 사진에 적합한 스토리텔링을 댄 존스가 덧붙였다.

당대 문화상의 추적과 치밀한 고증을 통한 컬러 복원, 그리고 각 사진에 따르는 이야기의 압축적인 진술은 따로 떼놓고 보아도 쉽지 않은 작업인데, 이러한 방식의 협업이 이상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이 책의 한 특장이다.

이러한 부류의 역사책이 흔치 않은 까닭에, 이 책의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은 역시 사진에 있다고 하겠다. 책장을 넘길때마다 왼쪽의 스토리텔링과 오른쪽의 컬러사진을 함께 살피지 않는다면 저자들의 의도에 부합하는 온전한 독서가 되기 어렵다.

2. 책이 다루고 있는 시대

본작은 총 두 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번에 리뷰하는 것은 첫 번째 권이다. 다루는 시점의 시작은 당연히 카메라의 발명 시기인 19세기 중반을 전후한다. 첫 번째 권에서는 1850년대부터 1910년까지를 다루었다.

3. 상상만 하던 광경을 실제로 보게 될 때

흔히들 독서의 주된 효용이자 두뇌에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으로 '능동적인 정보의 생산 및 흡수'를 꼽는다. 상상력과 사고력이 많이 동원되어야 하는 문학을 읽을 때 특히 그렇다.

그러나 원작 도서를 읽으며 어렴풋이 상상만 하던 광경이 영화화된 경우에도 열광하는 것이 인간이다. <해리포터와 불의 잔>에서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전한 해리가 빗자루에 의지하여 용과 맞서는 장면이나, <반지의 제왕 - 두 개의 탑>에서 영화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연출을 선보인 헬름 협곡 전투 등이 좋은 예다. 영상이란 물론 상상 가능한 수많은 방식 중 단 하나만을 구현한 것이기는 하나, 인간은 역시나 시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영상 매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니, 어쩌면 역사서의 경우 더더욱 시각자료의 중요성이 큼을 이 책을 읽으며 깨달을 수 있었다. 해석하는 시각의 차이는 있을 것이나, 개개의 역사적 사건을 주도한 인물이나 배경이 되는 장소 등은 문학에서와 달리 반드시 실재했던 것으로 특정되기 때문이다. 전설과 역사가 아스라이 뒤섞인 고대사도 아니고,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속하는 19~20세기를 다루었으니 더더욱 그러할 수 밖에.

또한, 그간 다른 역사서를 읽으며 텍스트와 상상력을 이용해서만 머릿속에 그렸던 영상과 인물들의 실제 모습을 보는 것은 일종의 '기억을 보정해주는' 효과로도 작용했다. 순간을 영원히 잡아내는 사진의 힘이란 과연 대단하다.

* 이 책은 @woojoos_story 모집, @willbooks_pub 출판사 도서 지원으로 우주클럽_세계사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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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글쓰기의 발견 - 헤밍웨이, 글쓰기의 '고통과 기쁨'을 고백하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박정례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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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글쓰기의 발견」을 읽고


창작을 지망하거나 문학 전반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라면, 일가를 이룬 작가가 생전에 글쓰기에 대해 개진해놓은 이런저런 의견을 엿보는 것만큼 즐겁고 짜릿한 일도 흔치 않으리라. 


이 책은 바로 그런 경험을 선사한다. 대다수의 인류에게 이견 없이 위대한 소설가로 받아들여지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글쓰기에 대한 소견, 문학관, 세계관 등이 드러나는 여러 토막글의 모음집이다. 헤밍웨이 본인이 집필한 에세이, 단편 소설, 그리고 다른 작가(특히 스콧 피츠제럴드) 및 친지들과 주고받은 편지가 주된 출처다.


헤밍웨이의 소설 작풍이라면 극도의 간결체, 말하기의 최소화, 보여주기의 극대화, 전통적인 남성성의 표현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스타일이 비단 문학 작품에만 국한되지 않고, 에세이나 편지 따위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작가로서 지켜야 할 몇몇 원칙에 대한 그의 믿음은 지극하다. 그러므로 자신의 소신에 어긋나는 행위나 그 결과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대목도 본문 곳곳에서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과연 상남자 헤밍웨이다운 모습이다.


다만 본문 전체가 짧게는 한 문장, 길어봐야 한두 페이지 분량의 발췌된 파편들로만 이루어져 있는 까닭에 독법상 주의를 요한다. 주제 별로 최소한의 분류만 있고, 나머지는 모두 나열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쭉 정독해나가는 방법은 영 상성이 좋지 않다. 대신, 글을 쓰다가 막힐 때마다 조언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파트를 찾아 그의 육성에서 힌트와 위안을 얻는 것이 이 책을 활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다.


이 책은 스마트비즈니스 출판사(@smartbusiness_book)에서 제공 받아, @woojoos_story님과 함께 #우주클럽_소설방 에서 미션글쓰기를 통해 함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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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 헤드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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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 도모유키의 「엘리펀트 헤드」를 읽고

1. 「데스노트」의 추억과 특수설정 미스터리

고2에서 고3으로 넘어가는 겨울방학, 오바 츠구미가 쓰고 오바타 타케시가 그린 「데스노트」라는 작품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런저런 명대사 및 주요 설정 등이 어느 정도 밈화(meme化)되는 등 인터넷 문화의 일부로 자리잡기에 이르며 고전의 반열에 접어든 작품이지만,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흡인력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통상의 만화책에 비해 텍스트의 양이 매우 많았는데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12권 전부를 읽느라 수험 생활 중의 일주일을 그대로 헌납해버리고 말 정도였으니까요. 분명 '자율'학습인데 어째서인지 강제로 행해지는 학교에서의 자습 시간에는 내내 감독 선생님의 눈을 피해 몰래 읽다가, 하숙집에 돌아와서는 밤늦게까지 페이지를 넘기고 또 넘기고, 한 권씩 마친 다음에는 내용을 노트에 정리하는 등 아주 열정적인 독서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끌렸느냐?

당시 저의 독서 체험 데이터베이스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라 해봐야 헤르만 헤세의 장편 몇 권, 버트란드 러셀의 에세이 한두 권 및 서양철학사 정도가 전부였고, 이들은 모두 인문학의 오래되고 심오한 문제들을 중심에 놓고 그 주위를 맴돌며 답을 탐색하는, 말하자면 대단히 교훈적이고 고전적인 작품으로 분류될 만한 것들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다시 읽어도 훌륭한 책들입니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이런 인문고전을 읽는 나는 정말 멋져 보일 거야'라는 풋내기의 오만함과 허영심이 발휘된 탓에,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짐짓 아닌 체하며 남몰래 골치를 썩였던 것 같아요.

그런 저에게 「데스노트」는 세게 몇 방 먹이는 작품이었습니다.

첫째, 좋게 말하면 진지하고 나쁘게 말하면 고리타분한 교훈 따위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철저한 흥미 위주의 전개. 주변 환경과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고뇌하고 분투하며 성장해가는 헤세의 인물들과 달리, 「데스노트」의 주인공 라이토는 작중 가장 지능이 높은 동시에 가장 사악한 인물입니다. 그의 지성과 야망은 작품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이미 완성되어 있으며, 나머지 서사는 그가 자신의 계획대로 세상을 바꾸어가는 데에 방해가 되는 인물을 하나씩 제거해가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아니 이래도 돼? 이게 맞는 거야? 근데 그건 그렇고, 이거 왜 이렇게 재밌어?'라는 생각을 읽는 내내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둘째, 명백히 비현실적인 소재를 설정의 핵심에 심어놓고, 그 다음부터는 뻔뻔하리만큼 현실적인 개연성에 입각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품의 구조. '본명을 알고 있는 인간의 이름을 적는 행위만으로도 그를 살해할 수 있는 데스노트라는 물건이 존재한다. 대개 사신(死神)들의 소유물이지만, 인간계로 넘어와도 동일하게 기능한다.'라는 것이 이 작품만의 특수한 설정입니다. 분명 말도 안 되는 얘기지요, 그런 게 실제로 있을 리도 없고요. 그러나 작중에서 데스노트는 엄연히 실재하는 물건이며, 모든 전개는 그것의 존재와 기능을 유추해내고 나아가 그를 이용하려는 인물들 간의 이해관계 상 충돌을 그리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가미한 장르를 팩션(faction)이라고 부르듯, 현실적 개연성에 비현실적 설정을 조화시킨 추리(소설)의 한 분파를 '특수설정 미스터리'라고 부른다는 것은 훗날 알게 되었습니다.

셋째, 작품의 윤리의식을 놓고 쏟아진 온갖 비판 및 비난에 대응하는 원작자의 태도. 작품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자 그 내용을 질타하는 사람들이 (주로 종교계에서) 많았다고 합니다. 얼핏 생각하면 대단히 심오하고 인문학적인 여러 문제에 대한 토론의 장을 열어젖히기에 충분한 내용이었지만, 원작자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Just for fun. '오락용으로 기획하고 만든 작품이니, 그렇게만 봐달라.' 애초에 복잡한 논쟁에 말려들 소지를 차단해버리는 쿨하기 그지없는 태도랄까요.

장르소설, 특히 추리소설에 대한 저의 독서이력이 풍부하지는 않지만, 본작 「엘리펀트 헤드」에서도 이상의 특성이 잘 드러납니다.


2. 순문학과의 비교 : 구성의 밀도와 주제의식

스포일링을 하지 않는 선에서 밝힐 수 있는 본작만의 '특수설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다중우주론에 의해, 세계는 매 순간 존재가능한 것들 중 하나의 시간선을 갖는 여러 평행세계로 분화한다. 둘째, 단일한 개인의 의식이 그러한 시간선의 분화에 따라 갈라지고, 그럼으로써 여러 세계에 동시에 존재하며, 갈라진 의식들끼리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마'라는 약물이 존재한다.

「데스노트」에 '데스노트'와 '사신'이 존재한다면, 「엘리펀트 헤드」에는 '평행우주'와 '시스마'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자에서와 마찬가지로, 후자의 나머지 전개는 철저히 현실적인 개연성에 입각하여 이루어집니다.

이쯤에서 소위 순문학이라 불리는 문학의 장르와 이러한 특수설정 미스터리 장르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겠습니다. 구성의 밀도와 주제의식, 두 가지 측면에서요.

(1) 혀를 내두를 만한 구성의 치밀함

창작을 지망하여 내실을 다지고자 영·프·독·러·미·중·일의 주요 단편을 요즘 주로 읽고 있는 저로서는, 고전적 단편 이론에 충실하며 분량은 사륙판 사이즈 용지에 40~50쪽 정도를 차지하는 작품들에 꽤 익숙해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런 작품들 중 절반 이상은 결말부에 다양한 반전을 배치함으로써 독자에게 읽는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지요.

예를 들어 어제는 빅토르 위고의 단편 <가난한 사람들>을 읽었습니다. 줄거리와 반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착한 아내는 고아가 된 이웃의 아기들을 발견하고 남편 몰래 집으로 데려온다. 그녀는 남편이 화를 낼까봐 불안하다. 그러나 남편은 그 사연을 듣고는, 아내가 이미 아기들을 데려왔음은 모른 채 '여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하나님 뜻 아니겠소. 아이들을 우리가 기릅시다.'라고 말한다. 아내는 그 말에 감동하여, 이불을 젖혀 이미 따뜻하게 눕혀 놓은 두 아이를 보여주며 작품은 끝난다.

참으로 소박하고 따뜻한 반전이지요, 그런데 본작 「엘리펀트 헤드」에서는... 이 정도의 반전이 적어도 30번은 나옵니다! 별 뜻 없겠거니 하고 넘어갔던 앞의 문장도 뒤의 어느 대목에선가는 등장인물이 추리의 토대로 삼을 근거가 되어버리는 일을 몇 번 당하고 나면, 치밀하다는 말만으로는 감히 다 담기 어려운 작가의 정신나간 계산과 배치 솜씨에 푹 빠져들게 되더군요.

책 뒷표지의 '모든 예측은 무의미합니다'라는 문구가 정말이었습니다. 범인은 누구지? 목적은 뭐지? 지금은 어떤 시간선의 기사야마(주인공의 이름)인 거지? 라는 물음이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올라, 사륙판 사이즈로 거의 500여 쪽에 달하는 두툼한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딱 하루 만에 모두 읽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스토리텔링에 관한 한, 인류의 창의력은 무한한 것일까요?

물론 저는 이세돌이 알파고를 한 판 이겼다고 해도 그건 이세돌 개인의 승리지, 인류 전체의 승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작가 시라이 도모유키가 이런 걸작을 써냈다고 해서 모든 인류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겠지요.

각설, 이제 겨우 30대 중반에 접어들었음에도 탄탄한 구성력과 고유한 작품세계를 확보한 작가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걸작을 내놓을지 기대가 큽니다.

(2) 주제의식

'그래서 결국 하고 싶은 말이 뭔데?'라는 친구의 질문에, '이 멍청아, 그게 한 마디로 정리되면 굳이 수백 쪽 짜리 소설을 썼겠냐?'라고 답했다는 어느 소설가의 일화가 떠오릅니다. 그만큼 어떤 문학작품, 특히 장편소설에 대해 그것의 집필 의도란 작가 본인도 딱 잘라 말하기 어렵고, 독자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기 쉽겠지요.

다만 이 점만은 분명히 말해두고 싶습니다. 대개의 순문학이 미학적인 성취, 도덕적인 교훈, 삶의 불가해함에 대한 고민의 자세, 세계의 부조리와 폭력에 대한 고발 등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는 것에 반해, 본작 「엘리펀트 헤드」에서는 그러한 주제에 대해서는 어떠한 고민의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치열한 두뇌 게임, 퍼즐풀이의 연속일 뿐, 어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가치에 대해서 작가는 결코 논하지 않아요. 그것이 전부입니다.

3. 윤리성과 창작의 자유의 문제

주로 살인, 그것도 엽기적이고 잔혹한 살인이 긴장을 끌어올리는 장치로 자주 쓰이다 보니 호불호가 꽤나 갈릴 만한 작품이라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창작의 자유란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인 저로서는, 극호(極好)의 입장에 한 표를 던집니다 :)



* 이 서평은 인친 @woojoos_story 님이 모집하신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책은 출판사 '내 친구의 서재(@mytomobook)'에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저에게 새로운 세계를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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