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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70년 이야기
강인숙 지음 / 열림원 / 2024년 5월
평점 :
강인숙의 『만남 -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70년 이야기』를 읽고
1. 천재 이어령의 발자취
2022년 2월, 이어령 선생이 향년 8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우리 문단을 비옥하게 일구는 데 선생께서 공헌하신 바 실로 크다. 서울대 국문과 재학중이던 스무 살 무렵, 당시엔 주목하는 이 별로 없던 작가 이상을 독특한 관점에서 조명해낸 '이상론'을 문리대학보에 실으며 첫걸음을 내딛었다. 이듬해 1956년에는 동시대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던 김동리, 조향, 이무영 등을 각종 우상에 빗대어 매섭게 비판하는 평론 '우상의 파괴'를 한국일보 지면을 통해 발표하며 겨우 스물두엇의 나이로 화려하게 데뷔한다.
이지적이면서도 삶을 향한 불타는 정열로 가득한 장부 이어령. 그 뒤로도 평생에 걸쳐 아무나 못할 일들에 도전하고 또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창간호부터 교양에 목마른 독자들의 힘찬 성원에 힘입어 중쇄에 중쇄를 거듭한 문예지 <문학사상>의 창간과 운영. 이 땅의 숱한 문학인들을 발굴하고, 키워내며, 격려하여 자부심을 심어준 이상문학상의 제정. 일본 관부 차원의 지원을 등에 업고 7년 간의 조사와 몰두 끝에 세상에 내놓은 명저 <축소지향의 일본인>. 노태우 정부 시절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남긴 유무형의 문화적 유산, 그 중에서도 백미로 손꼽히는 88올림픽의 개폐회식.
하늘이 내린 재능, 망설임 없는 헌신, 큰 부름과 큰 쓰임. 내 눈에는 연의의 제갈량을 방불케 하는 불세출의 호걸로 다가온다. 사나이 세상에 났으면 큰 뜻을 품어야지, 뜻을 품었으면 성큼성큼 내딛어 원한 바 이루어야지. 하늘은 어찌하여 이어령을 내고 육십여 년 후에 다시 이동녘을 냈단 말인가? 짐작컨대 사사하여 배우고 또 본받으라 하신 뜻이 아닐는지.
타고난 재주도, 정열의 온도도, 성취의 이력도 모두 나를 압도하는 인물들을 만날 때면 늘 가슴 속을 어지럽히는 몇 가지 정념 - 흠모하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 든든한 마음, 열등감. 이번에도 어김없었다.
2. 아내가 바라본 이어령
이어령 선생에 대한 얘기를 먼저 실컷 했지만, 이 책은 사실 - 부제 그대로 - 선생과 대학 동기로 만나 70년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아온 평론가 강인숙 씨의 남편을 그리는 회고록이다. 반세기가 넘도록 사랑해온 이, 더군다나 먼저 떠난 이를 두고 사무치는 심정은 감히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것.
그러나 다할 수 없는 줄을 뻔히 알면서도 다해보려 발버둥치는 것이 곧 문학이고, 영원히 직관할 수 없는 세계와 물자체의 둘레를 하염없이 돌며 나빌레라 온갖 춤사위를 벌이는 것이 곧 시이다.
평생을 손잡고 걸었던, 뛰어난 남편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은근히 묻어나는 91세 노인의 글. 하지만 지나간 모든 것에 대한 돌이킴은 언제나 그리움으로 수렴하는 걸까? 때로는 베인 데서 흐르는 피처럼, 때로는 꽃핀 데서 내뿜는 향기처럼, 곳곳에 배인 님 향한 절절한 부름에 내 마음도 울긋불긋, 노을 내려앉는 바다처럼 물들곤 했다.
3. 사랑과 사람과 삶
많다기엔 어쭙잖고 적다기엔 겸연쩍은 삼십 줄의 나이, 그런 내게도 사랑하는 이 있어 미래를 이따금 함께 그려본다. 강인숙 씨에게 이어령 선생이 다시 없을 동반자였듯, 내게도 그녀는 어느덧 불가결한 존재로서 확고하다.
다만 예기치 못했던 점은 추상적 담론 못지않게 일상의 대화를 나눌 때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생활인의 숙명이련가?
물론 이조차도 조금 여유를 갖고 길게 본다면, 우리를 감싸안는 운명의 피륙, 낭만의 비단결 언저리께 반짝이며 나부끼는 추억의 선물이리라. 영혼의 서랍 한 켠에 고이 모셔두게 될, 그리하여 언젠가 다시 꺼내보며 그립고 또 그립다 눈물겨울 그런 선물.
생을 감당할 수 있을 동안 꿋꿋이 살아가자. 질주할 수 있을 때 내달리자. 잘되고 못되고는 중요하지 않다. 행복에 있어서도 국궁진췌 사이후이. 몸 굽혀 온 힘 다해 사랑하고, 죽은 뒤에야 그만두자.
* 이 서평은 열림원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귀한 책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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