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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ㅣ 에디터스 컬렉션 16
조지 오웰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12월
평점 :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고.
1.
영미권의 저명한 작가 오웰의 주저 중 하나다. 다른 저작인 <동물농장>과 <1984>가 우화, 풍자, 디스토피아 등 소설 일반에 기대되는 픽션으로서의 문학적 특징을 띠고 있다면, 이 작품은 완전한 르포다. 양차대전 사이 일어났던 스페인 내전(1936~1939)에 오웰 본인이 의용군으로 자원입대하여 참전(1936년 말~1938년 초)했던 경험을 토대로 집필했다.
2.
보고문학의 충실한 전범이지만, 작품 저변에 흐르는 정서는 강렬한 분노와 냉소다. 일견 모순적인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개전 초기의 전황은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파시즘 세력과 그를 저지하기 위해 유럽 도처에서 모여든 이들로 구성된 의용군 및 혁명정부의 대결이었으나, 갈수록 후자 측에 소련을 위시한 크고작은 정치세력이 개입하며 내홍을 겪게 된다.
특유의 선전선동 전술로 주도권을 장악한 주류 공산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이념적 잣대 및 이해타산에 따라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 몇몇 세력에 대한 집요하고 무자비한 탄압을 벌였다. 평등과 혁명이라는 고고한 이상을 좇아 발기했던 이들 중 상당수가 불법적으로 체포되고, 부조리한 졸속 재판 이후 처형되었다.
3.
오웰은 반(反)파시즘 세력 중에서도 소수파였던 POUM(스페인 마르크스주의 통일노동자당) 소속의 의용군으로 전쟁을 치렀는데, 전술한 공산주의자들의 탄압에 가장 크게 희생된 세력 중 하나가 바로 POUM이었다. 그들의 - 이렇게 부르는 것이 가능하다면 - '공식적'인 지위는 불과 반 년 남짓한 기간 사이에 구국의 세력에서 독일/이탈리아의 사주를 받고 잠입한 더러운 트로츠키주의자 겸 파시스트 첩자로 추락하였고, 스페인 국내외에 스스로의 이념적 정체성과 전쟁 중의 행보를 알릴 언론의 교두보를 전혀 확보하지 못한 POUM측의 지도부와 평당원/의용군 상당수가 빠르고 허무하게 숙청당하고 말았다.
당연히 오웰의 신변에도 무시무시한 위협이 가해졌으나, 그와 그의 아내는 때마침 오웰이 전투 중 입은 총상으로 후방의 병원에 옮겨져 치료받고 있던 덕에 아슬아슬하게 탈출할 수 있었다. 며칠만 늦었어도 오웰 역시 다른 POUM 동지들처럼 참혹한 운명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올 일도 없었으리라는 데까지 생각이 닿아 기분이 묘하다.
4.
작품은 총 1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12장은 오웰 본인이 스페인에서 몸소 겪은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상세한 진술이다.
처음 의용군 막사에 합류한 오웰의 눈에 들어온 스페인 의용군의 모습은 신념에 불타 형형한 안광을 내뿜는 혁명투사와는 거리가 멀다. 자기들이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기나 한지 궁금할 정도로 시간 개념에 둔하고, 무기가 부족하며, 기초 제식조차 엉망으로 허술하다. 파시스트 진영 적군과의 교전보다도 노후한 총기 및 조작상의 미숙함으로 인한 오발사고로 인해 입는 피해가 크다. 그럼에도 그들은 늘상 온화하고, 이방인인 오웰에 대한 친밀감의 표시로 담배 한 갑을 통째로 안겨 주는 등 -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 '인간적인 품위'를 간직하고 있는, 독특한 매력의 소유자들이다.
중반부를 지나며 양군이 수백 명 단위에 이르는 사상자를 내는 전투의 살풍경에 대한 묘사는 물론 출중하지만, 그조차도 제대로 훈련받은 정규군 간의 대회전에 비하면 우스꽝스럽고 어설프기 짝이 없는 소동에 가까움이 여실히 드러난다. 입대 후 115일 만에 첫 휴가를 나와 겪는 일을 다룬 7장에 이르기까지, 오웰이 스페인 혁명군을 대하는 시선에서는 따스한 애정과 유머가 느껴진다.
8장 이후로는 앞서 썼듯 스페인 전역을 둘러싼 정치공학적 상황이 복잡하게 전개되며 반파시즘 세력의 내분이 점차 부각된다.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여러 정파 간의 총격전이 벌어지고, 혁명의 열기는 사그러들어간다. 여러 가지 요인이 얽혀 있겠지만, 앞서 전선에서 함께한 전우들이 어지러운 정치적 싸움에 속절없이 희생되고, 그들의 순수한 우국충정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바라보아야만 했던 이의 분노와 무력감이 본작의 주된 집필동기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실제 역사에서도, 스페인 내전은 결국 프랑코 군의 승리로 끝나고 만다.)
5.
최후반부의 두 장은 작가 본인도 인정했듯, 1~12장과는 퍽 이질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에 최종 개정판에서는 부록I/부록II로 이름 붙여져 실렸다. 안전한 고국으로 돌아온 오웰이 뒤로 한 발 물러나 자신의 체험을 다시 한 번 넓은 시야로 조망하며, 1~12장의 상황이 벌어지게 된 원인에 대해 고찰 후 덧붙인 것으로 여겨진다.
부록I은 스페인 내전 전후의 국제 정세, 공산 세력 개입의 구체적인 타임라인 및 일련의 사건들이 갖는 정치적 의미에 대해 논하고 있다. 부록II에서는 당시 공산권의 대표 언론인 <Daily Worker>가 자신들이 숙청 대상으로 낙점한 세력에 대해 퍼부은 온갖 협잡과 거짓말, 그리고 별다른 조사없이 그 논조에 동조한 영국, 프랑스 등지 일부 언론의 보도가 갖는 모순점을 지적하며 조목조목 반박하는 데에 집중한다.
6.
정확히 같은 장르는 아니지만 이 작품과 유사하게 특별한 울림을 주는 책들이 있다. <타임머신>, <우주전쟁> 등으로 허버트 조지 웰스의 <세계사 산책>이 그렇고, <삼총사>로 유명한 알렉상드르 뒤마의 <프랑스사 산책>이 그러하다.
본작과의 공통점은 전문 역사가나 기자가 아니라 문호로서 훗날 평가받는 이들이 자기 전공 외의 분야에 대해 상세히 논한 책들이라는 것인데, 압도적인 필력과 통찰의 깊이 덕분인지 오히려 학자들이 저술한 두꺼운 역사책, 언론인이 작성한 일련의 특집 기사보다 더 받아들이기 흥미진진하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 이 서평은 문예출판사에서 제공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귀한 책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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