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펀트 헤드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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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 도모유키의 「엘리펀트 헤드」를 읽고

1. 「데스노트」의 추억과 특수설정 미스터리

고2에서 고3으로 넘어가는 겨울방학, 오바 츠구미가 쓰고 오바타 타케시가 그린 「데스노트」라는 작품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런저런 명대사 및 주요 설정 등이 어느 정도 밈화(meme化)되는 등 인터넷 문화의 일부로 자리잡기에 이르며 고전의 반열에 접어든 작품이지만,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흡인력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통상의 만화책에 비해 텍스트의 양이 매우 많았는데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12권 전부를 읽느라 수험 생활 중의 일주일을 그대로 헌납해버리고 말 정도였으니까요. 분명 '자율'학습인데 어째서인지 강제로 행해지는 학교에서의 자습 시간에는 내내 감독 선생님의 눈을 피해 몰래 읽다가, 하숙집에 돌아와서는 밤늦게까지 페이지를 넘기고 또 넘기고, 한 권씩 마친 다음에는 내용을 노트에 정리하는 등 아주 열정적인 독서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끌렸느냐?

당시 저의 독서 체험 데이터베이스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라 해봐야 헤르만 헤세의 장편 몇 권, 버트란드 러셀의 에세이 한두 권 및 서양철학사 정도가 전부였고, 이들은 모두 인문학의 오래되고 심오한 문제들을 중심에 놓고 그 주위를 맴돌며 답을 탐색하는, 말하자면 대단히 교훈적이고 고전적인 작품으로 분류될 만한 것들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다시 읽어도 훌륭한 책들입니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이런 인문고전을 읽는 나는 정말 멋져 보일 거야'라는 풋내기의 오만함과 허영심이 발휘된 탓에,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짐짓 아닌 체하며 남몰래 골치를 썩였던 것 같아요.

그런 저에게 「데스노트」는 세게 몇 방 먹이는 작품이었습니다.

첫째, 좋게 말하면 진지하고 나쁘게 말하면 고리타분한 교훈 따위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철저한 흥미 위주의 전개. 주변 환경과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고뇌하고 분투하며 성장해가는 헤세의 인물들과 달리, 「데스노트」의 주인공 라이토는 작중 가장 지능이 높은 동시에 가장 사악한 인물입니다. 그의 지성과 야망은 작품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이미 완성되어 있으며, 나머지 서사는 그가 자신의 계획대로 세상을 바꾸어가는 데에 방해가 되는 인물을 하나씩 제거해가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아니 이래도 돼? 이게 맞는 거야? 근데 그건 그렇고, 이거 왜 이렇게 재밌어?'라는 생각을 읽는 내내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둘째, 명백히 비현실적인 소재를 설정의 핵심에 심어놓고, 그 다음부터는 뻔뻔하리만큼 현실적인 개연성에 입각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품의 구조. '본명을 알고 있는 인간의 이름을 적는 행위만으로도 그를 살해할 수 있는 데스노트라는 물건이 존재한다. 대개 사신(死神)들의 소유물이지만, 인간계로 넘어와도 동일하게 기능한다.'라는 것이 이 작품만의 특수한 설정입니다. 분명 말도 안 되는 얘기지요, 그런 게 실제로 있을 리도 없고요. 그러나 작중에서 데스노트는 엄연히 실재하는 물건이며, 모든 전개는 그것의 존재와 기능을 유추해내고 나아가 그를 이용하려는 인물들 간의 이해관계 상 충돌을 그리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가미한 장르를 팩션(faction)이라고 부르듯, 현실적 개연성에 비현실적 설정을 조화시킨 추리(소설)의 한 분파를 '특수설정 미스터리'라고 부른다는 것은 훗날 알게 되었습니다.

셋째, 작품의 윤리의식을 놓고 쏟아진 온갖 비판 및 비난에 대응하는 원작자의 태도. 작품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자 그 내용을 질타하는 사람들이 (주로 종교계에서) 많았다고 합니다. 얼핏 생각하면 대단히 심오하고 인문학적인 여러 문제에 대한 토론의 장을 열어젖히기에 충분한 내용이었지만, 원작자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Just for fun. '오락용으로 기획하고 만든 작품이니, 그렇게만 봐달라.' 애초에 복잡한 논쟁에 말려들 소지를 차단해버리는 쿨하기 그지없는 태도랄까요.

장르소설, 특히 추리소설에 대한 저의 독서이력이 풍부하지는 않지만, 본작 「엘리펀트 헤드」에서도 이상의 특성이 잘 드러납니다.


2. 순문학과의 비교 : 구성의 밀도와 주제의식

스포일링을 하지 않는 선에서 밝힐 수 있는 본작만의 '특수설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다중우주론에 의해, 세계는 매 순간 존재가능한 것들 중 하나의 시간선을 갖는 여러 평행세계로 분화한다. 둘째, 단일한 개인의 의식이 그러한 시간선의 분화에 따라 갈라지고, 그럼으로써 여러 세계에 동시에 존재하며, 갈라진 의식들끼리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마'라는 약물이 존재한다.

「데스노트」에 '데스노트'와 '사신'이 존재한다면, 「엘리펀트 헤드」에는 '평행우주'와 '시스마'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자에서와 마찬가지로, 후자의 나머지 전개는 철저히 현실적인 개연성에 입각하여 이루어집니다.

이쯤에서 소위 순문학이라 불리는 문학의 장르와 이러한 특수설정 미스터리 장르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겠습니다. 구성의 밀도와 주제의식, 두 가지 측면에서요.

(1) 혀를 내두를 만한 구성의 치밀함

창작을 지망하여 내실을 다지고자 영·프·독·러·미·중·일의 주요 단편을 요즘 주로 읽고 있는 저로서는, 고전적 단편 이론에 충실하며 분량은 사륙판 사이즈 용지에 40~50쪽 정도를 차지하는 작품들에 꽤 익숙해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런 작품들 중 절반 이상은 결말부에 다양한 반전을 배치함으로써 독자에게 읽는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지요.

예를 들어 어제는 빅토르 위고의 단편 <가난한 사람들>을 읽었습니다. 줄거리와 반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착한 아내는 고아가 된 이웃의 아기들을 발견하고 남편 몰래 집으로 데려온다. 그녀는 남편이 화를 낼까봐 불안하다. 그러나 남편은 그 사연을 듣고는, 아내가 이미 아기들을 데려왔음은 모른 채 '여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하나님 뜻 아니겠소. 아이들을 우리가 기릅시다.'라고 말한다. 아내는 그 말에 감동하여, 이불을 젖혀 이미 따뜻하게 눕혀 놓은 두 아이를 보여주며 작품은 끝난다.

참으로 소박하고 따뜻한 반전이지요, 그런데 본작 「엘리펀트 헤드」에서는... 이 정도의 반전이 적어도 30번은 나옵니다! 별 뜻 없겠거니 하고 넘어갔던 앞의 문장도 뒤의 어느 대목에선가는 등장인물이 추리의 토대로 삼을 근거가 되어버리는 일을 몇 번 당하고 나면, 치밀하다는 말만으로는 감히 다 담기 어려운 작가의 정신나간 계산과 배치 솜씨에 푹 빠져들게 되더군요.

책 뒷표지의 '모든 예측은 무의미합니다'라는 문구가 정말이었습니다. 범인은 누구지? 목적은 뭐지? 지금은 어떤 시간선의 기사야마(주인공의 이름)인 거지? 라는 물음이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올라, 사륙판 사이즈로 거의 500여 쪽에 달하는 두툼한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딱 하루 만에 모두 읽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스토리텔링에 관한 한, 인류의 창의력은 무한한 것일까요?

물론 저는 이세돌이 알파고를 한 판 이겼다고 해도 그건 이세돌 개인의 승리지, 인류 전체의 승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작가 시라이 도모유키가 이런 걸작을 써냈다고 해서 모든 인류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겠지요.

각설, 이제 겨우 30대 중반에 접어들었음에도 탄탄한 구성력과 고유한 작품세계를 확보한 작가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걸작을 내놓을지 기대가 큽니다.

(2) 주제의식

'그래서 결국 하고 싶은 말이 뭔데?'라는 친구의 질문에, '이 멍청아, 그게 한 마디로 정리되면 굳이 수백 쪽 짜리 소설을 썼겠냐?'라고 답했다는 어느 소설가의 일화가 떠오릅니다. 그만큼 어떤 문학작품, 특히 장편소설에 대해 그것의 집필 의도란 작가 본인도 딱 잘라 말하기 어렵고, 독자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기 쉽겠지요.

다만 이 점만은 분명히 말해두고 싶습니다. 대개의 순문학이 미학적인 성취, 도덕적인 교훈, 삶의 불가해함에 대한 고민의 자세, 세계의 부조리와 폭력에 대한 고발 등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는 것에 반해, 본작 「엘리펀트 헤드」에서는 그러한 주제에 대해서는 어떠한 고민의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치열한 두뇌 게임, 퍼즐풀이의 연속일 뿐, 어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가치에 대해서 작가는 결코 논하지 않아요. 그것이 전부입니다.

3. 윤리성과 창작의 자유의 문제

주로 살인, 그것도 엽기적이고 잔혹한 살인이 긴장을 끌어올리는 장치로 자주 쓰이다 보니 호불호가 꽤나 갈릴 만한 작품이라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창작의 자유란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인 저로서는, 극호(極好)의 입장에 한 표를 던집니다 :)



* 이 서평은 인친 @woojoos_story 님이 모집하신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책은 출판사 '내 친구의 서재(@mytomobook)'에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저에게 새로운 세계를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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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투라 CULTURA 2024.11 - Vol.125, 한강 작가
작가 편집부 지음 / 작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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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문화전문지 Cultura11월호를 읽고.

 

1. 뜻깊은 사건에 걸맞는 이번 호()의 구성

 

지난 10월 우리 문학에 큰 경사가 있었습니다. 쿨투라에서도 기민한 대응으로 그 흐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달의 메인 테마는 바로 자랑스러운 한강 작가입니다. 작가 님의 작품세계 및 활동 이력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작가 님의 수상이 우리 문단과 문화계의 외연 확장에 끼칠 영향을 전망하는 여러 꼭지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2. 창작과 평론의 상생 관계

 

'다들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하시오, 여기 천재가 나타났으니.'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의 파리, 신진 예술가로서 등장한 프레데릭 쇼팽을 세상에 소개하며 로베르트 슈만이 보낸 아낌없는 찬사입니다. 당시 주류의 음악가들은 물론이고 쇼팽 본인조차도 이러한 평가에 조금은 당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결국 훗날 위대한 피아노의 시인으로 음악사에 불멸의 이름을 남긴 쇼팽의 행보를 보면 당시 슈만의 통찰이 정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호를 읽으면서 저는 쇼팽과 슈만의 이야기를 자주 떠올렸습니다. 작가가 생산하는 텍스트란 내적으로는 이미 완결된 채 출판되어 나오지요. 하지만 그것이 역사와 얽히고, 사회적인 가치를 부여 받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과 호흡하며 여러 의미의 그물망을 형성해가는 과정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인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유기적인 전개를 원활히 하는 데에 평론가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전문적인 지식과 날카롭게 벼린 언어로 많은 이가 텍스트에 대한 깊은 이해의 길에 들도록 이끌고, 나아가 텍스트를 둘러싼 수준 높은 담론의 장을 형성하는 일에 있어 그들의 역할은 실로 절대적입니다.

 

이러한 비평의 본분에 충실한 모범적인 글들을 여럿 읽을 수 있어 그 자체로 즐거웠고, 작가 님이 구축해온 세계에 대한 이해도 역시 높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3. 지속 가능한 이변을 위하여

 

먼저 한 가지 묻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 혹시 작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이름은 알고 계신가요? 주요 일간지의 신춘문예로 작년에 등단한 소설가나, 국내 유수 문학상의 바로 작년 수상자의 이름은 알고 계신가요?

 

우리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대사건이 고작해야 몇 달 출판업계의 매출을 높이고 사그러드는 단발성의 이벤트에 그치지 않으려면, 우리의 독자들 또한 우리 문학에 대한 애정과 꾸준한 관심을 토대로 분발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최근 들어 이미 문화예술의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어가고 있음을 입증해온 우리나라입니다. 불과 100여 년 전 식민지배를 당했고 80여 년 전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었으나, 놀라운 저력과 근성으로 근대화와 민주화를 빠르게 달성해낸 우리 민족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이룩한 문화의 깊이와 가치 또한 널리 인정 받는 단계에 이른 만큼,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그에 걸맞는 품격을 온 세상에 보여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귀한 책을 선물해주신 쿨투라(@cultura_magazine)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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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연 - 플라톤의 대화편 마리 교양 3
플라톤 지음, 오유석 옮김 / 마리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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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향연>을 읽고.

1. 대학시절의 회상

대학을 졸업한 후 시간이 지날수록 뼈아프게 후회되는 점은 주전공인 물리학, 복수전공한 철학 모두 제때 체계 있게 공부해두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번에 읽은 <향연> 역시도, 제대로 공부했다면 21살 이전에는 꼼꼼하게 읽고 기억의 서랍 속에 잘 갈무리해두었어야 마땅한 대표적인 대화편이다. 그러나 제대로 읽은 적이 없는 것인지, 읽고서 깡그리 잊어버린 것인지 사실상 졸업하고도 한참이 지난 이제서야 새로이 읽는 기분이었다. 내용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고 너무 재미있는 만큼, '이런 기쁨을 대학 때 겪었어야 하는데!'하는 이쉬움이 컸다.

술, 잡다한 쾌락, 우울감, 어쭙잖은 낭만 따위에 젖어 불성실하게 흘려보내고야 만 세월, 다시 못 올 그 세월이 많이 그립다.

2. 플라톤을 마주하는 심정

플라톤이 서양 사상, 기독교 교리, 나아가 백인들이 주도하는 오늘날의 주류 세계관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에 행사해온 영향력은 실로 막대하다. 역사의 어둠, 망각의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죽음이라면 그는 이천사백 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죽은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오래 살아 숨쉴 것이다.

그러므로 심지어는 -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 역시 하나의 선택이듯 - 플라톤의 사상을 긍정함은 물론이고, 일부를 부정하거나 반박하는 것조차도 플라톤의 영향 하에 놓여 있음의 방증이다. 체계 없는 나의 지식으로 젠체하며 논하기에 그는 너무나 거대하다. 따라서 이번에는 이 위대한 학자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상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기로 한다.

3. 대화편에 대하여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활동하던 기원전 4~5세기 무렵의 아테네에서는 아직 종교, 문학, 철학 등이 각자의 구획을 갖추어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채로 서로가 서로 속에 혼재되어 있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플라톤 저술 특유의 정체성이 형성되는데, 다름아닌 희곡의 형식으로 모든 주요한 작품들이 완성되어 현전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진지한 철학적 저술은 대부분 철저한 에세이의 형식을 따르게 된 데다가, 플라톤과 같은 수준의 문학적 재능과 철학적 깊이를 겸비한 저술가가 주류 학문의 무대에 등장하는 것 또한 극히 드문 일일 테니, 사실상 대화편 같은 스타일의 철학서는 플라톤의 것이 유일무이하게 남을 것이다.

플라톤은 당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정치인, 군인, 작가 등을 그의 대화편에 등장시키는데,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그들 사이에서 스승 소크라테스를 점차 부각시켜 앞선 논의들을 정리하고, 격파하고, 최종적인 결론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게 하는 패턴을 사용한다. 후기 대화편으로 갈수록, 생전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이후 플라톤 고유의 사상을 구분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점 또한 하나의 특징이다.

4. <향연>의 구성과 주제의식

분류상 중기의 작품군에 속하는 본작 <향연>에서도 이러한 틀이 적용되었다. 여러 교양 있는 인물들이 대화하며 조금씩 헛점을 흘리고, 소크라테스가 마지막의 연사로 나서 떡밥을 회수하고 각각을 논파하며 자신의 결론을 내세워 모두의 인정을 받으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고대로부터 서사문학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기법인 액자식 구성이 차용되었고, 진지한 대화 사이사이에 아리스토파네스의 딸꾹질 및 술취한 알키비아데스의 난입 등의 에피소드가 삽입되었으나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비본질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스승 소크라테스를 지덕체를 모두 갖춘 완성형의 사색가로 묘사하기 즐겨하는 플라톤이 디오티마라는 가상의 무녀(巫女)를 창조(한 것으로 강하게 추정됨)하여 등장시키면서까지 젊은 시절 소크라테스의 미숙함을 강조한 점은 특기할 만하다. 그조차도 스승의 대가다운 인생행로를 찬양하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고 본다면 조금 우습지만, 진실은 플라톤 본인만이 알 것이다.

5. 역자와 출판사의 친절함

역어들이 평이함은 물론이고,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부연이 필요하다 싶은 부분에는 어김없이 상세한 주석이 달려 있다. 또한, 모든 주석을 미주(尾註)가 아니라 각주(脚註)로 처리하여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해놓은 데서도 독자를 위한 출판사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 이 서평은 마리북스(@themaribooks)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귀한 책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리북스 #오유석 #플라톤 #출판사 #서평 #철학 #대화편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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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탄생 -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이 전하는 ‘안다는 것’의 세계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신동숙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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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윈체스터의 <지식의 탄생>을 읽고.


1. 좋은 책을 고르는 작업의 지난함


많은 책을 읽어나갈수록, 진정한 앎의 기쁨과 정신적 고양을 선사하는 책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임을 절절히 느낀다. 어떤 책을 읽고 실망하게 된다면 그 원인은 저자의 역량 미달인 경우가 절대 다수이다. 책을 만들기 위해 베어낸 나무와 가공된 종이에게 미안할 정도로 수준이 처참한 책들, 혹은 요란한 앞뒷표지와 띠지의 광고로 독자를 현혹해 놓고 정작 본문의 내용은 누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원론적인 소리를 장황하게 늘어놓다가 흐지부지 끝나는 책들이 부지기수다. 


게다가 삶은 짧고, 생전에 읽을 수 있는 텍스트의 양은 물리적으로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독자의 입장에서 실제 독서의 과정 못지않게 신중히 임해야 할 것은 읽을 가치가 있는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을 잘 가려내는 작업이다. 그런 이유에서 대부분의 독서가들이 결국은 세월의 엄격한 검증을 이미 마친 인문고전의 세계로 수렴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이상, 주변의 환경으로부터 철저히 분리된 채 언제나 플라톤, 괴테, 당시삼백수 따위만을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나 각종 기술의 발전과 그에 수반되는 지식의 축적이 그 이전의 모든 시대를 초월할 정도로 폭발적인 속도를 내기 시작한 지난 세기 중후반 이후로는 더더욱 그러하다.


이 지점에서, 조금 전 말했던 문제에 다시 봉착한다. 최근의 세계를 다루는 책들은 당연히 최근에 나온 것들 뿐인데, 그것들은 세월의 검증을 거치지 않아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아쉽지만 명확한 답은 없다. 해당하는 책을 이미 읽은 사람들의 리뷰를 참고하거나, 서점에서 짧은 시간 내에 책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술을 연마하는 것 이외에도, 약간은 행운이 따라주어야 한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 저널리스트로서의 오랜 생활로 다져진 저자 사이먼 윈체스터의 지식, 그리고 본작의 집필을 위해 그가 기울인 노고의 너비와 깊이는 나의 상시적인 불만을 단박에 잠재우고도 남았다. 그리고 그 세목의 요약을 서평의 주된 부분으로서 대체하기로 한다.


2. 보기 드문 현대판 고전


국역된 제목과 달리, 이 책은 지식다운 지식의 탄생과 꾸준한 성장, 그리고 그것이 겪어온 몇 차례의 혁명적 성장과 가까운 미래까지도 내다보고 있다.


본문이 국판 사이즈(140*210mm)로도 무려 56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기에, 내용의 흐름을 되짚고 제대로 소화하려면 반드시 챕터 별로 요약해볼 필요가 있다. 


3. 챕터 별 내용 요약


1장 : 지식에 대한 지적 존재 본연의 갈망, 활자의 발명과 그로부터 탄생한 최초의 고대 학교들. 종교의 방해와 그것을 극복한 JTB(Justified True Beliefes)의 승리. 중국과 일본이 서구문명을 받아들여 스스로를 근대화시킨 과정(조선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음에, 우리의 잘난 국수자들은 깊은 수치심을 느껴야만 한다)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롭고도 어려운 교육, 각종 시험의 필요성과 소개.


2장 : 도서관이라는 기관 자체의 역사,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지식 저장 매체의 역사 - 죽간/책/인쇄술/백과사전의 개념 및 유명한 디드로의 백과전서와 영국의 브리태니커, 그리고 하이퍼텍스트, 인터넷, 위키피디아의 탄생까지.


3장 : 종이와 파피루스의 역사 - 오래된 파피루스에 남은 유클리드의 기록, 후한대 채륜의 종이의 발명, 실크로드를 타고 전파된 제지술, 근세 서양의 필경사 시대를 거쳐, 구텐베르크식 활판인쇄술의 등장과 본격적인 지식의 민주화, 구텐베르크 성경의 탄생과 그 의의 - 인쇄소의 엄청난 확산과 그로부터 드러난 뜻밖의 효과 : 대중문학의 부흥, 그리고 종교개혁! 뉴스와 신문의 탄생. 다양한 수준의 신문들과, 그 정점에 있는 <타임스>, 전신, 전보 기술 등 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지구촌' 개념의 등장. 사진의 막강한 위력과, 같은 해 베트남 전쟁의 현장을 담은 사진이 전 세계에 불러일으킨 여파(베트남에서의 미군 철수). 라디오와 비디오 기술의 대두로 인한 소위 공영방송국의 탄생.


4장 : 전설적인 19세기의 기자 러셀, 역사에 숱하게 남은 언론을 이용한 여론조작 시도의 사례. 중국의 천안문사태, 영국의 피의 일요일 등 비극적 사건들에 대한 정확한 언급. 프로파간다의 시대 : 나치의 선동가 윌리엄 조이스, 포클랜드 전쟁, 나아가 버네이스와 북미의 아침식단 형성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조카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선전선동 방식 및 그것이 여성 흡연부터 이라크전에 이르기까지의 누린 전성시대.


5장 : '생각이 필요없는 시대'라는 주제에 도달하기 위한 기나긴 빌드업 : 항해술, 하버사인 공식 등의 복잡한 계산과 그것을 단숨에 무의미하게 만들 완전히 새로운 과학, gps의 등장. 그 사이에 소개되는 최초의 컴퓨터의 발전사. 도르래, 펌프 등 노동력 절감 장치의 등장 소개. 그로부터 자연스레 이어지는 '정신 노동 절감 장치'의 개발사. 전자계산기. 워드프로세서. GPS. 마침내는 구글! 이 검색 엔진의 가공할 기능.


'지식의 습득이 일반적으로 아주 쉬워져서, 결국에는 지식을 알거나 보유할 필요가 전혀 없게 된다면, 사회에는 어떤 영향이 작용할까?'라는 저자의 본질적인 의문 제시. 인터넷 의존도가 커지다보니 불과 몇십년전까지만해도 당연하던 능력을 상실해가는 인류. 과연 이는 어떠한 국면으로 인류를 이끌어갈지에 대한 물음. 챗gpt로 대표되는 AI의 양면성 및 그것의 잠재력에 대한 인류의 두려움.


6장 : 앞장으로부터 이어지는 '우리 두뇌의 사고력은 더 이상 할 일을 잃어버리게 되지는 않을까?'하는 의문. 더이상 올라운더는 없어지고, 협소한 분야의 전문가만이 인정받게 된 요즈음에 대한 고찰. / 그리고 이와는 상이한 유형의 지성으로써 활동했던 19/20세기의 유형의 천재들, 즉 인류 보편에 관심을 갖고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주된 활동을 펼친 몇몇에 대한 소개 : 중국의 심괄, 영국의 제임스 빌, 프랭크 램지와 버트런드 러셀, 인도의 하리나스 데, 미국의 파인만 등 세계의 천재 및 박식가들에 대한 소개. 


그리고 이어지는 궁극적인 질문 : 지혜란 대관절 정확히 무엇인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길목들마다 지혜가 발현된 사례 및 그렇지 못한 사례들. 원자폭탄의 역사, 미 건국의 아버지들 및 그들이 행한 고찰 그 자체에 대한 깊은 고찰. 근대 이후 무시되어왔던 고대의 지혜들에 대한 언급. 그 예시로 들어지는 폴리네시아의 뱃사람 마우 피아일루그. 이어지는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적 가르침.


* 개인적으로 6장 최후반부의 논의는 직전까지 저자가 보여온 지적 역량과 달리, 너무나 이상주의적인 관점에 치우쳤다는 생각이 들어 썩 탐탁지 않았다. 


* 이 서평은 인플루엔셜북스 출판사(@influential_book)에서 제공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귀한 책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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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체 : 세 자매 이야기
조카 알하르티 지음, 박산호 옮김 / 서랍의날씨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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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알하르티의 <천체-세 자매 이야기>를 읽고.


1. 읽기의 무게


장편 읽기는 특별한 사건이다. 작가가 걸머지고 살아온 영혼과 육체의 역사가 작품을 매개로 나의 세계와 충돌한다. 두 우주가 이리저리로 뒤섞이고, 여기저기서 공명하는가 하면 때로는 사정없이 파열음을 일으킨다.


지극한 공감과 위로의 순간 뿐 아니라 썩 유쾌하지 않은 기억들이 무의식의 해저에서 자각의 수면 위로 순식간에 끌어올려질 위험 역시 각오해야 한다. 미처 준비할 틈 없이 거칠게 소환된 체험의 조각들은 종종 수압 차이를 이기지 못하고 인간이 만든 배의 갑판 위에서 일그러져버린 심해어의 시체처럼 당혹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만만치 않은 모험이다. 눈으로 지면을 더듬고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는 내내 긴장의 연속이다. 어떤 질감과 색채의 세계가 눈앞에 드러날지, 어떤 무늬와 음향이 마음 속 공간으로 퍼져나갈지, 몸소 겪어보기 전까지는 도무지 예측불가다. 


장편을 읽을 때는 이 모든 불안정성을 직시하고 받아들일 용기가 요구된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진실되게 다룬 가치 있는 작품일수록, 독자로부터 더 많은 노력과 집중을 원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아랍 세계의 노련한 여성 작가, 조카 알하르티의 손을 떠나 극동의 내 품으로 날아든 이번의 작품처럼.


2. 구성과 주제의식


작품은 아라비아 반도 끝자락에 자리한 나라 오만, 그곳의 작은 마을 알 아와피(al-Awafi)를 무대로 하고 있다. 주된 시간적 배경은 지난 20세기 중후반. 상대적으로 낯선 문화권의 이야기를 다루었고, 3대 이상에 걸친 여러 가문의 인연이 얽히고설키는 과정을 그렸으며, 역사적 사실과 아득한 전설이 때로는 구분하기 어렵도록 혼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닮았다. 등장인물 군(群)의 방대한 규모와 복잡성을 구상하고 그를 포용하며 풀어나가는 방식에 있어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몇몇 대작을 방불케 한다.


표면적으로는 '아잔'과 '살리마'의 세 딸 '마야', '아스마', '칼라'의 결혼과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사를 진지하게 다룬 여느 장편이 그러하듯이, 독자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들을 포위한 채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오는 삶의 부조리와 가치의 파탄에 대한 문제다. 작품의 중심을 잡아주는 주된 서술자는 아잔의 첫째 사위, 즉 마야의 남편인 '압달라'인데, 압달라의 아버지 '거상 술레이만'의 삶부터가 온갖 악행과 비정함으로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 그는 대추야자 사업을 크게 벌여 부(富)를 일군 인물이라 알려져 있지만, 마을 사람들 모두가 술레이만이 거상이라 불리게 된 진정한 원천은 인신매매 및 노예무역에 있음을 알고 있다. 때로는 누나처럼, 때로는 엄마처럼 압달라를 돌봐주던 거구의 여인 '자리파' 역시도 술레이만이 먼 옛날 쌀 한 석에도 못 미치는 삯을 치르고 사온 노예 '앙카부타'의 맏딸이자 그의 정부(情婦)였다.


3. 압달라의 번뇌


냉혹하고 마초적인 아버지 술레이만과 대조적으로, 압달라는 작중 내내 자신을 둘러싼 트라우마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이 독백한다. 어릴 적 아버지의 소총을 훔쳐 까치를 사냥하려다 밧줄에 묶여 우물 속으로 던져진 일, 친모 '파티마'의 석연찮은 죽음 등으로부터 그의 영혼은 많은 상처를 입었다. 아버지의 임종을 마주하고, 장례를 치른 이후까지도 해소되지 않는 가슴 속의 의문, 응어리, 울분이 독자에게 생생히 전달된다.


압달라의 1인칭 서술을 중심으로, 계속하여 주목하는 인물을 바꿔가는 서술구조가 돋보인다. 압달라를 제외한 모든 인물의 이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통일되어 있다. 인물A의 묘사 → 압달라의 회상 → 인물B의 결혼식 → 압달라의 독백 → 인물C의 죽음 → 압달라의 자기분열... 이런 구조로 시종 일관한다. 중반부 이후로는 각 인물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간대까지 과거와 현재를 어지러이 오가며 널뛰는데, 일견 혼란스럽지만 적응만 한다면 외려 속도감 있는 몰입을 돕는다. 


난이도가 높은 이러한 작법을 통해 작가가 부각시키려던 것은 무엇일까? 추측컨대 첫째로는 선대가 지은 죄악의 업보 - 그것이 후세에 드리우는 어두운 그림자, 둘째로는 뚜렷한 기승전결로 단숨에 이해되는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후반부로 갈수록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모두 담으려던 탓인지 서술이 다소간 지리멸렬해지는 점은 아쉬우나, 그조차도 작가가 의도적으로 작품에 부여한 개성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만한 소지가 충분하다.


4. 여우난 곬족?


아랍권 작품 최초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수상(2019년)했는데, 압둘라의 심리 추적 못지않게 여러 조연들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아마도 큰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동네의 유쾌한 가난뱅이 '마닌', 고압적이면서도 어딘가 희극적인 데가 있는 압둘라의 '고모' 등에 대한 개성적인 서술이 특히 인상깊다.


자세한 내용을 모두 옮기기는 어려우나, 우리 민족의 것으로 치환하자면 아마도 백석의 명시<여우난 곬족>에 드러나는 혈육과 친지에 대한 애정어린 묘사와 가장 닮아있는 듯하다 :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 얼굴에 별 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모 고모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 /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모 고모의 딸 승녀 아들 승동이 / 육십 리라고 해서 파랗게 보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던 말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모 고모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동이 작은 홍동이...


5. 사족 몇 가지


① 문학은 한 집단의 문화적 총체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다. 문학은 작가의 모국어에 대한 은혜 갚기이다. 문학은 작가 스스로의 절박한 자기구원의 시도이다.


② 히잡/부르카의 강렬한 이미지로 대표되어 굳어진 이슬람 세계에 대한 편견 - 특히나 여성 인권에 대한 - 을 많이 깼다. 적어도 작중 인물들이 가정을 꾸리고 운영해가는 면에 있어서는 모계 사회에 가까운 모습이 자주 비쳤다. 그 어떤 천쪼가리로도, 자연스레 뻗어나오는 인간의 개성과 정열을 덮을 수는 없다.


③ 아스마의 결혼 준비 중, 온 동네 여인들이 부산스레 찾아와 수다를 떨며 '우리 땐 이랬는데'라던 장면을 읽으며 : 매 시대의 문화는 특수하나, 각자의 시대를 겪은 사람들의 회상은 보편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의 반복은 더더욱, 지극히 보편적이다.


* 이 서평은 서랍의날씨(@_fandombooks_)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귀한 책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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