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연 - 플라톤의 대화편 마리 교양 3
플라톤 지음, 오유석 옮김 / 마리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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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향연>을 읽고.

1. 대학시절의 회상

대학을 졸업한 후 시간이 지날수록 뼈아프게 후회되는 점은 주전공인 물리학, 복수전공한 철학 모두 제때 체계 있게 공부해두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번에 읽은 <향연> 역시도, 제대로 공부했다면 21살 이전에는 꼼꼼하게 읽고 기억의 서랍 속에 잘 갈무리해두었어야 마땅한 대표적인 대화편이다. 그러나 제대로 읽은 적이 없는 것인지, 읽고서 깡그리 잊어버린 것인지 사실상 졸업하고도 한참이 지난 이제서야 새로이 읽는 기분이었다. 내용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고 너무 재미있는 만큼, '이런 기쁨을 대학 때 겪었어야 하는데!'하는 이쉬움이 컸다.

술, 잡다한 쾌락, 우울감, 어쭙잖은 낭만 따위에 젖어 불성실하게 흘려보내고야 만 세월, 다시 못 올 그 세월이 많이 그립다.

2. 플라톤을 마주하는 심정

플라톤이 서양 사상, 기독교 교리, 나아가 백인들이 주도하는 오늘날의 주류 세계관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에 행사해온 영향력은 실로 막대하다. 역사의 어둠, 망각의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죽음이라면 그는 이천사백 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죽은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오래 살아 숨쉴 것이다.

그러므로 심지어는 -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 역시 하나의 선택이듯 - 플라톤의 사상을 긍정함은 물론이고, 일부를 부정하거나 반박하는 것조차도 플라톤의 영향 하에 놓여 있음의 방증이다. 체계 없는 나의 지식으로 젠체하며 논하기에 그는 너무나 거대하다. 따라서 이번에는 이 위대한 학자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상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기로 한다.

3. 대화편에 대하여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활동하던 기원전 4~5세기 무렵의 아테네에서는 아직 종교, 문학, 철학 등이 각자의 구획을 갖추어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채로 서로가 서로 속에 혼재되어 있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플라톤 저술 특유의 정체성이 형성되는데, 다름아닌 희곡의 형식으로 모든 주요한 작품들이 완성되어 현전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진지한 철학적 저술은 대부분 철저한 에세이의 형식을 따르게 된 데다가, 플라톤과 같은 수준의 문학적 재능과 철학적 깊이를 겸비한 저술가가 주류 학문의 무대에 등장하는 것 또한 극히 드문 일일 테니, 사실상 대화편 같은 스타일의 철학서는 플라톤의 것이 유일무이하게 남을 것이다.

플라톤은 당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정치인, 군인, 작가 등을 그의 대화편에 등장시키는데,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그들 사이에서 스승 소크라테스를 점차 부각시켜 앞선 논의들을 정리하고, 격파하고, 최종적인 결론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게 하는 패턴을 사용한다. 후기 대화편으로 갈수록, 생전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이후 플라톤 고유의 사상을 구분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점 또한 하나의 특징이다.

4. <향연>의 구성과 주제의식

분류상 중기의 작품군에 속하는 본작 <향연>에서도 이러한 틀이 적용되었다. 여러 교양 있는 인물들이 대화하며 조금씩 헛점을 흘리고, 소크라테스가 마지막의 연사로 나서 떡밥을 회수하고 각각을 논파하며 자신의 결론을 내세워 모두의 인정을 받으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고대로부터 서사문학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기법인 액자식 구성이 차용되었고, 진지한 대화 사이사이에 아리스토파네스의 딸꾹질 및 술취한 알키비아데스의 난입 등의 에피소드가 삽입되었으나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비본질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스승 소크라테스를 지덕체를 모두 갖춘 완성형의 사색가로 묘사하기 즐겨하는 플라톤이 디오티마라는 가상의 무녀(巫女)를 창조(한 것으로 강하게 추정됨)하여 등장시키면서까지 젊은 시절 소크라테스의 미숙함을 강조한 점은 특기할 만하다. 그조차도 스승의 대가다운 인생행로를 찬양하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고 본다면 조금 우습지만, 진실은 플라톤 본인만이 알 것이다.

5. 역자와 출판사의 친절함

역어들이 평이함은 물론이고,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부연이 필요하다 싶은 부분에는 어김없이 상세한 주석이 달려 있다. 또한, 모든 주석을 미주(尾註)가 아니라 각주(脚註)로 처리하여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해놓은 데서도 독자를 위한 출판사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 이 서평은 마리북스(@themaribooks)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귀한 책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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