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펀트 헤드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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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 도모유키의 「엘리펀트 헤드」를 읽고

1. 「데스노트」의 추억과 특수설정 미스터리

고2에서 고3으로 넘어가는 겨울방학, 오바 츠구미가 쓰고 오바타 타케시가 그린 「데스노트」라는 작품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런저런 명대사 및 주요 설정 등이 어느 정도 밈화(meme化)되는 등 인터넷 문화의 일부로 자리잡기에 이르며 고전의 반열에 접어든 작품이지만,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흡인력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통상의 만화책에 비해 텍스트의 양이 매우 많았는데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12권 전부를 읽느라 수험 생활 중의 일주일을 그대로 헌납해버리고 말 정도였으니까요. 분명 '자율'학습인데 어째서인지 강제로 행해지는 학교에서의 자습 시간에는 내내 감독 선생님의 눈을 피해 몰래 읽다가, 하숙집에 돌아와서는 밤늦게까지 페이지를 넘기고 또 넘기고, 한 권씩 마친 다음에는 내용을 노트에 정리하는 등 아주 열정적인 독서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끌렸느냐?

당시 저의 독서 체험 데이터베이스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라 해봐야 헤르만 헤세의 장편 몇 권, 버트란드 러셀의 에세이 한두 권 및 서양철학사 정도가 전부였고, 이들은 모두 인문학의 오래되고 심오한 문제들을 중심에 놓고 그 주위를 맴돌며 답을 탐색하는, 말하자면 대단히 교훈적이고 고전적인 작품으로 분류될 만한 것들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다시 읽어도 훌륭한 책들입니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이런 인문고전을 읽는 나는 정말 멋져 보일 거야'라는 풋내기의 오만함과 허영심이 발휘된 탓에,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짐짓 아닌 체하며 남몰래 골치를 썩였던 것 같아요.

그런 저에게 「데스노트」는 세게 몇 방 먹이는 작품이었습니다.

첫째, 좋게 말하면 진지하고 나쁘게 말하면 고리타분한 교훈 따위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철저한 흥미 위주의 전개. 주변 환경과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고뇌하고 분투하며 성장해가는 헤세의 인물들과 달리, 「데스노트」의 주인공 라이토는 작중 가장 지능이 높은 동시에 가장 사악한 인물입니다. 그의 지성과 야망은 작품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이미 완성되어 있으며, 나머지 서사는 그가 자신의 계획대로 세상을 바꾸어가는 데에 방해가 되는 인물을 하나씩 제거해가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아니 이래도 돼? 이게 맞는 거야? 근데 그건 그렇고, 이거 왜 이렇게 재밌어?'라는 생각을 읽는 내내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둘째, 명백히 비현실적인 소재를 설정의 핵심에 심어놓고, 그 다음부터는 뻔뻔하리만큼 현실적인 개연성에 입각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품의 구조. '본명을 알고 있는 인간의 이름을 적는 행위만으로도 그를 살해할 수 있는 데스노트라는 물건이 존재한다. 대개 사신(死神)들의 소유물이지만, 인간계로 넘어와도 동일하게 기능한다.'라는 것이 이 작품만의 특수한 설정입니다. 분명 말도 안 되는 얘기지요, 그런 게 실제로 있을 리도 없고요. 그러나 작중에서 데스노트는 엄연히 실재하는 물건이며, 모든 전개는 그것의 존재와 기능을 유추해내고 나아가 그를 이용하려는 인물들 간의 이해관계 상 충돌을 그리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가미한 장르를 팩션(faction)이라고 부르듯, 현실적 개연성에 비현실적 설정을 조화시킨 추리(소설)의 한 분파를 '특수설정 미스터리'라고 부른다는 것은 훗날 알게 되었습니다.

셋째, 작품의 윤리의식을 놓고 쏟아진 온갖 비판 및 비난에 대응하는 원작자의 태도. 작품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자 그 내용을 질타하는 사람들이 (주로 종교계에서) 많았다고 합니다. 얼핏 생각하면 대단히 심오하고 인문학적인 여러 문제에 대한 토론의 장을 열어젖히기에 충분한 내용이었지만, 원작자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Just for fun. '오락용으로 기획하고 만든 작품이니, 그렇게만 봐달라.' 애초에 복잡한 논쟁에 말려들 소지를 차단해버리는 쿨하기 그지없는 태도랄까요.

장르소설, 특히 추리소설에 대한 저의 독서이력이 풍부하지는 않지만, 본작 「엘리펀트 헤드」에서도 이상의 특성이 잘 드러납니다.


2. 순문학과의 비교 : 구성의 밀도와 주제의식

스포일링을 하지 않는 선에서 밝힐 수 있는 본작만의 '특수설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다중우주론에 의해, 세계는 매 순간 존재가능한 것들 중 하나의 시간선을 갖는 여러 평행세계로 분화한다. 둘째, 단일한 개인의 의식이 그러한 시간선의 분화에 따라 갈라지고, 그럼으로써 여러 세계에 동시에 존재하며, 갈라진 의식들끼리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마'라는 약물이 존재한다.

「데스노트」에 '데스노트'와 '사신'이 존재한다면, 「엘리펀트 헤드」에는 '평행우주'와 '시스마'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자에서와 마찬가지로, 후자의 나머지 전개는 철저히 현실적인 개연성에 입각하여 이루어집니다.

이쯤에서 소위 순문학이라 불리는 문학의 장르와 이러한 특수설정 미스터리 장르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겠습니다. 구성의 밀도와 주제의식, 두 가지 측면에서요.

(1) 혀를 내두를 만한 구성의 치밀함

창작을 지망하여 내실을 다지고자 영·프·독·러·미·중·일의 주요 단편을 요즘 주로 읽고 있는 저로서는, 고전적 단편 이론에 충실하며 분량은 사륙판 사이즈 용지에 40~50쪽 정도를 차지하는 작품들에 꽤 익숙해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런 작품들 중 절반 이상은 결말부에 다양한 반전을 배치함으로써 독자에게 읽는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지요.

예를 들어 어제는 빅토르 위고의 단편 <가난한 사람들>을 읽었습니다. 줄거리와 반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착한 아내는 고아가 된 이웃의 아기들을 발견하고 남편 몰래 집으로 데려온다. 그녀는 남편이 화를 낼까봐 불안하다. 그러나 남편은 그 사연을 듣고는, 아내가 이미 아기들을 데려왔음은 모른 채 '여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하나님 뜻 아니겠소. 아이들을 우리가 기릅시다.'라고 말한다. 아내는 그 말에 감동하여, 이불을 젖혀 이미 따뜻하게 눕혀 놓은 두 아이를 보여주며 작품은 끝난다.

참으로 소박하고 따뜻한 반전이지요, 그런데 본작 「엘리펀트 헤드」에서는... 이 정도의 반전이 적어도 30번은 나옵니다! 별 뜻 없겠거니 하고 넘어갔던 앞의 문장도 뒤의 어느 대목에선가는 등장인물이 추리의 토대로 삼을 근거가 되어버리는 일을 몇 번 당하고 나면, 치밀하다는 말만으로는 감히 다 담기 어려운 작가의 정신나간 계산과 배치 솜씨에 푹 빠져들게 되더군요.

책 뒷표지의 '모든 예측은 무의미합니다'라는 문구가 정말이었습니다. 범인은 누구지? 목적은 뭐지? 지금은 어떤 시간선의 기사야마(주인공의 이름)인 거지? 라는 물음이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올라, 사륙판 사이즈로 거의 500여 쪽에 달하는 두툼한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딱 하루 만에 모두 읽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스토리텔링에 관한 한, 인류의 창의력은 무한한 것일까요?

물론 저는 이세돌이 알파고를 한 판 이겼다고 해도 그건 이세돌 개인의 승리지, 인류 전체의 승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작가 시라이 도모유키가 이런 걸작을 써냈다고 해서 모든 인류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겠지요.

각설, 이제 겨우 30대 중반에 접어들었음에도 탄탄한 구성력과 고유한 작품세계를 확보한 작가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걸작을 내놓을지 기대가 큽니다.

(2) 주제의식

'그래서 결국 하고 싶은 말이 뭔데?'라는 친구의 질문에, '이 멍청아, 그게 한 마디로 정리되면 굳이 수백 쪽 짜리 소설을 썼겠냐?'라고 답했다는 어느 소설가의 일화가 떠오릅니다. 그만큼 어떤 문학작품, 특히 장편소설에 대해 그것의 집필 의도란 작가 본인도 딱 잘라 말하기 어렵고, 독자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기 쉽겠지요.

다만 이 점만은 분명히 말해두고 싶습니다. 대개의 순문학이 미학적인 성취, 도덕적인 교훈, 삶의 불가해함에 대한 고민의 자세, 세계의 부조리와 폭력에 대한 고발 등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는 것에 반해, 본작 「엘리펀트 헤드」에서는 그러한 주제에 대해서는 어떠한 고민의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치열한 두뇌 게임, 퍼즐풀이의 연속일 뿐, 어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가치에 대해서 작가는 결코 논하지 않아요. 그것이 전부입니다.

3. 윤리성과 창작의 자유의 문제

주로 살인, 그것도 엽기적이고 잔혹한 살인이 긴장을 끌어올리는 장치로 자주 쓰이다 보니 호불호가 꽤나 갈릴 만한 작품이라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창작의 자유란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인 저로서는, 극호(極好)의 입장에 한 표를 던집니다 :)



* 이 서평은 인친 @woojoos_story 님이 모집하신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책은 출판사 '내 친구의 서재(@mytomobook)'에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저에게 새로운 세계를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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