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철 정철수 평전 격랑만리 - 조선의용군이 된 포은 종손
조성우 지음 / 큰길 / 2022년 7월
평점 :
품절
포은 정몽주 선생의 23대 종손으로 태어난 고철 정철수 선생의 일생이 한 눈에 다 보였다.
눈물과 감동 그리고 씁쓸함.
우리나라 역사 중 가장 힘들고 슬픈 시기에 태어난 정철수 선생의 삶이 한없이 가여웠다.
1920년 대 태어난 그는 집안의 종손으로 엘리트답게 훌륭하게 성장하였다.
하지만 그 훌륭함도 나라 잃은 자손에게는 더 이상의 장점이 되지 못했다.
처음엔 학생과 선생님들을 각종 노역에 시달리게 해 학교공부 또한 못하게 하며 독립운동을 못하도록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가하였다.
1944년 일본은 전쟁의 승리를 위해 우리나라의 남자들을 징집대상으로 규정하고 전쟁에 차출하는 계획을 실행하였다.
그 거대한 물결 속에 우리의 정철수 선생 역시 휩쓸려 갈 수 밖에 없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청년들을 차출 해가더니 전쟁에서 교육과정이 더디고 배우는 것이 모자라 이번에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학교의 학생들을 차출 해가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 당시 보통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모두 다 집안이 괜찮은 집안의 자손들이었고 또한 배움이 깊어 누가 봐도 뻔한 일본의 농락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군인의 수가 부족해 그 수를 채우기 위해선 우리나라 청년들을 더 필요로 했고 일본은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부모와 형제 그리고 그의 친척들까지 괴롭히고 유치장에 가두고 그 수모가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엔 가족을 위해 할 수 없이 자진해서 군대에 입대할 수밖에 없었다.
왜 입대를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일제의 만행을 보니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참으로 가혹했다.
입대 후는 어떤가?
25명의 부대원 중 5명 정도가 한국인인데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모진 괴롭힘과 수모를 당해야만 했다. 어떤 분은 회로록에서 그 어떤 괴롭힘 보다 배고픔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차출된 우리의 군인들은 모두 엘리트들이었지만 군대에 배정된 일본인들은 그렇지 못해 더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철수 선생은 그 곳을 탈출 해 조선의용군이 되었다.
그 탈출과정 또한 말 못한 고생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쩌면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곳을 탈출해 무사히 살았기 때문이다.
선생의 일생은 말할 수 없이 힘들고 고난의 연속이다.
우리나라 조상님들의 고초가 이 안에 다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고생해서 살아남았고 해방이 되었지만 쉽사리 고국인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 땅에서 사시다가 40여년 만에 고국에 돌아오시게 된다.
그 고국 땅에서 어머니와 수절을 지킨 첫 아내와 딸을 만나고 동생들과 일가친척들을 만남으로써 잠시나마 행복한 순간을 맞이한다.
하지만 고국에서의 삶 역시 녹록치 않았다.
한국은 행방 후 민주주의 국가 즉 자유주의 국가였다.
금전적으로 넉넉지 않은 선생님의 삶이었다.
선생님의 생생한 일대기가 가슴속에 많은 울림을 남겼다.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하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