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의 힘 - 그 초고는 쓰레기다 내 글이 작품이 되는 법
맷 벨 지음, 김민수 옮김 / 윌북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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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다면 무조건 글쓰기 실력이 성장할 수 밖에 없는 책”


 Matt Bell은 소설가이자 교육자로, 《애플씨드》, 《스크래퍼》, 《호수와 숲 사이》, 《진흙 위의 집》을 집필했다. 애리조나주립대학교에서 문예창작 교수로써 작가들을 가르치는 그의 실전 압축 글쓰기 노하우가 담긴 책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주장은 ‘이야기가 작품이 되려면 세 번의 원고가 필요하다’ 이다.

‘초고: 첫 번째 원고 – 개고: 두 번째 원고 – 퇴고: 세 번째 원고’ 라고 제시되어 있어서, 과연 어떻게 단계별 원고를 풀어나갈지 궁금해졌고, 또 과연 당장 실무에 적용할 수 있을만큼 구체적인가? 궁금증이 들었다.



 초고: 글은 한 번에 써지지 않을뿐더러, 하루아침에 책 한권을 써내려갈 필요도 없다는 것이 바로 초고를 대하는 작가의 생각이다. 초고는 ‘일단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덩어리와 조각을 ‘일단’ 쓰고, 추후 작업에서 다듬어나가는 것이다. 초고는 영감의 덩어리들이며, 그 원고는 절대 세상에 나가지 않는다는 마음 가짐으로 편하게, 그렇지만 과감하게 써내려나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야기의 중심은 초고에 있다. 초고는 설계된 이야기보다는 휘발되는 아이디어를 가두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느껴졌다. 쉽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글쓰기 시작을 유도하는 글들이 많아, 이 부분을 읽으면 나도 이야기를 쓰고 싶은 욕구와 용기가 생기는 책이다.


 개고: 머릿속 광산에서 아이디어를 캐서 잘 모아뒀다면, 이제 그 아이디어를 설계하고, 설계대로 잘 엮어야 한다. 작가가 개고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다시’ 쓰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타이핑을 하며 이야기를 수정하는 것이다. 쉽게 쓰인다면 작가는 쉬운 직업이라고 한다. 그러니 인내심을 가지고 열심히 써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처음부터 다시 쓰는 과정을 거치면 보이지 않던 문장과, 새로운 느낌을 갖게 된다고 한다. 사실 초고단계에서는 일단 시작해보라는 용기를 주는 책이었는데, 이 단계에서는 감히 글쓰기를 만만히 봤냐고 혼나는 느낌이었다. 


 퇴고: 이 단계는 출력해서 읽어보기, 소리내어 읽어보기 등 내가 작성한 글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내가 어쨌든 ‘완성’했다고 생각한 글을 한번 더 객관적인 눈으로 본다는 경험이 신선했다. 그리고 독자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작가의 기법 같은것도 많이 적혀져 있어, 이 장을 읽을 땐 이 작가가 정말 진심으로 글쓰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있구나, 라는 마음을 느꼈다,


 이 책은 내가 갖고 싶었던 ‘당장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해 주었다. 편집자 출신의 작가라더니, 생각지도 못한 업계 노하우를 배워본 것 같아 좋은 경험이었다. 일반 직군에 있는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과장을 조금 더 보태서 간접 직업 체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들에게는 교과서로 배포해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어 너무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괜히 작가들이 강력 추천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글쓰기는 작가의 고유한 기술이 아니다. 사회의 어느 조직에서든 글쓰기를 필요로 하는 직업은 존재한다. 하다못해 상사와의 카톡 대화에서도, 친구 또는 연인과의 편지에서도 글쓰기 작업은 필요하다(편지 쓸 때 세 번 쓰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니 이 책은 작가들에게만 국한된 책이 아니다. 

 당신, 작가 지망생인가? 이 책은 필수로 읽어보라. 정말 귀한 강의이다.

 당신, 작가인가? 다른 작가는 어떤 기법을 쓰는 지 궁금하다면 읽어보라.

 당신, 글쓰기와는 전혀 무관한 타 산업 종사자인가? 그래도 읽어보라. 작가가 어떤 직업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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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시청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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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의 쓸모 -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읽는 21세기 시스템의 언어 쓸모 시리즈 3
김응빈 지음 / 더퀘스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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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원받은 서평입니다*


코로나라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전쟁을 겪으며 사회는 변했고 개인도 변했다. 미생물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고 보잘것 없는 존재에서 눈에 보이지 않기에 너무나도 공포스러운 존재로 바뀌었다. 최전선에서 과학자들은 과학이라는 무기로 전쟁을 진두지휘했다. 전염병 전문가들이 밤새도록 토론하고 나면 정부에서 정책이 나오고, 사회가 움직였다. 개인은 정부가 정한 지침을 따라야 했다. 나는 그 결과들을 잘 받아들였다. 이유라는 것은 전문가들이 더 잘 알거라는 믿음과 약간의 무기력을 갖고. 그렇다. 나만 느낀게 아닐 거다. 전문 지식 앞에서의 무기력은 코로나를 견딘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한번쯤 느껴봤을 것이다. 모르는게 죄는 아니지만, 대신 아무 의견 없이 전문가들의 말에 따라야 한다. 수많은 양떼 중 한마리의 순한 양이 되는 기분은 기존에 없었던 자신의 무지에 대한 죄책감을 동반한다. 그래서 나는 코로나를 겪은 이후로 무언가를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 무언가는 상황마다 항상 바뀔테고 한계가 존재하고 끝이 없겠지만. 지금은 생명과학이다.


저자는 인간 내부 구조에 대한 이야기부터 인간 가까이의 외부,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에까지 논의의 범위를 넓힌다. 인간이 미생물을 처음 인지하게 된 순간, DNA의 구조, 다이어트 등의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전문지식을 전달하며 독자가 어려운 내용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끔 하는 세심한 배려도 돋보인다. 삽화도 많고 고등학교때 공부했던 내용도 많이 나와 친숙한 느낌이다. 일반인이 정확한 전문 지식을 부담없이 접하기 위해선 이러한 책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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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그레이션 - 북극제비갈매기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서
샬롯 맥커너히 지음, 윤도일 옮김 / 잔(도서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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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원


북극 지방은 여름 동안 태양이지지 않아 북극제비갈매기에게 제일 바쁜 계절이다. 그러나 겨울이 오면 남쪽으로, 다른 동물보다 더 멀리 이동한다. 북극이 겨울일 때 여름인 남극으로 대서양을 건너. 매년 77,000km, 평생 지구와 달 사이를 세 번 쯤 왕복하는 북극제비갈매기는 티스푼 하나 정도의 무게라고 한다. 


 프래니와 나일, 가족, 사가니 호의 사람들 이야기가 매 챕터마다 시간과 장소가 뒤섞여 펼쳐지지만 상황과 심리에 대한 묘사가 타이트하고 생생해서 전혀 지루하거나 따라가기 번거롭지 않았다. 중반너머까지 프래니 린치의 북극제비갈매기에 대한 애정은 집착 이상으로 보였다. 기후에 대한 걱정인가, 병적인 방랑벽을 위한 기행인가 갈피를 잡기 어려워 기후 위기를 핑계로 방랑을 다니는 현실감각은 없지만 용감한 사람 정도로 지켜보았다. 그러다 3부에 들어서면서 프래니의 아픔, 그 깊이와 나일의 사랑에 대한 약속, 노력과 뒷모습, 남은 사람들의 남은 시간에 대한 무게가 남극의 풍경과 만나 솔직히 울컥했다. 이런 결말이라니 .. 이런 결말 ..


p.418 만약에 단 한 마리라도 살아 있다면, 너무 어려운 일도 아니고 가능한 일이니 내 유골을 새들이 날아가는 곳에 흩뿌려주기를 바랍니다.


그가 원했고, 프래니가 비로소 머물러서도 다시 떠나지 않아도 될 곳에 닿을 수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다. 게다가 그녀가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수 있어서 기쁘다.


사랑을 위해 상대의 본 모습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사랑했다는 것을 너무 늦게 느끼는 것은 얼마나 아픈가?  

북극제비갈매기가 무사히 남극으로 다시 북극으로 긴 여정을 기꺼이 다닐 수 있게 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거의 모든 것을 해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지구를 위해서도, 내가 사랑하는 너를 위해서도.

남극의 바다, 그 수면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태양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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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꽃향기 - 베네치아 푼타 델라 도가냐 미술관과 함께한 침묵의 고백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이재형 옮김 / 뮤진트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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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도서입니다*


<달콤한 노래>를 얼마 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리뷰 도서가 반가웠다. 책을 읽기 전에는 미술 작품과 관련한 해설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읽어 보니 자기 내면의 고백을 이렇게 솔직 하고 깊이 있게 고백할 수 있을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내가 현재에 속하도록 내 버려 두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p32) 글을 쓰고 싶은데 한 글자도 쓸 수 없음을 고민하는 저자에게 출판사 편집자인 알리나가 하룻 밤동안 미술관에 갇혀 지내보는 게 어떻게냐는 조언에 따른다. 미술관은 흥미가 없었지만, ‘갇힌다’라는 사실이 자신만의 방을 꿈꾸는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 왔던 것이다. 수도원에 들어가듯 자신의 소설 속으로 들어가길 갈망하는 작가는 알리나 의 조언대로 베네치아에 있는 ‘푼타 델리도가냐’ 미술관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것을 선택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절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P12) ‘수도원에 들어가 침묵과 겸손을 서약하고 싶다.(P19) ‘글을 쓴다는 것은 곧 침묵을 가지고 노는 것이며, 실생활에서는 말할 수 없는 비밀들을 우 회적으로 말하는 것이다.(P25) ‘침묵이야말로 자신의 생각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행동이다.(P34) ‘우리는 아무것도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이 맹목적으로 글을 쓴다.(P65) ‘문학은 우리를 들어 올릴 수 있다(P92) ‘문학은 상처와 사고의 흔적, 이해할 수 없는 불행, 부당한 고통을 소중하게 생각한다.(P96) ‘글을 쓰다 보며 허구와 현실이 뒤섞이고 등장인물이 우리를 기쁘게 하기도 하고 두렵게 만 들기도 하나는 방법으로 형체를 갖추는 초자연적 순간들이 찾아 온다.(P106) ‘문학이 이 내면의 삶에 모든 자양분을 공급하게 될 것이다.(P118) ‘어떤 장소에서 떠날 가능성이 있어야만 그 장소에서 살 수 있을 것 같다.(P142) ‘글쓰기는 곧 회복의 시도라고 생각한다.(P150) 미술관에서의 하룻밤이 작가에겐 많은 내면의 변화를 일으켰다. 다른 이의 고뇌의 형상들을 보고 그들의 내면을 이해하고 자신의 지나온 흔적들(아버지와의 기억, 작가로서의 삶)을 더듬 어 보면서 작가로서 정체성을 확인한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깊이 성찰하며 비록 하룻밤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깊은 사유가 결 코 얇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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