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날개 달린 새야!”
제2회 정채봉 문학상 대상 수상작 <발찌결사대> (김해등 / 샘터)를 읽고
흔히 ‘동화’라 하면, 어린이들만 봐야 하는, 약간 유치한 책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김해등 작가의 <발찌결사대>는 어른들이 봐도 전혀 유치함을 느낄 수 없는, 잘 쓰인 동화이다. 오히려, 흔히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의 이야기를 잘 버무리어 바쁜 일상을 보내는 어른들이 한번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우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중간중간의 안재선씨의 삽화는 동화의 내용을 더욱 빛나게 해 주고 있다.
하늘로 날아오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비둘기다. 평화의 상징으로서가 아닌,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닭둘기’라는 좋지 않은 별명을 가진 비둘기가 주인공이다. 날지 못하고 인간이 주는 먹이만을 먹고, 뒤뚱뒤뚱 걸어 다니는.
그 비둘기들 중, 초록목과 흰줄박이는 닭둘기로 남아 있기를 거부한다. 이들은 또다른 비둘기들과 발찌결사대를 결성, 인간이 주는 먹이를 거부하고, 생전 해 보지 않았던 사냥을 한다. 개미 등의 사냥. 그리고, 검은혹부리와 경찰 비둘기들의 눈을 피해 나는 것을 연습한다.
그렇지만 곧 발각되고, 이들은 하늘을 나는 것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 처한다. 하지만, 이들의 자유를 향한 갈망은 막을 수 없었다. 초록목과 흰줄박이는 경찰 비둘기들과 사냥개를 뒤로 하고,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올라갔다. 다른 발찌결사대들도 이들의 뒤를 따라 창공을 난다.
50페이지의 짧은 동화이지만, 이 작품에는 많은 것들을 생각나게 해 준다. 마치 어른의 세계를 비둘기의 세계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는 듯하다. 매일의 일상에서 반복되어 살아가는, 그리고 거기에 만족하여 발전하지 못하고, 쳇바퀴 도는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 작가는 그 모습을 재미있는 단어 ‘구구뒤뚱법’을 사용해 설명한다.
구구뒤뚱법이 만들어진 뒤로 비둘기가 날개를 퍼덕이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비둘기는 절대 인간의 기분을 언짢게 하거나 놀라게 해서는 안 됐다. (p.14)
학교나 회사에서 윗사람들의 눈치만 보면서 숨죽이며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의 모습 아닌가. 작가는 그런 비둘기들에게, 아니 우리 인간들에게 새로운 길이 있음을 보여 준다. 바로 비둘기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능력이다. 바로 ‘나는 것’. 인간들에게는 인간다움을 펼치는 것,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 모험에 도전하는 것 등이겠다.
“매일매일 날갯죽지 힘을 길러야 해. 닭둘기가 아니라 비둘기로 살고 싶으면 날아서 여기를 탈출하는 거야.” (p.26)
하지만, 그 길을 가고, 그 능력을 펼치는 것엔 장애물이 놓여 있다. 작품 속에서는 검은혹부리를 필두로, 째진눈과 사냥개, 경찰비둘기들이 발찌결사대를 필사적으로 방어한다. 인간들도 마찬가지일 것. 수많은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을 것이다. “그냥 평범하게 살아!”라고 외치는 일갈, 다른 길로 나아가는 것에 대한 시기, ‘지금’이 아니라 ‘나중’으로 미루어버리는 나태…. 하지만, 작가는 이런 장애물을 한마디로 일축한다.
초록목이 흰죽박이에게 팩 쏘아붙였다. “영원히 닭둘기로 살 거야?” (p.34)
동화의 아름다움에 빠지다
<발찌결사대> 외에도 이 책에는 김해등 작가의 다른 작품, <마술을 걸다>, <탁이>, <운동장이 사라졌다>가 실려 있다. <발찌결사대>처럼 이 작품들 역시 일상의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로 구성된다. <마술을 걸다>는 전학와서 만난 한 여학생을 좋아해서 생긴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고, <탁이>는 달걀을 낳은 닭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지막 <운동장이 사라졌다>는 어쩌면 제일 독특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수업 중, 운동장에 새파란 파도가 덮친다. 반 유리창엔 상어가 달려든다. 바닷물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교실이 땅속으로 푹 꺼지기 시작한다. 거대한 개미와 땅강아지가 달려든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불붙은 운석이 운동장에 떨어지기도 한다. 이 기이한 이야기는 운동장 괴물(?)과 유능한 교장 선생님의 대화로 끝을 맺는다.
교장 : “근데 이번엔 왜 또 나타난 거야?”
운동장 괴물 : “말했잖아! 심심하고, 보고프다고!”
교장 : “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거 몰라? 벌써 강산이 다섯 번이나 변했다고. 지금 아이들이 얼마나 바쁜데 운동장에서 놀 시간이 어디 있어? 엉?”
운동장 괴물 : “그, 그런가…….”
운동장 괴물은 금세 풀 죽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p.157)
아. 나는 이 부분에서 허를 찌른 듯 했다. 운동장을 의인화할 수 있다니? 그리고, 그 운동장이 화나서 땅을 꺼뜨리고, 바닷물을 보내는 등의 심술(?)을 부렸다니? 작가의 상상력에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요즘 운동장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는, 너무 바쁜 아이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그리고 있어 씁쓸하기도 했다.
스마트폰의 발달로 편리해졌지만, 점점 감수성은 메말라가는 것 같다. 이때,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동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동화가 여기 있다. <발찌결사대>속에 오롯이 담긴 우리들의 이야기, 우리 자녀들의 이야기, 우리 삶의 이야기를 맘껏 누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