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쉬왕의 딸
카렌 디온느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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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간만에 좋은 스릴러 소설을 만났다. 책 표지부터 인상적이다. 황량한 늪지대에서 누군가 집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제목도 심플하지만 강렬한 마쉬왕의 딸.

 

 
죄수 한 명이 두 명의 교도관을 죽이고 탈출했다. 아동 유괴, 강간 및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악질의 죄수였다. 그런데 그는 바로 주인공 헬레나의 아버지였던 것. 마치 내가 헬레나인 것처럼 소설은 이 장면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귓가에 피가 확 몰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트럭의 속도를 줄이고 갓길에 조심스럽게 차를 대었다. 라디오를 끄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제이콥 홀브룩이 교도소를 탈출했다. 마쉬왕[Marsh king, 늪을 다스리는 왕], 나의 아버지가. (24)

 
그런 아버지는 헬레나와 그녀의 두 딸을 위협해 온다. 헬레나는 혼란스럽다. 사실, 아버지는 헬레나에게 결코 하찮은 사람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유괴했던 납치범이었다. 그런 아버지와 피해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헬레나는 태어났고, 12년 동안이나 외딴 늪지대에 고립된 채 자랐다. 아버지의 정체를 몰랐던 어린 헬레나는 아버지를 동경한다. 그가 늪에서 살아남는 방법, 즉 사냥과 낚시 등에 탁월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있어 아버지는 우상이었던 것이다.
 
그런 아버지를 쫓는 딸의 운명이라니...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가 아버지에게 배웠던 생존법을 토대로 그녀는 아버지를 추적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 12년을 살았으니까. 아버지는 나를 훈련시켰고, 자신이 아는 걸 나에게 전부 가르쳤다. 난 아버지의 사고방식을 알고 있다. 무엇을 할지도, 어디로 갈지도 안다. (57)
 
헬레나는 과거의 아버지를 추억하고, 현재에는 아버지를 쫓는다. 과거와 현재가 계속 반복되는 동안 나는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생생함에 빠져들었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이 주는 통쾌함은 주인공 헬레나에 있었다. 보통 스릴러의 여성 캐릭터는 주인공을 돕는 캐릭터인 경우가 많다. 조력자 아니면 애인 정도. 하지만 마쉬왕의 딸은 헬레나가 문제를 해결하고 소설 전체를 이끌어간다. 게다가 1인칭으로 되어 있어 독자들은 헬레나에 더욱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약화된 우리나라 스릴러 소설. 내용과 형식을 파괴한 좋은 장르 소설이 계속적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마쉬왕의 딸이 좋은 교본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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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짜툰 6 - 고양이 체온을 닮은 고양이 만화 뽀짜툰 6
채유리 지음 / 북폴리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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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전성시대라 할 수 있다. 다양한 반려동물은 마치 한가족처럼 우리 곁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랑하는 동물을 담은 만화 뽀짜툰 6이 독자들을 찾았다.

 

다음 <만화속세상> 화제의 웹툰 <뽀짜툰>은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만화가 특별한 이유는 작가가 직접 기르는 네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어떤 창작물보다도 실감나고 진실된 느낌을 준다.

 

사실 나는 고양이를 키우지 않기 때문에 애묘인의 마음을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뽀짜툰을 통해 작가가 얼마나 고양이를 사랑하고 아끼는지 엿볼 수 있었다.

 

가진 유전자가 전혀 달라도,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대도,

나는 이 아이들과 사는게 참 좋다.

후회하지 않는다. (19)

 


 

만화책이기 때문에 그저 고양이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알콩달콩한 에피소드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가슴 찡한 스토리가 있었다. 바로 고양이 짜구의 투병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담담히 그린 것이다. 더구나 짜구는 작가가 13년이나 기른 고양이란다. 병원에도 셀 수 없이 많이 가고, 아픈 고양이를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는 작가의 모습이 만화에 보인다. 얼마나 안타깝고 슬펐을까.

 

그렇지만 슬픈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다. 고양이 장난감, 밥 먹이기, 목욕 시키기, 산책하기 등등 고양이와의 소소한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데도 내가 직접 애묘인이 된 듯한 느낌도 준다.

 

이 책에선 온라인에서는 공개되지 않은 스페셜 에피소드 <그곳은...>도 담겨 있다. 고양이 짜구를 하늘로 보낸 뒤, 하늘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짜구를 생각하며 그린 만화다. 다시 한 번 코끝이 찡했다.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더라도 가슴 따뜻하게 볼 수 있는 만화였다. 만약 키우고 있다면 더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씩 쌀쌀해지는 계절, 간만에 따뜻함과 웃음을 준 만화였다. 작가의 앞으로의 작업도 기대해 본다. 지금도 사랑하는 고양이들과 웃고 울고 있을 작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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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한 지성의 단련법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샘터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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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 책상 앞에 앉아 하루종일 책을 펴보는 모습이 그려질 수 있고, 한 문제를 골똘히 생각해 보는 것도 생각난다. 어떤 사람은 행동이 더 중요하지 않냐며 지성을 폄하하기도 한다. 과연 지성이라 건 어떤 모습일까?

 

그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준 책이 있다. 사이토 다카시의 유연한 지성의 단련법. 다카시 역시 그동안 여러 책들을 통해 지성인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었기에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폈다.

 

지성은 어려운 문제나 힘겨운 현실에 직면했을 때 그 원인을 밝혀내는 힘이고,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지를 찾는 힘이며,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 대처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즉 진정한 지성은 살아가는 힘이다. (7)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지성을 살아가는 힘이라 정의한다. 지성이 세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임을 저자는 말하고 싶었으리라.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지성의 여러 단면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1. 철저히 고민하여 단련하는 지성 2.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지성 3. 신체에 깃드는 지성 4. 자아를 해방시키는 지성 5. 탐구하는 사람이 깨닫는 지성.

 

이어 각 유형별로 실존 인물이 수록되었다. 독자들은 자신이 좇는 지성의 유형을 인물의 삶을 통해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우선 유명한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 저자는 나쓰메의 힘든 유학시절을 반추하며, 그가 치열히 고민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소세키는 그런 고민 끝에 소설가로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그려갈 수 있었다.

 

동시에 그는 자기 손으로 독자적인 문학을 확립해야 한다는 결심도 굳힌다. 이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전업 작가로서의 나쓰메 소세키는 탄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46)

 

저자는 소세키의 삶을 설명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지금의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조언한다.

 

또 하나는 타인을 위해 하는 일반적인 일, 그것도 상당히 힘든 일이라도 그 안에 10에서 20퍼센트 정도 자기본위 의식, 즉 다른 누가 아닌 자신을 위해 한다는 의식이 있다면 그것이 숨을 쉬기 위한 발판이 된다. 그러면 경우에 따라서는 일 자체를 도락적인 요소로 메울 가능성도 있다. (61)

 

나 역시 일을 하는 내 자세를 돌아보았다. 억지로 할 때도 있고, 누구에게 보여주기 식으로 할 때도 있지 않았나. 그렇지만 나 자신을 위해 한다는 생각이 있다면 일을 대하는 자세는 확실히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머지 지성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일본의 위인. 그것도 최소 100여 년 전의 인물들에게서 무슨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배울 점은 분명히 있었다. 또한 그들을 통해 2017년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던 점은 이 책이 주는 덤이라 하겠다.

 

지성의 본질은 유연성이다.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생물만이 살아남듯,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판단력이 바로 지성이다. (193)

 

저자의 결론처럼 지성은 어느 한 가지 모습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는 생물 같은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흔들리지 않고, 굳건한 심지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지성이란 생각이 든다. 이제 책을 읽었으니 실천할 때. 지성을 단련해 나가자. 그것이 이제 내가 해야 할 숙제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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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7.11
샘터 편집부 지음 / 샘터사(잡지)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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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반가운 친구처럼 <샘터 11월호>가 찾아왔다. 이번호에는 어떤 이야기와 소식이 실려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폈다.

 


 

<이달에 만나는 사람>은 약간 낯선 분이었다. 김유곤 약사. 그는 ‘24시간 심야약국을 운영하고 있었다. 무려 8년째. 어떻게 하루종일 약국을 운영할 수 있을까?

 

환자를 상대하는 게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일이라고만 생각하면 그 단조로운 생활을 어떻게 견디겠어요. 그런데 환자들과 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심야에 환자들이 찾아와도 기분 좋게 웃어줄 수가 있습니다. 심야약국 놀이는 저한테도 인생의 참의미를 알려주었습니다.” (17)

 

뿐만 아니라 김유곤 씨는 여러 개의 기부통장을 운영하며 불우이웃돕기에 앞장선다고 한다. 언제든 가도 웃으면서 환자들을 맞이하는 약사. 그 얼굴만 봐도 절로 힘이 솟지 않을까?

 

이번호는 특집 기사도 의미있었다. 바로 <집 없는 민달팽이들의 집 이야기’>. 6편의 글들은 집 마련의 어려움부터 내가 살고 있는 보금자리의 소중함을 솔직히 잘 전해 주었다. 이웃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절실히 다가왔던 것 같다.

 

서로의 책을 공유하는 <민립중앙도서관>도 흥미로웠다. 경기도 일산 마두역에 위치한 국민도서관 책꽂이의 이야기이다. 서로의 책을 어떻게 공유할까? 책을 책꽂이에 보내 책장이 있던 공간을 새롭게 활용할 수 있고, 내가 맡긴 책을 다른 사람이 빌리면 크레딧(Credit)’이 쌓여 현금으로도 돌려받을 수 있다고 한다. 현재에는 무려 83천 여 권의 책이 있다고 한다.

 

책꽂이를 통해 모두가 자유롭게, 또 평등하게 책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책꽂이는 우리가 만든 민립중앙도서관이니까요.” (49)

 

 

이외에도 <샘터 11>에는 다양한 소식과 이야기가 가득 차있다. <전남 영광 불갑산>, <우표 박물관>, <부천 삼정동 소각장>, <할머니의 부엌수업> . 점점 쌀쌀해지는 날씨에 <샘터>를 읽으면 절로 마음이 따뜻해질 것 같다. 아울러 이웃의 정겨운 이야기를 들으며 소소한 행복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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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좋은 날 - 농부라고 소문난 화가의 슬로 퀵퀵 농촌 라이프
강석문 지음 / 샘터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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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인구가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아마도 팍팍한 도시 생활에 지쳤거나 은퇴 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농촌에서 펼치고 싶기 때문 아닐까. 그렇지만, 제대로 준비를 못 한 사람에겐 귀농이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다. 여기 농촌에서 행복한 삶을 사는 이가 있다. 바로 강석문. 그가 말하는 농촌 생활은 이렇다. 딱 좋은 날.

 

그는 이력이 독특하다. 요즘 보기 힘든 7남매의 막내. 한국화 전공. 서울 생활을 접고 풍기의 고향집으로 이사. ‘행복한 사과판매 사업을 시작했으나 2년 만에 접음. 시골집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농사를 거들고 그림을 그림. 현재는 풍기와 양평 집을 오가며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음. 그가 농촌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농사는 수행이라고도 하지만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여전히 밭에서 돌아오면 힘들게 왜 이 고생을 하나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세상모르고 쓰러져 잔 다음 날 조용히 자라난 채소와 과일을 보면 웃음이 난다. 고맙다. 이런 게 행복인가 보다. (61).

 

무엇보다 저자는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나 보다. 씨앗 하나, 맛있는 사과 한 알, 비오는 날 부침개, 맛있는 떡볶이. 삶의 소소한 순간에서 그는 의미를 찾고 행복을 얻는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마음이 그대로 내게도 전해져 웃음이 나곤 한다.

 


아직도 농사를 하시는, 구순이 넘으신 아버님에 대한 글도 인상깊었다. 저자의 아버지는 아직도 정정히 일을 하시고 누구보다도 부지런히 일을 하고 계시다.

 

아버지께서 내 잔소리에, 내 말대꾸에 백 살이 넘을 때까지 이 불효막심한 놈이라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혼내며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당신이 정성을 다하여 키운 채소, 과일을 오랫동안 실컷 먹었으면 좋겠다.

나는 효자는커녕 참 불효막심한 놈이다. (31)

 

불효막심하다는 저자의 말이 왠지 찡했다. 거의 반 백 살의 노부와 반 오십 살의 아들. 이 둘이 같이 밭을 갈고 김을 매고, 같이 새참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농촌 일은 쉬운 것만은 아니다. 바람이 불기도 하고, 벌레도 끊임없이 나온다. 전국적으로 물 부족이 심했던 올해. 저자도 쉽지만은 않았다.

 

우리 집도 작년 여름 가뭄에 물이 말랐다. 난생 처음 우물 바닥을 보았다. 생명력 질긴 질경이가 비비 돌아가 죽을 정도이니 밭작물들도 이미 초죽음 상태였다. 봄에 흘린 땀이 모두 헛수고였다. (18)

 

저자는 조금이라도 물을 아끼기 위해 소변을 밭에서 해결하기도 한다. 그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농촌의 이런 실태를 알지 못하고 마구 물을 쓰는 나의 모습이 겹쳐왔다.

 

 

 

책의 중간중간에는 그의 그림이 실려 있다. 글을 읽고 보니, ‘역시 그의 그림구나라는 감탄이 터져 나온다. 익살스럽기도 하고, 정겹기도 한 그림들이다. 한국의 민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의 농촌과 삶,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가 사는 곳에 가고 싶어졌다. 오래도록 그가 시골에서 살아가고, 순간의 희노애락을 그림으로 남겼으면 좋겠다. 조그만 것을 사랑하고 가족을 아끼며, 자신의 일을 치열히 하는 강석문 씨. 그에게는 모든 날이 딱 좋은 날이었다.


*  샘터 네이버 공식 포스트  http://post.naver.com/isamt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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