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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나 1 - 개정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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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에 대해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도 옛날보다 좋아지지 않았냐고. 아디치에는 말한다. 인종주의는 애초에 존재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므로 감소시켰다고 칭찬할 것도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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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나>는 이민자의 눈으로 바라본 미국의 인종 차별의 실체와 함께 나이지리아의 정치 경제, 계급 갈등 등 사회 문제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소설이다. 세밀한 관찰로 미국인 흑인과 비미국인 흑인이 겪는 차별의 차이를 구별하고 백인 여성을 기준으로 획일화 되는 아름다움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전작 <보라색 히비스커스>에서도 제시됐던 사회문제가 이번 작품에서는 실체를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의식을 강화하고 대안으로 나아가고 있는듯하다. 옳은 말만 해서 사람 참 불편하게 만드는 작가 아디치에 때문에 이제 나이지리아와 미국은 변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구나 생각했다. 참으로 총명하고 대담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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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나>는 2017 ‘원 북, 원 뉴욕’의 수상작이다. ‘원 북, 원 뉴욕’은 뉴욕시에서 주관하는 행사로 모든 뉴욕 시민이 동시에 같은 책을 읽자는 운동이며 일반인 투표로 수상작이 결정된다. 백인의 비율이 월등히 많은 미국에서 이 책이 선정됐다는 점이 놀랍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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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서울시에서 ‘한 권의 책, 하나 된 서울’이라는 타이틀로 책을 선정한다면 어떤 책이 선정될까? 역사 정치는 물론이고 페미니즘과 퀴어 문학 등등 읽을 책이 많을 것 같아 기대된다. <아메리카나>도 서울 시민과 함께 읽으면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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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주의는 먼 미국과 아프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폭력이다.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 노동자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 예멘 난민에 대한 혐오가 엄연히 존재하고 거기에 백인은 예외라는 게 확실한 증거다. 제2의 아디치에가 외국인 노동자의 시선으로 우리나라를 바라본다면 과연 어떤 책이 나올지 궁금하다. 조금은 두렵지만 언젠가는 나왔으면 좋겠고. 그들이 실감하는 코리안 드림, 그들이 바라본 코리안들은 과연 어떤 눈빛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전에 나의 의식과 태도는 어떻게 변화하면 좋을까? 이런저런 새로운 시각이 퐁퐁 솟아나게 만드는 책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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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미국에서는 인종과 계층이 동의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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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가 항상 인종에 대해 얘기해야 하는 겁니까? 그냥 다 같은 인류로 있으면 안 돼요? 그러자 훈남 교수가 대답했다.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게 바로 백인의 특권이란 겁니다. 인종이라는 장벽에 막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당신에게는 인종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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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만약 당신이, 흑인들이 인종 차별에 관해 얘기할 때 “우리 할아버지가 아메리칸 인디언이라서 나도 차별받아요.”라고 말하는, 금발과 푸른 눈을 가진 여자라면 제발 그만해라. 미국에서는 자신의 인종을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결정해 준다. 지금 모습과 같은 외모를 가진 버락 오바마는 오십 년 전이었다면 버스 뒷자리에 앉아야 했을 것이다. 오늘날 어떤 흑인 남자가 범죄를 저지른다면 버락 오바마는 인상착의가 일치한다는 이유로 불심 검문을 받을 수도 있다. 그 인상착의가 과연 무엇일까? 바로 ‘흑인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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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안내서에는 동성애자나 여자가 당하게 될 일에 대해서만 적혀 있어. 망할, 누가 봐도 명백한 흑인의 경우도 적어 놔야 할 거 아냐. 여행 중인 흑인이 무슨 일을 겪게 될지 알려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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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의 다양성이란 말은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 백인이 어떤 동네가 인종적으로 다양하다고 하면, 그것은 흑인 인구가 전체의 9퍼센트임을 뜻한다.(흑인 인구가 10퍼센트가 되는 순간, 백인들은 이사 간다.) 그러나 흑인이 어떤 동네가 인종적으로 다양하다고 하면, 흑인 인구가 40퍼센트일 때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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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 오차, 깨끗한 마음. 그리고 또 하나, <아메리카나>가 품은 이야기. 헤어질 수 없는 인연, 이페멜루와 오빈제의 만남과 사랑, 이별과 재회의 이야기로 인해 나는 이 책을 영영 잊을 수 없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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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첫사랑, 첫 연인, 자신을 설명해야 할 필요를 느껴 본 적 없는 유일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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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쉽게 그녀의 머릿속에 침입했다. (-) 하나하나의 기억이 눈멀 만큼 환한 광휘로 그녀를 멍하게 했다. 하나하나가 물리칠 수 없는 상실감을 가져다주었고, 하나하나가 그녀를 향해 돌진하는 커다란 짐과 같았다. 그것이 자신을 비껴가도록, 그녀가 스스로를 구하도록 몸을 숙여서 피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사랑은 일종의 비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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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울지 않을 것이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우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고, 가슴이 돌을 얹은 듯 답답했고, 목구멍이 따가웠다. 눈물이 간지럽게 느껴졌다. 그녀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가 그녀의 손을 끌어당겨 탁자 위에서 양손을 꼭 쥐었고 그들 사이에 침묵이 점점 커져 갔다. 두 사람이 잘 아는, 오래된 침묵이었다. 그녀는 그 침묵 속에 있었고 이제 안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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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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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생소하면 문학 또한 생소할 수 있는데 생생하고 날카롭고 힘 있는 소설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영국침략으로 식민지가 되면서 가톨릭을 급하게 받아들였던 나이지리아의 왜곡된 종교관과 독립 이후 군사 쿠데타를 겪으며 국민들이 겪은 끔찍한 고통, 그리고 전혀 다른 전통과 관념을 가졌지만 한 객체로서의 소설 속 인물들이 우리와 얼마나 빼닮았는지를 실감나게 공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보라색 히비스커스>는 <우리에겐 새 이름이 필요해>와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이후 세 번째로 읽는 아프리카 문학인데 익숙한 영미문학과는 전혀 다른 신선한 묘사와 표현, 시각이 흥미롭다.

<엄마는 페미니스트>의 저자, 치마만다 응고지 아다치에의 소설이라 당연히 페미니즘 문학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지만 억압된 가부장제 속에서 침묵하던 소녀와 그의 오빠가 주체적인 자아를 찾아간다는 성장소설의 플롯을 그리고 있으니 영 아니라고도 할 수 없겠다.

나이지리아 토착어를 번역하지 않고 고딕체로 남겨놓았는데, 주제의식을 거들 뿐 아니라 소설에 개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마치 마법의 언어 같아서 유추하는 재미도 있다. 덕분에 나이지리아가 한층 가깝게 느껴진다.

소설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두 인물은 유진과 아마카. 정형화되지 않고 입체적인 인격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진보주의 신문사의 발행인이며 이웃들에게 베풂을 실천하는 아버지 유진이 가족들에게는 매우 고압적이고 가학적인 공포의 대상이라는 점. 그리고 시샘 많고 무례한 사촌 아마카는 가난하고 병든 할아버지의 묵은 발뒤꿈치를 속돌로 부드럽게 문지르고 바셀린을 발라줄만큼 다정하다는 점 또한.

🏷파파은누쿠는 아마카 때문에 자기 발이 너무 말랑말랑해지겠다고, 이제는 딱딱하지 않은 돌에도 발바닥이 찔리겠다고 불평했다. 여기서는 이페오마 고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샌들을 신지만 마을에서는 신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마카한테 그만두라고 하지는 않는다.

🏷“캄빌리, 너는 귀한 아이야.“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하는 사람처럼 감정이 북받친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너는 맹렬하게 완벽을 추구해야 한다. 죄악을 보고도 걸어 들어가선 안돼.“ 아버지가 주전자를 욕조 안으로 가져오더니 내 발을 향해 기울였다. 그러고는 마치 실험을 하면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보고싶어 하는 사람처럼 내 발에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부었다. 아버지는 이제 울고 있었다. 눈물이 얼굴을 줄줄 흘러내렸다. 나는 수증기를 먼저 보고 그다음에 물을 봤다. 주전자에서 나온 물이 거의 슬로 모션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내 발을 향해 흐르는 것을 지켜봤다. 닿았을 때의 통증이 너무나 순연한 극열이라 일순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비명을 질렀다.


자전적인가 싶을 정도로 세심하게 전개되던 이야기가 결말에서 급하게 마무리 된 것이 아쉽지만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읽었다. 나중에 한 번 더 독서모임 사람들과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우리나라가 지나온 민주화 과정을 투영해보고 전통과 진보 사이의 균형 잡힌 성장, 폐쇄적인 종교관 등 각자의 의견을 나눠 볼 발제거리가 많을 것이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몇 번 시도했다가 실패했기 때문에 민주 정치를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 마치 오늘날의 민주 국가들은 처음부터 잘했던 것처럼. 그것은 걸음마를 떼려다 엉덩방아를 찧는 아기에게 가만있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 마치 그 아기를 앞질러 가는 어른들은 기어 다녔던 시절이 없는 것처럼.

🏷지금 내게 오빠의 반항은 이페오마 고모의 실험적인 보라색 히비스커스처럼 느껴졌다. 희귀하고 향기로우며 자유라는 함의를 품은, 쿠데타 이후의 정부 광장에서 녹색 잎을 흔들던 군중이 외친 것과는 다른 종류의 자유. 원하는 것이 될, 원하는 것을 할 자유.

🏷오빠와 내가 서로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아직도 너무 많다. 시간이 흐르면 더 얘기하게 될지도, 아니면 영원히 다 말할 수 없을지도. 오랫동안 벌거벗은 상태였던 것에 언어라는 옷을 입히기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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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순간 - 삶의 의미를 되찾는 10가지 생각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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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잘 사는 게 뭔가 궁금하던 참에 흥미로운 철학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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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스베 브링크만이 덴마크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진행했던 철학 강의 를 정리한 책이다. ‘삶은 의미 있는 것인가?’에서 시작해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 우리가 휘둘리지 않고 단단히 딛고 설 가치란 무엇인지를 철학자들의 10가지 생각을 통해 풀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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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거듭 주장하는 것은 도구주의적 사회의 문제점이다. 이익이 되기에 유지하는 우정과 사랑, 아름다움을 위한 예술, 보답받기 위한 선, 시험합격을 위한 교육, 성과를 위한 자유와 같이 많은 가치들이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쓸모’를 위한 도구로 전락된다는 것이다. 그런 도구화는 우리의 삶에서 정말 의미 있는 것을 너무나 쉽게 가려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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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주의 시대에 살면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람 자체로 존중하며, 조건없이 사랑하고, 노동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며 타산을 따지지 않고 도덕과 선을 이루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가야할 길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진정한 가치들을 돌아보고 지켜가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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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글로 옮긴 책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다. 비교적 폭넓으면서도 깊이도 있어 나의 경우 큰 도움이 되었다. 최근 죽음, 범죄, 행복, 가치, 자유, 목적 등등에 관해 질문이 많던 참이었는데 그 답을 철학 안에서 되물음 해볼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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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찾기를 강조하는 이 시대에 ‘진정한 자신을 찾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선을 행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우주처럼 방대하고 복잡한 자아의 세계를 헤매느라 골치가 아팠는데 거기엔 딱히 끝도 형태도 없는 것 같았거든. 그래, 그보단 선을 이루는 것이 훨씬 쉽고 좋은 것이니라.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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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른을 위한 교육이라고 한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휩쓸리지 않고 가치있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는 끝없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앞으로 인생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며 살아갈지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강력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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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찾는 데 몰두하기보다는 선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윤리적 가치로서 선은 그 자체로 목적인 반면,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은 보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니까요. 정말 최악의 경우에는 진짜 나를 찾는 일이, 앞서 언급한 경우처럼 좋은 사람이 되는 걸 막는 장벽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좋은 사람이 되는 동시에 진정한 자기 자신도 찾을 수 있다면 굉장히 근사하겠지요. 그러나 둘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선’을 선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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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타인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가진 권력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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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나 말도 못하는 작은 인간이 칸트가 말한 존엄을 지닌 개인이 되기 위해서는 부모, 형제자매, 친구 등 무수히 많은 타자의 눈을 통해 자신을 보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할 때 비로소 우리 자신과 관계하는 법을 배웁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에게 빚지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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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굳이 우리 자신을 사랑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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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세상에는 용서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용서에 대한 데리다의 놀라운 주장이 끼어드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그는 오직 용서할 수 없는 것만이 용서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용서는 오직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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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허무주의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할 다른 방법도 배워야 합니다. 오락이나 쾌락은 해결책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고, 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데 필요한 정신적 무기를 든든하게 얻어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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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쿡 - 애플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조용한 천재
린더 카니 지음, 안진환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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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쿡 / Tim Cook] - 런더 카니 지음

애플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조용한 천재

 

다산북스 서평단이 되어 받은 첫 책. 서평단을 신청한 이유는 취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얼마 전부터 소설, , 에세이라는 문학의 틀을 벗어나서 인문, 교양, 과학 등의 서적을 골고루 읽을 필요성을 느꼈고, 마침 다산북스의 서평단 모집 소식이 들려왔는데, 다산북스는 꽤 괜찮은 책들을 내놓은 출판사였기 때문에 믿고 신청했다.

그리고 첫 책인 <팀 쿡>을 읽으며 역시 서평단이 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IT에 대해선 하나도 모르고, 관심도 없으며, 특히나 갤러시를 쓰는 나는 잡스 사망 후에 누가 애플을 경영하는지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이제라도 알았으니 됐지 모..-_-;;;)

 

<팀 쿡>은 현재 애플 CEO인 팀 쿡의 행보를 애플의 역사와 맞물려 조명한 책인데, 400페이지라는 방대한 분량에 비해선 호로록 쉽게 잘 읽히는 책이다. 잡스가 없는 애플에 대한 우려와 불신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초로 1조 달러짜리 기업이 된 애플. 그 뒤에는 조용한 행동파 리더, 팀 쿡이 있었다.

 

생산 프로세스를 능률적으로 바꾸고 재고를 없애기 위해 창고를 없애고 제조 공장에서 고객에게 곧바로 배송하는 체제로 바꾼 그의 혁신성도 놀랍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기업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선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사고방식이다.

 

애플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환경에 대한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지도, 의욕을 고취할 만한 목표를 설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제품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완성될 때까지는 공개하지 않겠다는 원칙 말입니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재평가해본 결과, 우리가 무언가를 이룰 때까지 기다리기만 한다는 건 다른 사람이 같은 목표에 도달하도록 돕는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나는 기업이 상업적인 것만을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기업은 사람들의 집합일 뿐이다. 사람이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면, 기업 역시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제조업체 폭스콘의 노동 환경 개혁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환경보전을 위한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듯 환경청장 출신의 리사 잭슨을 경영진에 합류시킨 팀 쿡. 공급망까지 포함해 재생에너지 체제로 100퍼센트 전환을 약속한 유일한 기업. 애플이 보여주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의식을 통해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지 않을까?! 잡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애플을 발전시키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인물, 팀 쿡. 포천 500대 기업의 CEO 중 첫 번째로 커밍아웃한 인물이자, 주도면밀하고 비즈니스 감각이 뛰어난 팀 쿡이 궁금하다면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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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불꽃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7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윤하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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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난해한 작품을 그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태에서 읽기 시작한다는 건 일종의 모험이다. 그 모험은 더러 포기라는 실패에 이르기도 하지만, 끈기를 갖고 책의 마지막 장까지 다가간다면 더러는 대성공, 극적인 반전을 경험하게도 한다.

 

나보코프의 이름만 보고 골랐던 이 작품의 엉뚱한 구성에 깜빡 속아 정말로 나보코프가 경애하는 시인의 미완성 시를 실은 줄 알았다. 이럴 수가, 시라니! 긴 머리말부터 시작해 난해하고도 마법 주문 같은 시 1편으로 넘어갔을 때가 이 책이 덮일 뻔한 때, 그러니까 모험이 끝날 뻔한 첫 번째 위기였다. 그리고 이내 이것이 몽땅 소설이라는 허구의 세계라는 것을 이해하고 난 후에는 적잖은 충격을 감당해야 햇다. 감쪽같이 속을 만큼 내가 몽매한 독자임을 인정해야 했으며 이런 과감하고 실험적인 소설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기쁘게 독서를 지속해도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란은 계속된다.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부터는 허구가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하는 것이 두 번째 위기이다. 셰이드의 시에 수록된 주석은 킨보트의 것인지 아닌지, 색인과 미주는 소설 안의 것인지, 소설 밖의 것인지? 어느 것이 허구이고, 어느 것이 허구가 아닌지? 그렇다면 허구가 아닌 텍스트는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그것은 진실 또는 현실이 되는 것인지? 또한 이 소설의 해설은 과연 허구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인지? 

 

그래도 두께의 2/3를 차지하고 있는 주석의 명칭이 해석이 아니라 주석으로 표기되는 이유만큼은 분명히 알겠다. 시적인 해석을 넘어서 작가에 대한 심리분석적이며 심층적인 의미를 집요하고 과하게 풀어내어 시구의 본질을 흐리는 데에서 이미 해석의 본분을 넘어섰기 때문이리라.

 

본문 중 생각해볼만한 부분은 940행에 나오는 인간의 삶이란 미완성 시에 붙인 주석 같은 것이라는 문장이다. 시구에 주석자와 주석을 미리 의식한 듯한 대목이 나온 것도 흥미롭지만, 정작 주석에는 그 문장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도 아리송하다. 이 수수께끼 같은 문장은 나에게 황당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정말 이 시를 셰이드가 쓴 시일까, 아니면 셰이드를 너무나 사랑하는 킨보트의 심리가 들어간 오염된 시, 혹은 거짓의 시일까 하는 것이다.

 

가히 건축무한육각면체 같은 이 소설에 마지막으로 질문을 다시 던져본다. 나보코프가 창조한 이것은 소설인가, 혹은 소설을 빙자한 시와 주석인가? 내러티브의 흐름을 전혀 종잡을 수 없다는 점에서, 글로 그린 그림처럼 이해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한 권의 시에 더 가깝다는 생각도 든다. 킨보트가 말한 것처럼 결국 최후의 말은 주석자의 것이라면 정말 최후의 말은 책을 읽는 제2의 주석자인 나의 것일테니 오인도 나무라진 않겠지. 

 

이와 같은 과감한 시도로 문학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참으로 진귀한 독서경험이었다. 문학의 도약을 눈 앞에서 목격하다니 정말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것도 허옇게 바랜 가죽쇼파 위에서 츄리닝을 입은채로 비스듬히 누워서 말이다. 반복해서 읽을 때마다 새로운 발견으로 감동하게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 하나의 좋은 책을 한국어로 만날 수 있어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리고 언제나, 내 사랑
당신도 거기에, 단어의 밑에, 음절 위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리듬에 밑줄을 긋고 강조한다.
먼 옛날에는 여인의 드레스가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종종 나는
당신이 생각해내기도 전에 그 소리와 의미를 알아채곤 했다.
당신 안의 모든 것이 젊어서, 당신은 내가 당신을 위해 지은
오래된 시를 인용해 새롭게 만든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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