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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나 1 - 개정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인종차별에 대해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도 옛날보다 좋아지지 않았냐고. 아디치에는 말한다. 인종주의는 애초에 존재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므로 감소시켰다고 칭찬할 것도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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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나>는 이민자의 눈으로 바라본 미국의 인종 차별의 실체와 함께 나이지리아의 정치 경제, 계급 갈등 등 사회 문제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소설이다. 세밀한 관찰로 미국인 흑인과 비미국인 흑인이 겪는 차별의 차이를 구별하고 백인 여성을 기준으로 획일화 되는 아름다움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전작 <보라색 히비스커스>에서도 제시됐던 사회문제가 이번 작품에서는 실체를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의식을 강화하고 대안으로 나아가고 있는듯하다. 옳은 말만 해서 사람 참 불편하게 만드는 작가 아디치에 때문에 이제 나이지리아와 미국은 변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구나 생각했다. 참으로 총명하고 대담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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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나>는 2017 ‘원 북, 원 뉴욕’의 수상작이다. ‘원 북, 원 뉴욕’은 뉴욕시에서 주관하는 행사로 모든 뉴욕 시민이 동시에 같은 책을 읽자는 운동이며 일반인 투표로 수상작이 결정된다. 백인의 비율이 월등히 많은 미국에서 이 책이 선정됐다는 점이 놀랍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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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서울시에서 ‘한 권의 책, 하나 된 서울’이라는 타이틀로 책을 선정한다면 어떤 책이 선정될까? 역사 정치는 물론이고 페미니즘과 퀴어 문학 등등 읽을 책이 많을 것 같아 기대된다. <아메리카나>도 서울 시민과 함께 읽으면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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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주의는 먼 미국과 아프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폭력이다.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 노동자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 예멘 난민에 대한 혐오가 엄연히 존재하고 거기에 백인은 예외라는 게 확실한 증거다. 제2의 아디치에가 외국인 노동자의 시선으로 우리나라를 바라본다면 과연 어떤 책이 나올지 궁금하다. 조금은 두렵지만 언젠가는 나왔으면 좋겠고. 그들이 실감하는 코리안 드림, 그들이 바라본 코리안들은 과연 어떤 눈빛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전에 나의 의식과 태도는 어떻게 변화하면 좋을까? 이런저런 새로운 시각이 퐁퐁 솟아나게 만드는 책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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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미국에서는 인종과 계층이 동의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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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가 항상 인종에 대해 얘기해야 하는 겁니까? 그냥 다 같은 인류로 있으면 안 돼요? 그러자 훈남 교수가 대답했다.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게 바로 백인의 특권이란 겁니다. 인종이라는 장벽에 막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당신에게는 인종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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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만약 당신이, 흑인들이 인종 차별에 관해 얘기할 때 “우리 할아버지가 아메리칸 인디언이라서 나도 차별받아요.”라고 말하는, 금발과 푸른 눈을 가진 여자라면 제발 그만해라. 미국에서는 자신의 인종을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결정해 준다. 지금 모습과 같은 외모를 가진 버락 오바마는 오십 년 전이었다면 버스 뒷자리에 앉아야 했을 것이다. 오늘날 어떤 흑인 남자가 범죄를 저지른다면 버락 오바마는 인상착의가 일치한다는 이유로 불심 검문을 받을 수도 있다. 그 인상착의가 과연 무엇일까? 바로 ‘흑인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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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안내서에는 동성애자나 여자가 당하게 될 일에 대해서만 적혀 있어. 망할, 누가 봐도 명백한 흑인의 경우도 적어 놔야 할 거 아냐. 여행 중인 흑인이 무슨 일을 겪게 될지 알려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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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의 다양성이란 말은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 백인이 어떤 동네가 인종적으로 다양하다고 하면, 그것은 흑인 인구가 전체의 9퍼센트임을 뜻한다.(흑인 인구가 10퍼센트가 되는 순간, 백인들은 이사 간다.) 그러나 흑인이 어떤 동네가 인종적으로 다양하다고 하면, 흑인 인구가 40퍼센트일 때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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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 오차, 깨끗한 마음. 그리고 또 하나, <아메리카나>가 품은 이야기. 헤어질 수 없는 인연, 이페멜루와 오빈제의 만남과 사랑, 이별과 재회의 이야기로 인해 나는 이 책을 영영 잊을 수 없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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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첫사랑, 첫 연인, 자신을 설명해야 할 필요를 느껴 본 적 없는 유일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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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쉽게 그녀의 머릿속에 침입했다. (-) 하나하나의 기억이 눈멀 만큼 환한 광휘로 그녀를 멍하게 했다. 하나하나가 물리칠 수 없는 상실감을 가져다주었고, 하나하나가 그녀를 향해 돌진하는 커다란 짐과 같았다. 그것이 자신을 비껴가도록, 그녀가 스스로를 구하도록 몸을 숙여서 피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사랑은 일종의 비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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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울지 않을 것이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우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고, 가슴이 돌을 얹은 듯 답답했고, 목구멍이 따가웠다. 눈물이 간지럽게 느껴졌다. 그녀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가 그녀의 손을 끌어당겨 탁자 위에서 양손을 꼭 쥐었고 그들 사이에 침묵이 점점 커져 갔다. 두 사람이 잘 아는, 오래된 침묵이었다. 그녀는 그 침묵 속에 있었고 이제 안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