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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지지않는다는말
김연수 작가와 나는 참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일단, 가장 중요한 공통분모는 '달리기'를 사랑하는 러너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외 부수적인 공통분자로는 '주위 사람들에게 착하다는 소리를 곧잘 듣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다.
이전에 김연수 작가의 '7번국도', '원더보이'를 읽어본 바가 있었는데 사실 크게 감명깊게 본 작품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작가는 아니었다. (극히 내 주관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그의 산문집 '지지않는다는말'을 보고나서 완전한 그의 팬이 되어버렸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수많은, 가슴에 박히는 문장들 때문만이 아닌, 그가 달리기를 통해 인생을 표현하는 '러너작가'이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달리기를 하고 땀을 쭉 뺀 후 샤워를 시원하게 하는 것을 하루의 최고 낙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그저 취미로 뛰는 것이라 할 수도 있지만, 달리기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 이유를 말로는 쉽게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인 매력이다. 그래서인지 이러한 매력을 아는 사람을 마주하면 마치 먼 타국에서 고향사람을 만나듯 매우 기쁘다.
내가 달리기를 사랑하는 사람이어서 인지 몰라도, 김연수 작가가 말한 '고통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러너들'이라는 말은 충분히 가슴에 새길만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장은 러너들만이 느낄 수 있다. 달리다보면 3고가 오기 마련인데, 처음에 달리 때는 단순히 귀찮고 뛰기 싫다는 의지박약의 위기(1), 중반 때는 다리가 풀리려고 하는 하체부실의 위기(2), 그리고 후반부에는 폐가 터질 것 같은 생명위협의 위기.. 즉 3고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고통을 즐겨야만 목표지점을 통과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달리기는 그만큼 정직하고 착한 운동이다. 내가 고통을 즐기는 만큼 대가를 치러주니까. 나는 이런 고통들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용기'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말한 것처럼 스스로 속이지 않고, 아닌 것을 아니라 말할 수 있는 그런 용기 말이다.
이 책은 '김연수'작가의 팬들은 물론, 지지 않기 위해 사는 사람들, 심지어 그의 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사람들까지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 왜냐? 솔직 담백한 그의 모습을 공짜로, 한꺼번에 느껴볼 수 있으니까. 비타민을 한꺼번에 흡수할 수 있는 '영양제'와 같다고나 할까. 산뜻한 디자인만큼이나 더운 여름, 시원한 가을..어느 계절에나 다 어울리는 책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언제든 시간 날 때 읽어보기를.
그의 글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숨말하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아니면 결코 쓸 수 없을 것 같은 글을 쓰기 위해, 우리에게 말하기 위해, 계속 '숨말'하고 있다. 덕분에 독자들은 그와 '소통'할 수 있다. '숨말'이라는 단어가 궁금한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보면 된다.
행복과 기쁨은 그것을 원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이유도 없이 즉각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 책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내게 읽힌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이 책을 읽고 김연수라는 작가에 대해 느낀 점은 그가 '문장의 마술사'라는 것이다. 좋은 책을 읽었다는 말보다도 좋은 문장들을 읽었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