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렌산드로스 대왕의 동상 앞에서 흐느끼는 서른 남짓의 사내.
이유는 자기의 나이에 세계를 정복했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자각에
울고 있었던 거예요. 그의 이름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야망을 가진 인간이 자기 자신의 초라함을 정직하게 마주한 순간,
그곳에서 비로소 한 명의 포식자가 태어났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이런 순간을 회피하고 또 회피하기 위해 변명을 만들어내며
변명을 정당화하기 위해 겸손이라는 가면을 쓰기 시작한대요.
'나는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아. 나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야. 나는 지금 이 정도면 충분해'
이 말들은 겸손이 아니라 위장된 공포이며 자신의 비겁함을 숨기기 위해 골라 입은 옷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차라리 그 가면들을 벗고 겸손으로 위장된 옷들을 벗은 다음
부럽고 가지고 싶다고 되고 싶다고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잃을 것이 두려워 머뭇거리는 자에게는 공통된 습관이 있는데 바로 결정을 미루는 것이에요.
조금만 더 준비하고, 조금만 더 알아보고, 조금만 더 상황이 좋아지면..
이 말들의 진짜 정체는 영원히 시작하지 않겠다는 선언의 다른 말들일 뿐입니다.
머뭇거림은 신중함이 아니며 회피하기 위한 시간 끌기예요.
인간은 자신의 비루함을 들춰내는 거울 앞을 본능적으로 피한다고 해요.
자신의 초라함을 직시하는 순산, 더 이상 핑계 뒤에 숨어 평범하게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알기 때문이란 거죠.
그러나 그 뼈아픈 결핍의 인정이야말로 포식자로 거듭나기 위한 유일한 통과의례에요.
알고 있으면서 외면해온 그 답을, 이제는 입 밖으로 꺼낼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