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드너의 실험에서 진짜 보여주는 건 사람이 잠을 얼마나 오래 침을 수 있는 냐가 아니라
사람이 얼마나 자주 얼마나 늦게 잘못 읽는가라고 해요.
가드너가 증명한 건 잠을 이긴 인간이 아닌 무너지는 몸이 한동안 멀쩡한 척할 수 있다는 것과
그 척에 가장 먼저 속는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랍니다.
또 하나의 '잠'에 관한 에피소드를 소개해 드릴게요.
1987년 5월 어느 새벽 캐나다 토론토에 스물세 살의 케네스 파크스는 거실 소파에 잠들어 있었어요.
그는 몇 달째 제대로 쉬지 못했고 빚과 불안으로 부담감을 안고 있었어요.
그러다 어는 순간 파크스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외투를 걸쳐 입은 뒤 차 키를 챙겨
차에 올라타 2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의 처가로 향했습니다.
이전에 받아둔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간 파크스는 장인, 장모가 잠들어 있는 방으로 들어갔어요.
평범한 몽유병이라고 하기엔 그다음에 펼쳐진 일은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파크스는 자동차 타이어 교체용 쇠막대와 부엌칼로 장모를 죽이고 뒤이어 장인도 공격했어요.
파크스는 다시 집을 빠져나와 경찰서로 향했고 경찰서로 향하는 어느 지점부터
조금씩 알아차리기 시작했다고 해요.
경찰서에 도착한 그는 자신이 사람을 죽인 거 같다고 얘기하며 자신의 손을 보았는데
깊게 베여있고 힘줄이 끊어질 정도의 상처에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파크스는 경찰서에 제 발로 들어갔지만 정작 그 밤의 일들은 그의 기억 속에 없었어요.
장모와 평소에 사이가 좋았던 파크스이기에 특별한 동기도 없었으며 증오도 없었다고 해요.
살인을 저지른 사람의 행동이라고 보기엔 스스로 경찰서를 찾아갔고 자신의 몸에 묻은 피를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어요. 그가 평소 폭력적이었던 사람도 아니었고요.
하지만 그 무렵 파크스는 도박에 빠져 큰 빚이 있었고 회삿돈까지 손을 대는 바람에 곤경에 몰려
몇 달째 잠을 이루지 못해 만성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로 몽유병을 악화시켰다고 합니다.
결국 법은 그의 범죄 의도를 묻기 어려워 무죄를 판결했지만 이 판결은
사람의 몸이 움직였는데 그 사람의 의식이 거기에 없었다면 우리는 그 행동을
어디까지 그 사람의 행동이라고 불러야 할까라는 질문을 남기게 되었어요.
파크스의 사건은 인간이 언제나 자기 몸의 주인이라는 믿음을 흔들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 사건은 단순히 잠든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는 기괴한 이야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자기 행동을 완전히 소유하고 있다는 믿음이 생각보다 불안정한 조건 위에
서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개의 에피소드를 읽으니 왜 부제목이 '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다'인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위험한 인문학 1을 읽고 주저 않고 신간 2를 선택해 읽기에 후회가 없었어요!
인간의 오작동을 파헤친 '위험한 인문학'의 폭로 끝에 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음을
우리의 실수 역시 지극히 인간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작은 위로를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