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의 진찰실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박수현 옮김 / 알토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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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어보고 쓴 리뷰입니다>

"나 상당히 위험한 거지?"

"괜찮아요. 마치 선생님은 괜찮지 않은 환자에게 괜찮다고 말하지 않아요."

"이 병원은 뭔가 특이하구먼."

"그런 말씀 많이들 하세요. p22"

주인공 데쓰로보다 한 살 어린 여동생 미야마나나가 젊은 나이 병을 얻어

3년 전 세상을 떠나고 미혼모였던 나나의 아들을 떠맡게 된 데쓰로.

데쓰로는 4학년 조카를 키울 자신이 없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재직중이던 도쿄의 병원을 그만두고

쿄토로 이사와 쿄토의 하라다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대학 의국에서는

조카를 키울 수 없었기때문이에요.



나쓰카와 소스케 장편소설

스피노자의 진찰실

알토북스



아이들 시험준비를 도와주느라 매일 정신없는 요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오랜만에 손에 든 <스피노자의 진찰실>,

​덕분에 제대로 힐링하였습니다.



"의사가 되려고?"

"그럴 생각이에요. 안되나요?"

"하지 말라고는 안 하겠지만... 왜 하필..."

"마치 선생님은 대학에 계속 있었더라면 교수가 되었을 거라고요.

저때문에... 그러니까 제가 보답해야죠." p33

"류노스케, 나는 그때 순수하게 혼자가 된 너를 두고

내가 유쾌한 삶을 살 수 있을지 질문했어.

답은 간단했어. 네가 힘든 일을 겪고 있는데 나만 행복할 순 없었어.

네가 웃으며 생활하는 게 내게는 중요했으니까,

그런 내 철학에 따라 너를 맡은 거야." p34

삼촌을 마치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여동생의 아들 류노스케,

류노스케는 그런 삼촌에게 고마워하면서 한편으로는 미안한 감정이 있고,

그런 류노스케를 보며 절대 너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데쓰로.

"그러니까 내가 예정과 다른 삶으로 옮겨 탔다고

네가 그걸 메우지 않아도 돼." p34

가끔 옆지기와 아들들이 제게 해주는 말이 있는데

가족들을 위해 엄마, 자신의 삶이 없어 보여서 미안하다는 겁니다.

그래서인지 데쓰로의 저 말 한마디가

참 크게 공감이 되더라고요.



"여기서 하는 의료는 아마도 미나미 선생님이

지금껏 봐 온 의료와는 조금 다를 거예요.

대부분은 치매나 암 환자이고,

나머지는 이미 관에 한 발을 넣은 노인들뿐이죠.

'회복될 사람은'은 거의 없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것도 치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건 큰 착각이에요.

이곳에서 하는 일은 어려운 병을 고치는 게 아니라

낫지 않는 병과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 알려주는 거지요.

그러니깐 치료에 전념하는의사라면 애초에

이 병원의 시스템을 이해하기 힘든 일이죠." p124





밤사이에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말이

빨리 안 가시면 돌보는 나도 힘들다고 가벼운 농담이었다며 의기소침해 있는

아들 간이치.

그런 아들에게 잘했다고 말합니다.

아들이 평소처럼 행동한 덕분에 간조씨는 평소처럼

안심하고 잠든 채 가셨을 거라 말하는 데쓰로.

"이렇게 평온하게 가시는 분은 드물어요.

만약 아들이 평소와 달리 마음을 쓰거나

몹시 다정한 말을 했다면 오히려 불안해하셨을지 몰라요.

하지만 아들이 늘 하던 대로 했기에

자연스럽게 떠나실 수 있었을 거예요.

평소 간병하느라 무척 힘드셨죠.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p136

이런 데쓰로의 말에 갑자기 눈물이 쏟으며...

"사실은 정말 힘들었어요.

식사 준비도, 지저귀 교환도, 가호 서비스에 데려가는 것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건

항상 웃으면서 제 넋두리를 들어준 선생님과 간호사분들덕분이에요." p137

데쓰로는 아무 말 없이 두 손으로 그의 손을 감싸 쥐으며 위로해주는데

힘들게 간병했던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해준

데쓰로가 정말 참 의사선생님이구나 싶어.. 저도 뭉클..해졌답니다.

병이 낫지 않더라도, 설령 남은 시간이 짧더라도

사람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게 데쓰로의 철학이라는 말에

미나미는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묻습니다.

"실제로 본 적이 있거든.

젊은 나이에 난치병을 앓은 여성이 있었어.

어린 자식을 남겨 두고 몇 년 만에 세상을 떠났지만 끝내

웃음을 잃지 않았지.

일찍 남편을 잃은 데다 이번에는 자신마저 난치병에 걸렸는데도 말야.

아무리 생각해도 비참한 인생 같아 보이는데

기억을 더듬으면 웃는 얼굴만 떠올라." p142

데쓰로의 동생 이야기이죠.

"할 수만 있다면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p142

이런 데쓰로를 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미나미.

미나미에게 데쓰로가 있는 하라다병원을 권유한 하나가키는

내시경을 배우라는 목적에서였지만

내시경 기술을 고집하는 신출내기 의사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알게 됩니다.



'안심'을 선물하는 데쓰로.

40이 넘은 나도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안심'을 선물해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완전히 다 이해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이것을 깊이 생각한 사상가가 있었어."

"그게 스피노자예요?"

"맞아. 그는 희망 없는 숙명론 같은 것을 제시하면서도

인간의 노력을 긍정했지.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면 노력하는 의미가 없을텐데.

그는 이렇게 말했거든.

'그렇기에'노력이 필요하다고." p204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해라...

-고맙습니다. 선생님-

돈이 없는데도 괜찮냐고 묻던 토혈 환자를 치료해 준 데쓰로.

겨우 목숨을 건지고 퇴원하기를 두 번.

지난주에 또 외래를 왔던 쓰지씨의 죽음.

쓰지씨의 죽음을 확인하고 돌아서는 데쓰로와 미나미를 불러 세운 하마후쿠 경사는

누렇게 변한 면허증을 건네줍니다.

쓰지가 가지고 다니던 기한이 만료된 면허증.

그 면허증을 뒤집은 데쓰로는 순간 숨이 막혀버립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둘쭉날쭉 적힌 큰 글자는 쓰지 본인처럼 씁쓸함을 머금고 단정하게 웃고 있었어요.

본래 고독하게 죽은 사람들은 대체로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가지는데

쓰지씨는 그런 따뜻한 말을 품고 죽을 수 있다는 건 행복아니였을까요? 라고 묻는 경사.

고맙습니다. 데쓰로.

오랜만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읽었씁니다.

가슴 뭉클한 감동 그리고 삶,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 <스피노자의 진찰실>

기말고사가 끝나면 읽어보라고 고등 아이에게 권해줄 생각이에요.

올해 제가 읽은 소설 중 가장 감동적인 소설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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