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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판타지아
주얼 지음 / 이스트엔드 / 2024년 6월
평점 :
서평_당신의 판타지아_주얼_이스트엔드
나의 판타지가 이런 걸까? 운명적이게도 주얼 작가의 소설집 ‘당신의 계절이 지나가면’에 이어 ‘당신의 판타지’를 읽었다. 그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너무나 좋아하고 그가 쓴 소설의 영향을 받았다는 걸 밝히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작가만의 소설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요즘 소설책 한 권 읽기가 쉽지 않다. 잘 썼다고 해도 두꺼운 분량은 사실 부담스럽고 글자 크기까지 작다면 읽는 걸 포기해 버린다. 아무리 유명 작가가 쓴 명작이라고 해도 그런 부분이 은근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 때문에 내용을 떠나 책의 디자인적인 부분도 칭찬하고 싶다. 한 손에 들고 읽기 적당한 크기와 분량에 글자도 시원해서 보기 좋다. 그리고 표지 그림도 자연주의를 표방한 듯 숲이라 시원해 보인다.
‘당신의 판타지아’
-현실이든 환상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이 순간을 믿는 거예요. 그러면 당신의 이야기가 되니까
-상실과 부재를 마주하는 순간 펼쳐지는 초현실의 세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들려주는 선택과 믿음에 관한 이야기
-깊고 단단하게 믿을 수 있다면 그건 분명, 선명한 나의 이야기가 된다.
구성이 독특하다. 단편집이지만 처음과 끝은 마치 2부로 나누어진 한 편이었다. 또한 소설 속에 작가가 등장해서 뭔가 신기하다. 그리고 초현실적인 요소 속에 극단적인 반전이 있는 작품도 흥미로웠다. 사실 판타지라도 세계관이 장황하면 부담스러운데 웹 소설로 치자면 회귀, 빙의, 환생의 요소가 그랬다. 물론 그것 없이는 판타지 소설이 될 수 없지만 웹 소설도 존중한다.
이젠 주얼 작가의 소설은 ‘주얼리즘’이라 부르고 싶다. 특히 두 눈이 멀어 손바닥에 눈이 생긴 남자의 짝사랑 이야기 ‘키클롭스’는 개인적으로 작가적 욕심이 생긴 작품이었다. 반쪽짜리 짝사랑 로맨스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잔혹한 복수극으로 넘어가는 공포적 변화가 기대되었다. 중편 이상으로 분량을 늘여도 좋을 것 같다.
고양이를 혐오하고 살해하는 인간들. 그리고 동물들의 반란 작전 계획을 그린 ‘이상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은 역시 인상 깊었다. 짧은 분량이라 아쉬움이 남았다.
처음에 실린 ‘당신의 판타지아’는 독자 또한 자기만의 환상에 빠져들게 하는 마법 같은 소설이었다. 설령 과음으로 인한 착시 현상이 좋지 않다고 해도 달콤한 로맨스가 된다면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겨진다. 그만큼 그리움이 묻어났으며 상실에 대한 회복과 대화를 통한 교감이 와닿았다.
‘경수의 다림질’은 일본 로맨스 소설 특유의 섬세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다림질은 정장을 입고 다니는 직장인의 일상이자 겸허한 자세로 사유할 수 있는 행위였다. 마치 그걸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며 반성도 하고 때론 새로운 생각도 하며 인생의 방향성을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로 치자면 2024 파리 올림픽 탁구 선수로 활약했던 메달리스트 신유빈이 떠오른다. 세트가 끝나면 머리에 냉찜질 팩을 올리고 바나나우유와 영양제를 먹던 행위는 승리를 위한 하나의 심리적 주문이었다.
주인공은 동거하는 남자 친구의 습관인 다림질을 직접 해보며 그와 동일시했고, 그건 상징적인 교감이자 간접적 사랑 행위로 보였다.
‘곰팡이’는 잘 읽히면서도 이면성이 느껴졌다. 풍족하지 않은 가정과 임신이 이루어지지 않아 고민하는 아내. 이렇다 할 직장을 구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남편의 이야기다. 여주인공의 남동생이 등장하며 갈등하게 된다. 깨끗한 벽지를 벗겨내면 나타나는 또 다른 더러움은 벗어나지 못한 현실에 대한 묵시적 반전 같다.
주얼 작가가 이젠 단편집에서 더 나아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작에 도전했으면 좋겠다. 이를테면 그의 장편 소설인 ‘상실의 시대’나 ‘태엽 감는 새’에서 더 나아가 1500여 쪽 분량의 ‘1Q84’같은 작품이 그렇다.
또 다른 특이점이라면 작가가 얼마나 하루키 작가를 좋아했으면 ‘순간을 믿어요’편에 그를 등장시켜버렸다. 민망하지만 가장 편안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온천탕에 나온다. 물론 현실인지 환상인지(아마도 착각이었겠지만) 모를 그와 대화한다. 팬으로서.
이 장면을 떠올리며 훗날 주얼 작가와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가 대면을 기원한다. 앞으로도 더 다양한 작품으로 독자와 교감했으면 좋겠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수증기는 아래에서 위로 아지랑이처럼 뻗어 오른다. 그런 기운으로 잘 되었으면 좋겠다. 끝으로 ‘당신의 판타지아’를 재미있게 읽었다. 몰입감과 속도감이 확실한 소설이었다. 상실과 죽음과 내적 성장 이후 다시 찾아오는 공허함. 마지막으로 행복. 그리고 열린 결말. 이 소설에서 느꼈던 감성적 코드였고 주얼 작가만의 소설이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