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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떨어진 남자 ㅣ 월터 테비스 시리즈
월터 테비스 지음, 나현진 옮김 / 어느날갑자기 / 2024년 7월
평점 :
서평_지구에 떨어진 남자_윌터 테비스_어느날 갑자기
소설 속에 음주 장면이 많았다. 마치 세상과 교감하기 위한 수단이 양주인 스카치위스키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알아보니 윌터 테비스 작가는 애주가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때문인지 주인공 뉴턴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작가의 자화상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인간의 뇌는 학습된 걸 응용하고 그게 창작이라는 틀 안에서 만들어진 것이란 건 사실이었다. 실제로 인터넷 백과사전에는 이 소설이 작가의 이야기라고 쓰여 있다.
책 크기가 아담해서 좋다. 가볍고 분량도 적절했다. 보라색 배경에 추상적인 도형이 깔끔한 표지 디자인이었다.
‘지구에 떨어진 남자’라는 제목의 이 소설은 이미 1976년에 세계적인 가수이자 아티스트인 ‘데이비드 보위’의 주연으로 영화가 나왔고 이후 2022년에 장편 드라마까지 제작되어 대중의 사랑을 받는 소설이었다.
기대한 대로 아주 훌륭했다. 사실 방대한 우주 배경에 전문적인 과학 이야기로만 구성된 SF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장르임에도 현실인 게 좋았고 그 속에서 인간애를 느낄 수 있는 드라마적인 요소가 끌린다. 우주선에 대한 얘기가 있고 외계인의 해부학적 특성이 나오며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초자연적인 이야기가 있음에도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외계인의 인간적인 면이 익숙하면서도 공감이 되었다. 겉모습을 잘 꾸며서 지극히 사람 같았고 한편으로는 머나먼 ‘안테아’라는 별에서 홀로 떠나온 외로운 존재였다. 인간이 술에 취해 알딸딸하고 기분이 좋은 걸 외계인 뉴턴도 그럴 수 있다는 게 특별했다. 술이 꼭 좋은 건 아니지만 외계인이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고 쾌락에 빠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런 장면을 통해 독자는 궁금증과 진실에 다가설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질감 없이 술술 읽혔고 그런 특징 때문에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작품 같았다.
외계인의 지구 침략 설정은 방대하다. 그러나 자신의 별에서 벌어진 파괴적 현실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인류 멸망적 상황에 관심을 가진다. 자신의 별을 구하고 지구에 정착하고자 했던 마음도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뉴턴은 특별했지만 지나치게 초현실적인 능력을 보이지 않았으며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이 되려 했던 외계인이었다. 지구인보다 훨씬 앞선 과학 기술을 선보이며 빠르게 사업화했고 그것을 통해 천문학적인 돈을 벌며 승승장구 한 회사의 대표였다. 철저하게 신분을 가리며 우주선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안테아’로 돌아갈 시도를 했지만 역시 비밀은 영원하지 못했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충분한 개연성을 가지면서 자연스러웠다. 외계인의 삶 자체가 인간과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안타깝기도 했고 결국은 세상에서 태어나 다시 죽음으로 돌아가는 과정 같았다.
1854넌에 출간된 헨리 소로의 대표적인 에세이 <월든>에 나오는 문장은 윌터 테비스 작가의 생각과 철학을 요약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절망스러운 인생을 고요하게 보내고 있다」
고요함은 한편으로는 외롭고 절망스러운 인생은 누구나 겪거나 혹은 현실이다. 절벽 끝에 서있는 상황 같다. 평화로우면서도 사실은 힘든 삶을 살고 있다.
자극 없는 자연스러운 전개에 드라마틱한 구성은 예상 밖의 허를 찌르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이를테면 우주선 프로젝트가 그러했고 또 한 번은 외계인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는 장면이었다. 한 개인에서부터 인류에게 알려지게 되는 상황은 폭발적이었다. 작가는 이런 SF적 요소를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사회적인 이슈를 적절히 배합하여 이야기를 이끌어 갔다. 탁월했으며 주인공에 감정이입하여 읽을 수 있던 힘이 되었다. 그래서 지극히 현실적인 SF 소설이었다.
이런 이야기라면 유치하지 않다. 더 나아가 다 읽고 나면 결말에 대해 긍정적으로 또는 아쉬움으로 생각하며 되돌아볼 수 있다.
이 소설은 고전 명작으로서 앞으로도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을 작품이다. 놀라운 건 윌터 테비스 작가는 SF 소설뿐만 아니라 당구장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쓰기도 했고 또 다른 작품은 체스에 관한 작품도 있으며 영화가 개봉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다양한 콘텐츠로 만들어졌다는 건 그만큼 작품성과 대중성을 가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매력 있고 사회적인 메시지도 갖춘 훌륭한 소설이기에 앞으로도 더욱 관심과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다만 아쉬운 건 부가적인 내용 구성이 부족했다. 물론 소설 번역에 대한 완성도가 가장 중요한 점이긴 했지만 적어도 작가에 대한 연보를 통해 객관적인 일대기를 알고 싶었고, 저명한 소설가의 추천글이나 문학 평론가의 작품 해설이 있었다면 개인적으로 이해한 것과 비교하면서 읽는 색다른 재미를 줄 것 같다. 그리고 번역가의 후기를 통해 더 풍성한 재미를 줄 수 있었겠지만 어디까지나 의견일 뿐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