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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카페 ㅣ 싱긋나이트노블
구광렬 지음 / 싱긋 / 2023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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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자살카페_구광렬_싱긋
작가님의 성함 만큼이나 강렬했던 소설이다. 제목부터도 그랬다.
‘자살카페’
-우리는 사느니 차라리 서로를 죽이기로 했다.
사실은 살고 싶었지만...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그들은 왜 함께하는 죽음을 선택했는가?
-모든 것을 상실한 상처받은 청춘들의 자살 이야기
우리는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으로 가는 인생을 살고 있다. 그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며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귀한 생명조차도 삶의 고통으로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게 현실이다. 더군다나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도 자살률이 높은 나라였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그랬기 때문에 산다고 하지만 산다는 건 진지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제목처럼 자살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삶과 죽음에 관해 보다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특히 인생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20대들은 모두가 괴로워 보였다. 그래서 결국은 동반자살을 택해서 죽음 세상으로부터 벗어나는 행복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너무 비극적인 내용만 있는 건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소통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털어놓는다. 왜 무겁지 않았냐면 작가님은 소설 뿐만아니라 시집도 내신 분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문장이 감성적이게 느껴졌다. 그래서 읽으면서 기억하고 싶고 필사하고 싶은 마음도 들어서 일부 내용은 받아 적기도 했다. 아마도 쓰시면서 많은 고민을 하셨을 것 같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고 현실적인 부분이라 심적으로도 편하시진 않으셨겠다. 마지막에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느낀 부분이었다. 죽음의 이유는 사람마다 다 있겠지만 가만히 곱씹어 보면 타인의 입장에서 쉽게 해결할 수 있는데 왜 죽으려고 할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상처는 자신의 가장 잘 알기에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자살 카페’는 죽음에 대해 죽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죽으라고도 하지 않는다. 각자 인생을 살며 극단적인 마감을 원하는 자살 카페 모임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참 잔인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 못 하고 강하게 죽음을 원한다는 것. 편치 않은 마음이지만 공감이 갔다는 것. 물론 소설적 허구성을 가만하며 읽었고 그럴수록 작가님의 필력에 감탄했다. 사람들의 이야기였지만 주인공의 표면적, 내면적 목표를 알 수 있었고 서사가 뚜렷해서 몰입이 잘 되었다. 이 땅 위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구광렬 작가님의 소설 ‘자살카페’를 추천한다.
-소설 내용 중 발췌
폰을 던지고 베란다로 간 뒤 화분과 화분 사이에 앉았다. 해뜰 무렵에는 인도가 원산지인 벤자민이 한국의 춘란을 넘어 브라질이 원산지인 부겐빌레아의 꽃분에까지 그림자를 드리웠다. 해질 무렵에는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떡갈잎 고무나무가 중국의 관음죽을 넘어 부겐빌네아, 춘란 벤자민의 꽃분에까지 그림자를 늘어뜨렸다. 그림자가 있는 낮을 1, 그림자가 없는 밤을 0이라 하고 그 사이를 지나다 보면 꽃분들 사이에 스위치가 달려 있는 듯 연결과 단절을 느꼈다. 발 묶인 것들의 희망, 그리움을 '이다', '아니다', 만으로 나타낼 순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지구의 대척점에 고향을 둔 나무들이 같은 시각에 떠오르는 태양 앞에서 그들의 키만큼만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다는 것은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지금 그녀에게 희망은 무엇이며, 또 무엇을 그리워 할 수 있는가. 미진은 꽃분 하나하나를 들여다보았다. 그들과 그녀 사이의 스위치 또한 0으로 꺼져 있음을 느꼈다. P74.
지하철은 각자 고독의 깊이만큼 달린다. 나에게는 팔을, 너에게는 다리만을 줄 것을 우리는 다 갖추었기에 혼자다. 종로 3가에 내릴 그는 종로 5가에 내릴 나와 무슨 상관이랴. 없어지면 없었다 생각하면 그만이다. 우린 칸칸으로 실려가다가 역 차이만큼 세상을 뜬다. 1호선이 2호선보다 더 실감이 난다. 그 실감 나는 1호선에, 그것도 막차에 올랐다. 선반 위에 백팩을 올려놓고 햄스터 상자를 껴안은 채 눈을 감았다 몇 정거장이나 지났을까. 잠에서 깬 명수는 차창 밖 기둥에 붙은 '서울역' 팻말을 보고 내렸다. p81.
구석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곳이지만 더 이상 나아갈 필요도 없는 곳이다. 세상은 구석을 향해 닫혀 있지만 구석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다. 세상 힘든 것들 구석으로 몰리건만 구석은 묵묵히 그 어깨들을 받쳐준다. 수평선에도 구석이 있고 그 면도날 같은 파도의 한 줄 구석에도 등짝을 곧게 펴는 고기들이 산다. 갈대의 울부짖음을, 못에 박힌 빈 바가지의 달가닥거림을, 구석에서 태어난 바람은 입이 꽉 틀어막힌 것들을 대신해 소리를 내준다. p103.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