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인권운동가 소파 방정환 - 기발한 기획과 초대형 행사를 이끈 문화혁명가
민윤식 지음 / 스타북스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_어린이 인권 운동가 소파 방정환_민윤식_스타북스


나는 참 부끄럽다. 어린이 앞에서. 무심코 행동해왔던 것들과 선입견들은 뇌가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어린이들에게. 우리의 미래인 어린이들에게 앞으로는 존중하며 잘 대해 줄 것이다. 그 생각들은 소파 방정환 선생님의 어린이 정신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그런데 배움이란 말 조차도 이상하다. 당연했어야 했는데. 또 다시 심적으로 창피해진다.

소파.
작을 소, 물결 파. 작은 물결이라는 뜻의 방정환 선생님의 호였다. 
어린이의 가슴에 작은 물결을 일으키겠다. 그래서 큰 물결이 되겠다고 하셨다. 
어린이라는 단어는 원래는 아이들을 어리석다고 무시하는 뜻의 기집애, 머슴애로 불렸다고 한다. 거기다 시대적 상황으로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어서 일본인과 어른들로부터 이중적 억압을 받고 있었다. 방정환 선생님은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보고 어린이라는 단어를 만드셨다. 
1923년 5월 1일 그렇게 어린이날은 어린이에게도 사람의 권리를 주는 동시에 사람의 대우를 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어린이 인권 운동가 소파 방정환. 이번에 새롭게 개정하여 출간 된 두툼한 책은 선생님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쓰여 있었고 참된 어린이 정신과 계몽의식을 통한 독립의지를 엿볼 수 있다. 1899년 11월 9일 사업가의 집안에서 매우 부유한 부자집 손자이자 맞아들로 태어났지만 집안의 가세가 갑자기 기울어 끼니 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삶을 사셨다. 학업의 보다는 다른 뜻이 크셨기에 학교를 중퇴하셨다고 한다.

손병희 선생님의 천도교 집안 사위가 되어 찢어지는 가난에 벗어날 수 있었고 그때부터 다시 건강해져서 이 책의 사진에 나와있는 모습이 되셨다.
방정환 선생님은 독립을 의해 미디어가 필요해서 신청년 잡지를 만들었고 만해 한용운 선생님과 굉장히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그 분의 생가를 제 2의 고향이라 여기며 자주 뵈었다고 했다.
3.1운동 당시 독립 신문, 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배포했으나 일본에게 들켜서 잡혔다. 다행히 극적으로  증거를 파괴하여 간신히 풀려났지만 고통스런 물고문을 피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이후 감시 대상이 되어 늘 간섭의 스트레스 속에 갇히셨다.

방정환 선생님은 참 어린이를 사랑하셨던 분이다. 동경 유학 생활을 하면서도 역시나 학업에는 관심이 없었고 독립을 위한 활동을 했으며 청년 천도교회를 창설했음에도 어린이를 위해 소년 천도교회도 만들고 유국영 선생님이 만든 색동회에도 속하여 어린이 잡지도 만들었다. 
특히 구연 동화를 잘 했는데 우리 나라 최초로 라디오에서 구연동화를 하셨다.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성인들의 이야기 보다는 어린이 동화를 선택했다고 한다. 신데렐라나 엄지 공주이야기에서 신데렐라는 우리 나라였고 괴롭히는 새 엄마는 일본을 상징했다.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서민들은 대성통곡하며 우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 동안 어린이는 그저 애라고 보자마자 반말을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것조차도 어린이를 무시하는 행동이었던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존대하고 우리 나라의 미래라 생각하며 아낌없이 대해 줘야겠다.
방정환 선생님은 비록 짧은 삶을 살다간 분이셨지만 나는 천국에서 잠시 내려 온 천사라고 봤다. 어린이날은 휴일이라고 보며 아무 생각없이 보냈는데 그 뜻을 알고나니 숙연해진다. 


어린이의 어림은 크게 자라날 어림이요
새로운 큰 것을 지어낼 어림으로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지어 낼 새 밑천을 가진
독립 된 인격체로 어린이는 새롭고 훌륭한
세상을 만들어 낼 가능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어린이 잡지 중 (1926)

방정환 선생님은 작은 물결에서 더 큰 물결이 되셨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