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탑의 시간>_ 해이수_자음과모음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추천 보증심사지침' 개정안에 따라 명확하게 경제적 이해관계를 밝힙니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막상 이 책을 읽고 무언가를 쓰려니 머뭇거려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싶다. 소설의 여운이 남아서일까. 아무튼 <탑의 시간>을 참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은 누군가에게 마땅히 읽혀져야 할 문학이고 독자들로부터 평가를 받는 건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읽었다. 이 책은 핑크빛의 유광 표지가 심플한 멋이있었다. 그림이 스프링처럼 보였지만 제목처럼 시간과 탑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과하지 않은 은은한 색과 멋이 있다. 뒷면에는 해이수 작가님의 멋진 사진과 함께 아담한 소개글이 보였다. 2000년에 등단 하신 후 꾸준한 집필 활동을 하셨고 단국대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고 계신다. 최초 출판사 소개글이나 서평에선 이 책의 배경에 대해서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제목처럼 탑을 주제로한 로맨스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여행과 함께하는 사랑 이야기 같아서 기대가 되었다. 사실 나는 외국 작품들 보다 우리 나라 작가님의 소설을 더 좋아한다. 아마도 내가 한국인이라서 같은 정서를 느끼며 공감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국내를 배경으로 하는 장소가 이해가 더 쉽고 번역서들과는 다른 있는 그대로의 글이기에 더 그랬다. 처음에는 좀 당혹스러웠다. 흔치않은 배경설정 때문이었다. 한국이 아니라 미얀마의 관광지와 탑이 있는 사찰이 주요 장소였다. 사실 나는 미얀마를 가보지도 않았을 뿐더러 귀찮음으로 인해 억지로 찾아보거나 하는 수고로움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요즘은 메모도 잘 안한다. 그러나 왠지 이 소설만큼은 흐름을 끊지 않고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내가 미얀마를 모른다고 해서 이 소설을 이해 못하진 않았다. 그만큼 해이수 작가님이 소설을 잘 쓰셨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미얀마의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한 불교문화는 특이했다. 낯설으면서도 고요함과 사찰 특유의 자연 속에 있는 느낌이 좋았다. <석가탄신일>에 산행을 하다가 사찰을 들르거나 어렸을 적 경주 불국사를 가본 사람들은 그 느낌이 어떤지 공감이 될 것이다. 물론 관광객들이 바글거리고 정신없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과 숲의 나무들이 조용히 움직이며 내는 소리들 그리고 자연의 풀내음을 떠올리면 내 마음도 차분해지고 명상에 빠지며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탑의 시간>은 그런 풍경이었다. 거기에 명과 연이라는 두 남녀의 사랑에 대한 슬픔이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밝으면서도 조용하고, 그 이면엔 애잔함이 있다. 그리고 그들과 양면적으로 대비되던 최와 희가 있었다. 둘은 연인이 었고 연애 200일을 기념해 최의 출장을 겸해서 미얀마로 동반 여행을 왔다. 이 네 사람의 관계가 책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그 어느것 하나 소홀한 부분 없이 하나의 선물 세트처럼 느껴진 소설이었다. 그들이 미얀마를 여행하는 모습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었고 내게는 간접적 체험이 되었다. 진짜 웬만한 에세이 서적들 보다 사실적이고 아름다웠다. 거기에 기가막힌 문장들과 인물들의 관계속에서 교묘하게 오가가는 사랑에 대한 감정 표현이 압권이었다. 어쩌면 이 소설이 존재할 이유가 이것 같았다. 그리고 미얀마라는 역사적인 특징과 함께 명상하게 되는 숭고한 종교의식은 탑의 시간 속에서 신성하게 빛나는 것 같다. 사랑은 아름답고 우리들의 인생과 함께하는 숙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탑의 시간>은 사랑이야기다. 하지만 결코 기쁘기만한 사랑은 아니였다. 시작부터 명은 미얀마에 들어서며 탑 앞에서 눈물을 쏟아내며 슬퍼한다. 연 또한 탑 앞에서 슬픔에 젖어있다. 두 사람은 삼십대 중반의 남자와 50대에 들어서는 중년 여자였으며 전혀 관계가 없던 사람들이였다. 그리고 최와 희는 그들 앞에서 사랑을 속삭이며 즐겁게 관광을 하지만 둘 사이의 미묘한 사랑의 갈등이 있다. 탑과 시간 그리고 네 사람은 미얀마라는 국가 안에서 서로 동반자가 되어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나서 추억을 만들며 급기야 관광도 같이 하게 된다. 그 속에서 서로는 내면의 빈 공간을 서서히 드러내면서 한 사람은 또 한 사람의 공간을 채우며 교감을 한다. 빈 공간은 각각의 성격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사랑에 대한 상실일 수도 있고 배신에 대한 슬픔이기도 하며 외로움과 증오이기도 했다. 그것을 전혀 관계가 없는 네 사람이 마치 쳇바퀴가 굴러가듯 물리고 물리며 채워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혼자서는 알지 못했던 사랑의 감정들이 타인의 인생을 공유하며 감정 이입이 되어버렸다. 특히 보트를 타고 난 후 네 사람이 식당에서 <미얀마 비어>를 마시며 나누던 악어이야기의 엔딩. 최의 의견 차이로 인해 감정이 격해져 버렸다. 결국 그들이 처한 비워진 감정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 같았다. 그 이후 서서히 진실이 채워지게 되고 자신을 되돌아 보며 회상하는 모습은 해이수 작가님의만의 치밀함이 엿보였다. <탑의 시간>은 지나친 감정의 잔인함이 없다. 무서움도 없다.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막장 드라마는 더더욱 아니다. 그들의 사랑은 정상적이지 않은 불완전함 속에서 균형을 찾고 있었다. 사랑의 완성 앞에서 갈등하는 이는 결국 사랑을 위해 냉정하게, 과감하게 이별 할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사랑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말로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연과 명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공감이 되었다 그래서 슬프면서도 그럴 듯하게 보였다. 그들이 평범해서 이해가 되었고 억지스러움 없는 갈등 관계는 자연스러웠다. 물론 다른 사람의 사랑을 빼앗는 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지만 그러기에 소설이고 그 속에서 인간미를 느끼며 재미와 깨달음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랑에 대한 배신과 변심 그리고 의심. 사랑했기에 이별했고 이별은 결국 기억이 된다는 것. 소설 속에서 그러길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엄마는 아이가 태어난 순간이 생일이 아니라 아이를 생각하는 순간부터가 생일이라고 여기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렇듯 사랑 또한 이별을 하는 순간이 끝이 아니라 내가 이별을 생각하는 것부터가 나는 이미 이별을 했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생각에서 더 나아가 사랑에 대한 심리적인 고찰을 느낄 수 있던 부분이었다. <탑의 시간>은 이렇 듯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문학적인 풍부함이 있었고 사랑에 대해 고민하며 스스로 결론 지을 수 있는 철학적인 물음들이 있었다. 요즘 자주 느꼈던 불안전한 구성과 클리셰가 있고 지나치게 자극적인 소설들과는 달랐다. 탄탄한 구성과 섬세한 감성이 충만했고 보기드문 순수성이 느껴진 명작이라고 하고픈 책이었다. 끝나버린 아쉬움을 남긴 채 책을 덮었지만 내 마음 속의 미얀마는 아직도 탑의 시간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